삿갓재 노을에 기대어 서다




- 백두대간 지리산에서 덕유산까지 9박10일의 이야기 8

- 육십령 >> 할미봉 >> 장수덕유산 >> 남덕유산 >> 삿갓재대피소(11.9km)

- 2008.07.02.




아침부터 안개가 심상치 않다. 강수확률은 30%. 비가 올까? 완전히 마른 신발을 신어봤던 게 언제였더라. 수염을 자른 게 언제였더라. 입고 있는 옷도 매일 똑같다. 다행히 매일 세탁을 해서 입지만 물세탁만 한 거라서 냄새도 좀 난다. 머리카락은 내 인생에서 가장 길게 자라고 있다. 손톱의 때는 양호하다지만 끼고 있는 장갑에서는 퀴퀴한 땀내가 진동을 한다. 행색만 보면 산사람 그대로다. 도시에 나간다면 거지도 그런 상거지가 없을 거다. 이렇게 이틀은 더 가야 한다. 여행이 끝난 뒤 나는 어떤 모습일까.


5시, 식당에서 차려준 밥으로 아침식사를 해결했다. 식사를 하는데 촛불집회 관련 뉴스가 나왔다. 주인할머니는 안 먹으면 그만이지 왜 저럴까라며 혀를 찼다. 단순히 안 먹는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라고 설명드렸다.


“할머니, 옛날 어르신들도 사람이 먹는 소고기의 국물하나라도 소에게 먹여서는 안 된다고 하셨어요. 그런데 미국소는 육식을 한단 말이에요. 게다가 안 먹는다고 안 먹을 수가 없는 게 소잖아요. 어떻게든 우리 식탁에 올라올 수밖에 없어요.”


설명이 부족했는지, 아니면 관심이 없는지 이해하려 하지 않으신다. 정서탓일까. 세상과 떨어져 여행하겠다는 나도 어쩔 수 없이 이렇게 세상 소식을 접하고 있다. 몇 가지 간편요리를 사려고 보았는데, 대부분 유통기한을 훨씬 넘었다. 씁쓸했다. 결국 라면만 2개 사 넣었다.


육십령고개로 다시 올라선 시간은 6시. 고갯마루는 안개로 10m앞이 보이지 않았다. 차량 소통이 거의 없어 한적하고 널찍한 도로를 건너니 기분이 묘하다. 여기는 선계와 세속의 경계선일까. 육십령 고갯마루에서 다시 산등성이로 오르는 급경사가 보인다. 다시 백두대간이 시작됐다.


▲ 육십령 고갯마루에서 본 육십령 식당. 저 트럭 뒤에 육십령 식당이 있다.


▲ 육십령 고갯마루. 전라북도 표지판 뒤에서 백두대간으로 오르는 길이 시작된다. 



 

할미봉까지는 단단한 암봉이다. 암봉이 단단하지 않은 게 어디있겠냐만, 그만큼 만만치 않았다는 뜻이다. 밧줄이 매달려 있는데 만일 밧줄이 없다면 훈련된 사람이 아니라면 도저히 엄두를 내기가 어려울 난코스다. 스틱은 오히려 거추장스러울 뿐이다. 만일 육십령에서 할미봉을 타는 사람이라면 스틱은 배낭에 접어두는 게 좋다. 그리고 좀 긴장해야 할 것이다. 가파르게 오르고 내리는 동안 자칫 딴생각을 하거나 허투루 발을 딛는다면 크게 다칠 수도 있다. 너무 긴장한 탓이었을까. 암봉을 간신히 지나고 비탈길을 내려오면서 기어이 한바탕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다행히 스틱을 잘 잡아서 심하게 넘어지지 않았지만 스틱의 끄트머리 부분이 살짝 휘어졌다. 그러나 이는 다음에 올 더 큰 문제의 전주곡이나 다름없었다.


손발이 덜덜 떨릴 정도로 아찔한 암봉을 오르고 내린 다음에서야 내 배낭에 물통이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물 한통은 암봉에서 떨어져버렸나 싶었는데 예비 물통마저 없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식당에서 물을 다시 채우고 할머니에게 인사하고 몇마디 나누다가 물통을 깜빡 잊은 것이다. 아마도 식당 테이블에는 꽉 채워진 물통 두개가 머쓱하게 서 있을 것이다. 그나저나 큰일이다. 육십령에서 2시간 가까이 걸어온 길이다. 게다가 할미봉이라는 두 번 다시 오르고 싶지 않은 암봉을 넘어왔다. 그리고 앞으로 3시간 가까이 가야 샘이 있다. 둘 중의 하나다. 다시 1시간 반을 걸쳐 할미봉을 넘어 육십령에 가서 물통을 찾아오던가, 3시간을 더 참고 장수덕유산까지 가던가.


내 선택은 당연히 후자다. 다시 할미봉을 넘고 싶지도 않고, 물통 때문에 왕복 3시간의 체력과 시간을 써야 한다는 게 억울했다. 결국 장수덕유산으로 가던 길을 갔다. 그러나 갈증은 정말 지독했다. 그럴 때면 나무들에 맺힌 물방울들로 갈증을 채웠다. 나뭇잎 중에는 그래도 침엽수 종류이면서 잎이 넓은 게 좋았다. 활엽수 쪽은 굉장히 까칠하고 맛이 이상한데, 참나무류의 나뭇잎들은 물방울도 잘 머금고 있고 나뭇잎도 부드러워 핥기 좋았다. 소나무 잎들도 제법 물방울이 알알이 맺혀 있지만 조금만 건드려도 떨어지기 때문에 마시기 힘들다. 그렇다해도 가뭄에 물 한 바가지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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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증이 너무 심해 바위틈에 고인 물이라도 있을까 싶어 살펴보았을 정도다. 그러나 그런 물은 마실 물이 못된다. 뜨거운 한여름이 아니라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그렇지 않으면 말라죽었을 것이다.

공기는 더 축축해졌다. 금방이라도 비를 한바탕 쏟아 부을 기세다. 차라리 한바탕 쏟아진다면 컵이라도 대놓고 있다가 마실 참인데, 오진 않았다. 할미봉을 넘어 교육원삼거리까지 1시간 20여분의 길은 평탄한 편이다. 그러나 그 다음부터 장수덕유산을 향한 본격적인 오르막길이다.

입술이 바짝 말라가면서 장수덕유산에 올랐다. 오르자마자 이정표가 샘터(참샘)을 가리키는 게 보였다. 어찌나 반가운지, 바로 내리막길을 타고 갔다. 150m라는 표지판이 무색하게도 그 길이 얼마나 길게 느껴졌던지. 내리막길이지만 바위들에는 이끼가 많이 껴있고 너덜지대를 지나는 곳에는 길이 뚜렷하지 않아 한동안 해매기도 했다.
마침내 작은 참샘을 찾았고 거기에 있던 플라스틱 바가지가 반갑다.

하지만 물은 그다지 깨끗하지 않았다. 바위틈을 타고 내려오는 물이라 고여 있는 물을 마셔야 하는데, 물을 떠서 자세히 보니 1mm도 안되는 유충도 보였다.
급하지 않다면 절대 추천하고 싶은 물은 아니다. 샘에는 항상 있기 마련인 수질표시도 없다. 그런 물을 먹고도 배탈이 나지 않은 건 내 위장의 위대함이다. 이곳에서 육십령 매점에서 구한 찹쌀떡으로 간단히 요기를 때웠다. 물통이 없어서 김을 넣었던 반찬통에 물을 담았다. 김가루가 둥둥 떠다니고 약간의 소금도 남아있던데다 기름기도 있지만 물 없이 가는 것보다 얼마나 훌륭한가.



▲ 장수덕유산에서 찍은 사진. 10m앞도 보기 어려울 정도로 구름이 가득했다. 


 

물을 마시니 다시 장수덕유산으로 올라오는 길은 가뿐하다. 이정표를 뒤로하고 계속 가니 넓은 안부가 나온다. 장수덕유산 쪽의 조망이 남덕유산보다 좋다고 하는데, 구름 때문에 10m 앞도 가물가물하다. 바람도 솔찬히 불기 시작했다. 장수덕유산을 막 벗어나니 기어이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냥 잠깐 머물다가 가는 비가 아니었다. 그리고 곧이어 천둥번개까지 동반했다. 머리 위에서 울어대는 천둥소리 때문에 덜컥 겁이 났다. 이날은 정말 산전수전 다 겪는 날이다. 물이 없어 고생하더니 물(비)이 넘쳐 또 고생이다. 남덕유산 정상부분은 암봉에 훤하게 열려 있어서 번개에 노출될 수 있었다. 결국 남덕유산은 옆으로 질러가는 수밖에 없었다.


남덕유산을 옆으로 비껴가면 이후부터는 또 한참을 내려간다. 큰 산이라서 그런지 오르고 내리는 부침이 심하다. 남덕유산에서 월성재까지는 40여분 정도 걸렸다. 중간에 계단에 쭈그려 앉아 젖은 담배를 물고 있으려니 내가 생각해도 몰골이 가관이 아니다. 온몸은 흠뻑 젖어버렸고 고지대이다 보니 금세 체온이 떨어졌다. 이렇게 넋놓고 있다가는 저체온으로 지치겠다 싶어 다시 배낭을 짊어졌다. 쉬는 시간도 편하게 못 쉬는 상황이다. 비가 오니 개구리와 두꺼비가 길바닥에서 놀고 있다. 사람이 갑자기 다가오자 두꺼비 한 마리가 언덕으로 오르려고 바둥대는 모습이 재밌다. 빗속에서 지쳐 가고 있으면서도 그런 장면 하나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자연은 참 신비롭다.


월성재에서 다시 삿갓봉으로 치고 올라갔다. 역시 고개를 들지 못 하고 땅바닥만 보면서 오기로 걸었다. 금방 나올 것 같은 삿갓봉은 굽이굽이 고갯길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았다. 비는 계속해서 오고 천둥과 번개는 머리 위에서 위협사격을 가했다. 삿갓봉을 오르는 일도 위함하기 짝이 없다. 우회길이 있을까 싶어 지도를 보니 아주 작게 빗금이 나있다. 있다면 다행인데, 없다면 목숨을 거는 모험을 할 수밖에 없었다.


삿갓봉에 오르기 직전에 옆으로 난 샛길이 나타났다. 비교적 뚜렷한 길이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이제 삿갓재 대피소에 가는 일만 남았다. 다시 계속되는 내리막길. 언제나 그렇지만 내리막길은 오르막길만큼 어렵다. 숨쉬기는 편하지만 무릎과 발목에 느껴지는 중압감은 오르막보다 최소한 1.5배만큼 느껴졌다. 이제나 나올까 저제나 나올까 길을 걷다가 갑자기 넓은 공터가 나오더니 대피소가 나타났다. 비에 젖은 생쥐꼴을 하고서 삿갓재 산장의 매점문을 두드렸다. 산장 안으로 들어가니 아저씨 한분이 먼저 와 있었다. 산장에는 직원 외에 그 아저씨와 나 단 둘이 있었다.


▲ 삿갓재에서 바라본 조망. 나무들 때문에 그다지 좋지는 않다.


▲ 삿갓재 대피소 앞에서.


▲ 구름으로 살짝 가려진 곳 너머로 삿갓봉이 있다.

▲ 구름들이 낮게 깔려 있고, 그 위로 하늘 한 구석은 비교적 맑았다.


 

▲ 삿갓재산장에서 본 또다른 풍경.



 

오후 3시가 좀 넘어서 도착한 나는 먼저 젖은 등산화를 따뜻한 스팀 옆에 기대어 놓았다. 젖은 옷을 말리는 것보다 등산화를 말리는 게 먼저였다. 내일까지 마를까? 그럼 다행이지만 젖은 모양새로 봐서 그럴 것 같지가 않다. 젖은 옷을 갈아입고 널어야 할 것들과 말려야 할 것들을 산장에 펼쳐놓았다. 그렇게 급한 것부터 처리하고 마른 옷으로 갈아입으니 한결 낫다. 찹쌀떡으로 때운 점심 때문인지 그때부터 배가 고파왔다. 하지만 삿갓재 산장은 제한급수를 하고 있었다. 마실 수 있는 물을 구하기 위해서는 160m를 내려갔다 오라는데, 그게 힘들어서 그냥 급수시간에 저녁을 먹기로 했다.


아저씨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게 됐다.


“덕유산은 처음이지. 예전 어느 겨울에 차를 타고 가는데 멀리 보이는 덕유산의 설경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었어. 그래서 언젠가 꼭 한번 오겠다고 마음먹고 있었는데, 겨울에 오르기 전에 한번 여름에 혼자 와 본거야.”


덕유산은 겨울이 멋진 산으로 유명하다. 무주리조트 쪽의 스키장 때문만은 아니다. 바위로 된 주능선의 봉우리들이 주는 운치와 오래된 주목에 쌓인 설경은 한폭의 그림을 연상하기에 충분하다고 들었다. 시간이 남는 우리의 얘기는 이런저런 얘기로 나아갔다. 내가 지리산에서부터 왔다는 얘기가 아저씨의 호감을 자극했는지, 아저씨의 인생얘기가 술술 나왔다.


“한때 사업이 잘 나가던 때가 있었지. 그런데 IMF가 터지고 나서 쫄딱 망했어. 빚더미에 앉아 있었는데도 몇 년간 살 수 있었던 건 내가 여기저기서 야생난을 많이 구해다 놨기 때문이야. 집에 있던 야생난을 팔아서 몇 년을 먹고 살았으니까, 꽤 많이 모았었지. 비싼 건 천오백만원까지 받았어.”

“거의 산삼 한뿌리 값이네요. 그걸 어떻게 그렇게 많이 구하셨어요.”

“10억짜리 난도 있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뭐. 오래전부터 야생난 구하러 안 가본 데가 없어요. 외딴 섬도 가보고 첩첩산중에도 들어가 보고. 온갖 곳을 가지만 사유지나 국립공원, 도립공원도 마찬가지지. 그런데는 안가. 지금도 기아사람들과 야생난 모임을 하고 있지. 어떤 사람들은 일제 GPS가 달린 네비게이션을 가지고 다니면서 난을 찾고 있지. 좋은 난이 발견된 곳을 지도에 표시해 두고 몇 년 뒤에 다시 와보려는 거야. 이게 돈이 되거든. 옛날부터 길도 없는 산골짜기를 심마니처럼 다니다 보니 지금도 이 나이에 산을 제법 타는 편이지.”


아저씨의 나이는 60대 중반이었다. 그러나 어디를 봐도 노인의 그늘은 없었다. 영각사에서 출발해 1시 넘어서 삿갓재에 도착했다는 것은 엄청나게 빨리 왔다는 것을 말한다.


“그렇지만 다시 시작한 사업도 실패했지. 그리고 노숙생활도 3년이나 했다우. 노숙이란 게 힘들긴 하지만 그게 몸에 배면 또 빠져나오기가 어렵지. 그러다가 동생이 소개시켜준 기아자동차의 출퇴근 버스를 운전하기 시작해서 지금까지 잘 하고 있어. 이번에 휴가를 내서 혼자 찾아온 거야.”


백수로 살고 있는 나도 언제부턴가 지금의 생활에 조금씩 안주하고 있다는 걸 느낄 때가 있다. 일상이 습관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습관은 삶의 철학을 흔들어 놓는다. 내 백수생활도 어디에선가 그칠 것이다. 그 그침 뒤에 나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궁금하고 두려울 뿐이다.


5시 즈음 비가 그쳤다. 내리는 기세로 봐서는 하루 종일 올 것 같더니 의외로 싱겁게 그치고 말았다. 저녁식사로 라면에 햇반을 말아먹는 게 식사의 다였다. 허기가 반찬이다. 세상 어떤 음식보다 맛있다. 비가 그치고 구름도 서서히 걷혀가니 제법 조망이 나타났다. 비 때문에 공기는 맑고 청아했다. 7시 반이 되자 노을빛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비 때문에 카메라를 꺼내지 못한 게 못내 아쉬웠는데, 정말 멋진 노을과 만날 수 있었다.







 

아름다운 노을에 빠져 열심히 셔터를 눌렀다. 시시각각 변하는 노을빛과 구름의 향연에 빠져 들었다. 몸속에 누적되어 있던 고단함이 노을 속에서 녹아들어갔다. 이렇게 아름다울려고 그렇게 억수같은 비가 쏟아졌던 것일까. 삿갓재의 노을 속으로 또 하루가 저물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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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집회가 쉽게 끝날 것 같지 않다.
무엇보다 시민들의 위트와 풍자, 해학이 여전히 살아 숨쉬고 있다.




"전경 여러분, 이미 점호시간이 지났습니다. 지금 바로 해산하시고 숙소로 돌아가서 점호받으세요.
전경 여러분, 여러분이 이런다고 밥 더 주지 않습니다. 휴가, 더 주지 않습니다.
여러분들은 지금 선동당하고 계십니다. 여러분들을 선동하는 저 경찰들을 보세요.
여러분들이 이렇게 불법을 행하는 동안, 여러분들을 선동하는 저 경찰관은 얼굴도 보이지 않는
안전한 곳에서 여러분들을 선동하고는 바로 도망가 버릴 것입니다.
여러분, 선동당하지 마시고 방패를 내려놓으시고 시민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여러분의 가족과 형제 자매들입니다. 여러분의 미래의 부인입니다.
전경여러분, 여러분에게 명을 내리는 어청수의 아들은 군대면제입니다.
여러분들이 몸바쳐 지켜주는 명박이도 군대면제입니다."



무식한 사람을 이기는 것은 아는 사람이고,
아는 사람을 이기는 것은 열심히 하는 사람이고,
열심히 하는 사람을 이기는 것은 즐기는 사람이다.

무식한 이명박은 절대 시민들을 이길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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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화면을 다음으로 바꾼지는 오래다. 촛불집회 이전부터 내 컴퓨터의 초기화면은 엠파스나 다음 둘 중의 하나였다. 네이버가 자사이기주의와 시장 독점적 지위를 이용해 못된 짓을 많이 해왔기 때문이다. 타사의 열린검색을 막는다든지, 정치적 댓글을 기사와 관계없는 엉뚱한 곳에 몰아놓는다든지의 정책은 누가 뭐라고 해도 정보유통의 자유로운 흐름과 표현의 자유를 가로막고 침해하는 행위다.


그런 와중에 이번에는 조중동이 다음에 뉴스를 공급하지 않겠다고 나왔다. 많은 네티즌들은 환영하는 분위기다. 심지어 미디어 다음을 ‘청정지역’으로 선포하는 이도 있다. 하지만 컨텐츠를 제공받아 운영하는 포탈로서는 매우 곤혹스러운 입장일 수밖에 없다.


조중동은 패배할 수밖에 없다. 정보는 독점이 될 수 없다. 기본적으로 유통(흐름)의 과정에서 더욱 풍부화되고 정교하게 다듬어지는 법이다. 그것이 웹2.0의 정신이다. 독점을 통해 대중을 통제하고 압박하겠다는 것은 정보를 생산하는 주체로서 자살행위와 다름없다. 흐름이 막힌 정보는 썩기 쉽다. 지금까지 조중동이 내놓은 정보들이 유통의 과정에서 정화되었던 과정이 그렇다.


조중동은 아무래도 검색1위의 네이버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자체적으로 그럴 만하다고 판단해 다음을 버렸을 것이다. 과연 네이버는 이 상황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유감스럽게도 한나라당 모의원은 대선 과정에서 “네이버는 평정됐다”는 발언을 했다. 이 발언을 비롯해 여러 조치에서 네이버는 네티즌 대중으로부터 비난을 받고 있다.


물론 네이버만 탓할 것은 아니다. 다음도 표현의 자유를 지키는 일에 소극적이다. 상업적 기업의 한계일 수도 있다. 정부의 인터넷 규제에 대해 최소한 헌법소원이라도 직접 내볼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네이버와 다음은 네티즌들이 다국적 기업 구글에 주목하는 이유를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네이버는 지금 표현의 자유와 결사의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하고 있는 조중동의 입장을 침묵으로 동조하다. 이전의 정책을 생각해 보아도 네이버는 분명 조중동과 비슷한 정치적 입장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억울하다고 항변하고 있지만, 부정과 불의가 판치는 세상에 침묵하는 것, 그 자체가 불의와 부정이다. 지금 거리는 집회와 시위에 관한 법률로, 사이버에서는 인터넷에 대한 유례없는 규제와 통제로 정치적 견해를 자유롭게 표방할 수 있다는 민주공화국의 기본 입장이 무너지고 있다. 이는 거리에서는 조중동과 검찰 경찰이 주도하고 있고, 인터넷에서는 네이버가 이끌고 있다. 이것이 지금 세상이다. 


생각해 보면 따로 블로그를 운영한 것은 정말 잘한 일이다. 일찌감치 네이버 블로그에서 떠났지만, 여전히 내 글들이 그곳에 남아 있다. 이번 조중동의 다음에 대한 압박에 대해 네이버가 어떤 정책을 내올까. 일말의 기대감을 가져보는 건 지나친 착각일까. 오늘부터 네이버 블로그의 내 컨텐츠를 하나씩 지워나갈 생각이다. 네이버가 변하지 않는 이상 이 행동은 계속될 것이다. 고심해서 쓴 글과 어렵게 찍은 사진들을 그곳에 놔두어 네이버에 한푼이라도 이익이 되고 싶은 마음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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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주의가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 그 안에서는 많은 의견들이 생성, 확장, 소멸의 과정을 거쳐 정제되기 마련이지만, 자칫 그런 과정을 거치지 못하거나 잘못 확장될 경우 집단에 매우 안좋은 영향을 끼치기 마련이다. 특히 집단을 묶고 있는 것이 이성이냐 감성이냐는 그 결과에서 천지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집단 지성과 집단 감성은 다른 문제다.


미국산 쇠고기 문제로 시작된 집단 지성의 발현은 100만 촛불집회로 모여들었고, 이후 대운하, 공기업 민영화, 몰입교육 등 전반적인 이 정부 정책의 문제점에 대한 비판으로 나아갔다.

그 과정에서 다음 아고라는 참신하고 기발한 집회 아이디어를 내놓으며 집단 지성의 메카로 불리어 왔다. 비폭력 무저항주의를 내세우며 ‘닭장차 투어’ ‘물대포샤워’ ‘명박산성’ 등을 만들어내 사회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물론 이런 충격은 촛불집회의 의미를 더욱 고양시켜냈다.


다음아고라는 언론운동으로 진화했다. 확연하게 보도태도의 변화를 보여준 조중동에 대해 시민들의 분노가 아고라에 등장하기 시작했고, 조중동 절독운동이 전개됐다. 이 와중에 한겨레나 경향에 대한 언론소비자들의 집단 광고 운동은 아마도 최고의 언론소비자 운동이 아닐까 싶다. 올바른 사회여론을 생산해 내는 언론에 자신들의 의견을 광고로 게재하려는 사람들의 운동은 포지티브 언론운동의 한획을 그었다고 할 수 있다. 반대로 조중동에 대한 네가티브 운동에서도 새로운 국면의 전환이 전개됐다. 조중동의 아킬레스건이라고 할 수 있는 광고중지 압박 운동이 그것이다. 올바른 보도를 하지 않는 언론에 광고를 하는 기업들에 전화나 이메일, 게시판 글쓰기를 통해 항의하는 활동을 통해 광고 중지 압력을 넣는 것은 집단지성이 발견한 획기적인 아이디어 중 하나이며, 실제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으니 말이다.


여기서 운동은 좀더 확장되고 있다. 바로 올바른 기업에 대한 지원과 잘못된 기업에 대한 반대 운동이다. 소비자 권리찾기라고도 볼 수 있는 이 운동은 기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자연스럽게 다음 아고라 등에 수시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미국쇠고기 문제가 궁극적으로 소비자로서의 정당한 권리를 찾기 위한 운동인만큼 기업에 대한 소비자 권리 찾기 운동은 당연한 귀결이다.


이 과정에서 삼양과 농심이 대조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잘못된 정보와 논리는 집단지성이 아니라 집단 감성을 키웠다. ‘너트가 들어간 라면이라도 괜찮다’는 논리는 광우병 가능성을 우려하며 일어난 소비자 운동의 난센스가 아닐 수 없다. 여기에 지성은 없고 감성만 남았다. 농심을 죽이기 위해 삼양을 띄우다 보니 일어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백번 양보해서 삼양이 좋은 기업이라고 하더라도 지금은 지나친 신화화가 진행되고 있다. 이규영의 글은 그런 면에서 꽤 적절하고 강렬한 비판이라고 할 수 있다(하지만 자극적인 면도 있고, 또 그 이면에 대한 고민은 없다는 점이 아쉽다).


지금의 아고라는 집단 지성이라고 부르기 어려운 면이 많다. 오히려 집단 감성에 휘둘려 하나의 편향에만 열광하고 있다. 정당한 의견개진에 대해서 자신들의 생각과 좀 다르다고 ‘알바’로 몰아세우는 것은 지성이 아니다.


나는 다음 아고라가 집단 감성에서 벗어나 냉철한 집단 지성의 기능을 다시 되찾기 바란다. 그래야 주성영 같은 꼴통에게 ‘집단 마오이즘’ 같은 별 같지도 않은 말을 들을 일이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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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이 항쟁을 만들었다.
21년전 돌과 쇠파이프와 피로 이루어낸 승리를
우리는 지금 작은 촛불 하나로 만들어 내고 말았다.

독재자의 얼굴이 달라졌다고 해서
독재자가 사라진 것이 아니다.
고문이 사라졌다고 하지만
고문의 형태가 달라졌을 뿐이며,
감시와 사찰의 흔적은
여전히 우리 사회의 구석구석에 상존하고 있다.
식민의 구호는 퇴색되었다고 하나
친미사대주의는 여전히 판을 치고 있다.
마찬가지로 '민중'이라는 말은 역사 속에서 나와
지금 우리 광장에 다시 서고 있다.

광화문에서 남대문까지 이어진 촛불은
한점의 희망들이 모여 만든 거대한 불바다였다.
인간이 만든 어느 불빛이 이처럼 맑고 순수하며 위대할 수 있을까.




[출처] 벗이여 해방이 온다 - 윤선애 |작성자 파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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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집회는 처음이다. 그렇게 많은 시위와 집회로 거리에 서봤지만, 이번만은 분위기가 다르다. 아이들 손을 잡고 나온 가족도 보이고, 연인끼리 나온 사람도 있다. 넥타이 메고 앉아있는 셀러리멘도 있는가 하면, 투쟁조끼를 입고 있는 노동자도 보인다. 중절모에 머리 희끗희끗한 할아버지도 있고, 개량한복 입고 나온 할머니도 보인다. 마실나온 것처럼 가벼운 옷차림의 아주머니가 있는가하면, 보기만 해도 아슬아슬한 옷차림에 세련된 화장을 한 아가씨도 있다. 나처럼 자전거 타고 나온 사람들도 보인다. 그뿐인가, 군복을 입고 시위대를 보호하는 예비군들이라니! 마스크를 하고 있는 이들은 대부분 중고등학생이다. 교복을 그대로 입은 아이들도 보인다. 여기에 배후도 없고 주동자도 없다. 이런 집회는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 지금 우리 민중은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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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이들을 거리로 내몰았나. 비폭력무저항을 외치며 촛불 하나 들고 광장으로 나온 이들에게, 제발 우리 얘기 좀 들어 달라고 청와대로 향하는 이들에게 정권은 무력진압을 선택했다. 살수차를 동원해 시민들의 얼굴을 공격하고, 막으라고 준 방패로 학생들의 얼굴을 가격하고, 도둑 잡으라는 진압봉으로 여성들의 뒤통수를 때리고 있었다.


지금은 이미 배후세력도 없고 주동자도 없는 상황이다. 오늘은 또 얼마나 연행할까. 그리고 또 내일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다칠까. 정권의 폭력에 저항하는 방법은 더 많은 이들이 거리에 나서는 수밖에 없다. 국민의 평화적 시위에 물대포와 방패와 진압봉으로 맞서는 정권에게 더이상의 희망을 기대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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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어떤 발표가 나올까? 기대하나마나다. 내일은 동네 구멍가게에서 초하나 사들고 광화문에 나가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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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은 남한산성에 있다…’


김훈의 소설 <남한산성>에 자주 나오는 글귀다. 사실 이 글귀는 조선왕조실록에서 먼저 실렸던 글귀다. 이 짤막한 글귀만큼 당시의 초라하고 궁색했던 조선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말이 있을까. 난 그말이 궁금했다. 그리고 그저께 ‘나는 남한산성에 있었다.’


우리 삶도 언제든 ‘독안의 든 쥐’처럼, ‘남한산성에 갇힌 조선왕’처럼 초라해질 수 있다. 그 순간 우리에게 길은 있을까. 나가서 항복을 하는 길도, 안에서 굶어죽는 길도, 길이 아니면서 길이 되는 그 길에서 우리는 망설이고 있다. 김훈은 썼다. “그해 여름, 갈 수 없는 길과 가야 할 길은 포개져 있었다”라고…


남한산성은 김훈 덕분에 유명세를 탔고, 숭례문의 희생으로 더욱 견고해지고 있다. 소설 <남한산성>이 유명해지면서 경기도는 지난해부터 남한산성 일대에 대한 대대적인 복원과 정비사업에 나서고 있다. 숭례문이 불타면서 남한산성의 수어장대를 비롯해 방연방재 장비와 시설이 갖추어질 전망이다. 병자호란 직전에 난리를 예감했던 인조가 성벽을 더 튼튼히 했었다.


'아껴서 빈틈없이 다져놓은 성이었다. 급경사로 치고 올라간 구간에서 성벽의 기초가 뒤틀리지 않았고, 급히 굽이진 구간은 오히려 가벼워 보였다. 성벽은 산의 높낮이를 따라 출렁거렸고, 성을 쌓은 자의 뜻에 따라 더불어 노는 형국이었다. 기울거나 주저앉거나 돌의 이빨이 빠진 자리가 없었다.'


그 시절에 비하면 성벽 여기저기에 잡풀이 자라고 곳곳에 금이 가 있는 모습은 초라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 역시 시간이 훑고 간 흔적이고 시간 자체가 유산의 일부다. 치욕의 역사가 서린 곳이지만, 삶과 죽음을 넘나들던 경계였다. 당시 많은 이들이 성 안에서 굶어 죽고, 얼어 죽고, 도망가다 죽고, 싸우다 죽었다. 그러나 그들이 맞서 싸웠던 만주족은 지금 역사 속에나 존재한다. 그리고 그렇게 처참하게 죽어나갔던 이들의 후손들은 이 땅에 살아남아 여기서 살아가고 있다. 경계는 모호해졌고, 삶은 분명해졌다. 청과 싸울 것을 주장했던 김상헌은 죽어서 사는 길을 모색했다. 전쟁이 끝나고 윤집, 오달재와 함께 청나라에 끌려가 순절했다. 그들의 위패는 남한산성 현절사에 모셔져 있다. 청과의 화의를 주장하는 최명길은 살아서 길을 모색하고자 했다. 만주족이 사라진 지금, 살아남았기 때문에 강한 것인가, 아니면 강하기 때문에 살아남은 것일까. 다시 김상헌과 최명길의 두 길은 결국 포개져 있었다.




김상헌, 윤절,오달재의 위패가 모셔져 있는 현절사. 6월의 신록이 우거지고 있다.
그들을 우리는 '순절'했다고 말한다. 죽어서 산 자들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그때나 지금이나 살아남는 건 중요한 과제다. 우리 사회도 먹고 사는 일의 중요성을 따져서 지금의 정부를 탄생시켰다. 그러나 그 결과 참담하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지금 시민들은 ‘먹는 문제’로 거리로 나서서 새벽까지 거리집회를 하고 있다. 경찰들은 불과 20여년전에 있었던 방식으로 배후를 잡겠다고 드잡이를 나섰지만, 애꿎은 시민들만 닭장차에 싣고 있다. 2MB정부에게 분명한 길을 가라고 국민은 요구하고 있지만, 그 길은 2MB가 죽는 길이니 쉽게 나가지 못한다. 하지만 알까, 어차피 그가 가야할 길은 미국이 원하는 길이 아닌 국민이 원하는 길이라는 것을 말이다.


참으로 비루하고 고단한 삶을 우리는 살고 있다. 고기 한점 먹느냐 마느냐 가지고 죽자 살자 5월의 뜨거운 거리로 나서는 우리의 삶은 얼마나 피곤한 삶인가. 하지만 이북이나 이남이나 먹고 사는 문제는 중요하다. 먹고 사는 문제가 그냥 거기 일개의 삶으로 멈춘다면 그것은 그냥 생물학적인 문제일 뿐이다. 하지만 그것이 거리로 나오면 달라진다. 북한이 두려워하는 것이 그것일 것이다. 그리고 이 문제는 지금의 이남 정권도 분명히 두려워해야 할 문제이고,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 문제이다.


지난달 4월 18일 쇠고기 협상이 타결되고, 이제 40일이 지났다. 인조는 47일 동안 남한산성에 갇혀 있었다. 이제 7일 남았다. 과연 사는 길이 어디에 있는지 2MB는 알아야 할 것이다. 지금 바로 청계천 광장에 나와 국민들 앞에 삼배를 하고 아홉 번 머리를 땅에 찧으며 쇠고기 협상을 다시 하겠다고 해야 한다. 그것은 치욕이 아니라 그가 살 길이고 국민이 살 길이다.


대통령은 지금 중국에 있다... 국민은 지금 청계천에 있다.

하도 쇠고기 문제로 시국이 어수선하다보니 글이 이렇게 새나간다. 게다가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시간에도 청계천과 종로 일대에서 싸우고 있을 또 다른 나의 모습들로 인해 마음이 편치 못했다. 글로 위로하자는 것은 아니다. 이번주 금요일에는 나도 반드시 거리에서 연행될 각오를 할 것이다. 내 성격상 무임승차는 싫다.


아무튼 남한산성은 걷기도 좋고 찾아가기도 어렵지 않다. 복잡하고 고단한 인생들에게 한번쯤 권하고 싶다. 남한산성 성벽길은 한바퀴 천천히 돌아도 4시간 정도면 충분하다. 걷는 것을 즐기는 이에게 남한산성은 최적의 사색장소가 아닐까.


지하철 8호선 산성역 2번 출구로 나와서 9번 버스를 타고 산성로터리까지 갈 수 있다. 자동차로 온다면 주차료 1000원이다. 남한산성 관리사무소에서 산성지도를 얻을 수 있다. 갑갑한 마음 산성에서 달래 보자.


 



 ^ 현절사로 오르는 길목에서



^ 6월이 내일 모레라 그런지 녹음이 한창이었지만
봄바람이 불어줘서 산성걷기는 참 좋았다.








^ 현절사에서 산성에 오르는 길
























^ 남한산성 군포지의 흔적. 일종의 초소건물이라고 볼 수 있다.
현재 남한산성에 남아 있는 군포지는 없고 이렇듯 흔적만 남아 있다.












^ 수어장대로 오르는 길목. 이날은 준비없이 한 방문이었다.
현절사에서 출발해 여기 수어장대로 오르는 길목에서 걸음을 멈추고 내려왔다.
한시간여도 안되는 시간이었다.  
다음에는 제대로 한번 돌아보리라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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