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을 크게 보아 한강의 수경이라는 X축과 북악산, 남산, 관악산으로 이어지는 산경의 Y축으로 이뤄진 사분면이다. X축과 Y축이 만나는 산수의 중점에 한남대교가 있지 않나 싶다. 원래 서울 도심의 수경축은 청계천이었다가 강남으로 서울이 뻗어나가면서 한강으로 대체됐다. 


홍은택 씨가 쓴 <서울을 여행하는 라이더를 위한 안내서>의 한 대목이다. 홍은택 씨는 <아메리카 자전거 여행>이라는 자전거 여행기를 쓰기도 했다. 얼마전 후배로부터 선물받은 이 책은 올해들어 자전거 출퇴근을 일주일이 2~3회 정도 하고 있는 나에게는 매우 유용하다. 글들은 대부분 한겨레신문에 연재되었던 내용들을 책으로 다시 정리해서 내놓았는데, 자전거로 서울에서 출퇴근 하는 이들이거나 자전거 출퇴근을 생각하는 이에게는 반드시 읽어야 할 필독서가 아닐까.



여행 기분을 내며 자전거 출퇴근을 하고 있지만 아무래도 여행과 같지 않다. 출퇴근과 여행 모두 출발지와 목적지가 있다는 점에서 같다. 하지만 여행은 매일 목적지가 달라질 수 있다는 점에서, 또 꼭 가야할 목적지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필연적 목적지가 있는 출퇴근과 다르다.



자전거에 대한 생각, 그리고 자전거에 의한 여행을 바라보는 관점은 홍은택 씨의 생각에 상당부분 동의하고 있다. 작년 말 자전거 전국여행을 하면서 가졌던 감정의 일부분이 여전히 자전거 출퇴근 행위 중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퇴근길 자전거를 타고 지나면서 보는 풍경들-버스정류장의 사람들, 아현동의 가구상점, 마포대교를 건너며 보는 한강의 일몰, 여의도 공원의 한가로움, 영등포역 주변의 분주함-은 퇴근을 여행으로 만들어 주는 요소들이면서 일상의 한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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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는 그 안장에 올라타고 길을 달릴 때부터 곧 여행이다.
바람을 가르고 힘차게 페달질을 하면 온갖 지나치는 군상과 일상이 꿈처럼 몽롱하게 스쳐지나간다. 일상이 여행이 될 수 있다는 것은 자전거 출퇴근이 가지고 있는 묘한 기운이다. 책의 저자 역시 그러한 면에 주목해 자전거 출퇴근을 꾸준히 하고 있다.


자전거 타기는 바람에 얼굴을 씻는 즐거움이었고 숲의 향기에 흠뻑 젖는 희열이었다. 미래가 불투명했던 시절, 자전거 타는 것 외에 다른 아무 목적이 없었을 때 가장 행복했다. 자전거는 내게 공간 이동의 자유뿐 아니라 나를 둘러싼 모든 것으로부터의 자유를 줬다. 지금은 자전거 타기, 그 자체보다 자전거를 타던 그 때의 질박한 생활이 그리운 것인지도 모른다. 과제와 고통, 그리고 성취가 분명했던 시절.


언제나 여행을 꿈꾼다. 꿈꾸는 자는 준비된 자다. 자전거 출퇴근을 통해 꿈꾸는 많은 것들, 여기 이 책에 구체적으로 담겨져 있다. 모두가 자전거로 꿈꿀 수 있는 세상을 바라며, 그런 꿈을 함께 나누고자 하는 이에게 이 책 <서울을 여행하는 라이더를 위한 안내서>를 강력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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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왔다. 나름대로 성장의 고통과 아픔이 있었다. 자연과 만나는 감동이 있었고, 항구와 시장과 벌판, 공장에서 사람들의 살아가는 모습도 보았다. 가을이 깊어가는 한가운데서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과 땅을 보았고, 바람과 비도 원없이 맞아보았다. 가을볕에 타버린 얼굴과 더 탄탄해진 다리근육과 맑아진 머릿속을 가지고 돌아올 수 있어 기쁘다. 몸이 가벼워진 것처럼 마음도 가벼워졌다. 삶을 더 가볍게 살 수 있을 것 같다.


송탄역 근처의 여관방에서 눈이 떠진 것은 6시. 알람도 없고 창밖도 어두운데 눈이 떠졌다. 오늘이면 서울로 들어간다는 설렘 때문이었을까? 다시 잠들어보려 했지만, 잠은 다시 찾아오지 않았다. 뉴스를 틀어 세상 돌아가는 소식을 심드렁하니 듣는다. 건성건성 듣다가도 일기예보만 나오면 몸이 돌아간다. 버릇이 됐다.


터미널 근처에서 아침을 먹고 1번 국도를 따라 길을 나섰다. 아침부터 많은 차들이 오고간다. 서울에 가까운 국도라지만 도심을 빠져나오면 갓길은 엉망이다. 왼편으로 차들은 쌩쌩 소리를 내며 달리고 갓길은 아슬아슬하고 오른편은 논두렁인 길을 달린다. 도심내에서는 아예 차도로 달리는 것이 엄두도 나지 않는다. 인도쪽에 자전거 길을 만들어 놓은 곳도 많지만, 차도의 아스팔트에 비하면 울퉁불퉁하고 곳곳의 지반이 깨지거나 무너져 엉덩이가 무사하기가 어렵다. 그래도 안전하게 가자는 마음에 인도쪽을 택해서 조심조심 갔다. 사람도 피해야지 길도 살펴야지 신경써야 할 게 한두가지가 아니다. 지방에 비해 서울과 수도권 쪽이 자전거에 대한 배려가 훨씬 부족하다. 지방의 큰도시 뿐만 아니라 중소도시들 중 일부는 자전거 도로가 아주 잘 마련되어 있다. 이를 통해 인도로 다니는 사람도, 차도로 다니는 차량도, 그리고 자전거도 모두 안전을 도모할 수 있도록 만들어 놓았다. 그런데 서울로 올수록 이런 정책적 배려는 찾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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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을 가는 길에 1번 국도를 도저히 타기가 어려워 샛길로 빠져 달렸다. 간신히 수원역까지 달려갔는데, 거기서 다시 안양 방향을 알 수 없다. 잠시 쉬어갈 요량으로 길가 간이매점에서 어묵을 사먹으며 길을 물었다.


“저, 자전거로 안양 방향으로 가려는데, 어디로 가야 하나요?”

“자전거로? 잘 모르겠네요. 그런데 자전거로 가려면 한참 걸릴 텐데, 어이구”


자전거 전국여행의 마지막 여정인데, 고작 수원에서 안양 가는 게 한참 걸릴 거라고 걱정해 주는 아저씨의 말에 속으로 웃고 말았다. 고작 10km도 되지 않는 거리인데, 수백km를 달려온 내가 그것이 두렵거나 걱정될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아무튼 우여곡절 끝에 어쩔 수 없이 1번국도를 타고 달렸다. 물론 수원에서부터는 계속 인도로 달렸다. 자출족(자전거 출퇴근족)들은 거침없이 차도를 달린다고 하는데, 자전거 전국여행을 한 나도 도심내 차도를 달린다는 건 꺼리고 싶은 일이다.


수원의 명물이라고 하는 팔달문과 장안문을 지나 의왕시를 향했다. 의왕시내로 진입하니 안양까지 8km라는 이정표가 보인다. 안양에 들어가서는 안양천을 따라 집으로 달렸다. 첫날 집에서 나와 안양천을 타고 시작한 자전거 여행이 이제 다시 안양천을 타고 마무리됐다. 안양천 길에서 만나는 자전거 라이더들이 반갑다. 어린아이부터 노인네까지 안양천 둔치에서 늦가을 맞이 나들이를 나온 모든 사람들이 나를 마중나온 사람처럼 반갑다. 여행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기 위해 떠나는 잠시의 일탈이라는 말이 새삼 떠오른다. 이렇게 나는 돌아가고 있었다. 모천(母川)으로 돌아온 한 마리 연어처럼 내가 다시 돌아간 세상에서 나는 무엇을 쏟아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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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장여관. 이름은 그럴싸한데, 별로 추천할만한 집은 아니다. 근처 다른 여관방들이 어떤지 모르지만 전국일주에서 다져진 여관에 대한 감각을 되살려 보면 그렇다는 말이다. 그래도 온돌이 좋긴 좋다.


김밥나라에서 아침을 해결하고 초지대교로 향했다. 원래는 섬의 서쪽 끝까지 해안가를 따라 가고 싶었다. 하지만 동행한 김 선배도 오후 일찍 집에 가야 한다고 하니 섬의 동쪽 해안만을 타고 초지진을 구경한 후 초지대교를 넘어 서울로 돌아가기로 한 것이다.


건너편 김포와 그다지 멀지 않다보니 큰 바다를 볼 수는 없었다. 하지만 갯벌이나 고기잡이배 등은 반갑다. 바다를 상징하는 것은 이런 것들이다. 갯벌, 갈매기, 고깃배, 파도, 비릿한 바다내음, 등대, 백사장 등등. 초지진으로 내려가는 길 일부에 이런 것들이 있었다. 비록 막막한 수평선은 보지 못했지만 이런 것들이 마음을 위로했다.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바다다!”




길은 자전거 전용도로가 한편에 마련되어 있어서 달리기 편하다. 초지대교까지 조금 힘든 언덕길이 한번 정도... 강화도의 독특한 점은 바로 섬 자체가 하나의 요새라는 것이다.


서울로 통하는 수로는 반드시 이곳 강화를 거쳐야 했다. 때문에 강화는 예부터 독특한 군사기지들이 발전했고, 또 그만큼 치열한 접전이 벌어졌던 곳이며, 수많은 피가 뿌려진 전쟁의 기억을 가진 곳이다. 그것이 바로 ‘돈대’와 ‘진’, ‘보’로 대표되는 군사기지의 흔적이다. 강화도의 돈대-진-보 등은 해양에서 접근하는 적들을 맞아 싸우기 위해 세워진 군사기지들이다. 물론 강화도에는 점등사라든지 마니산, 첨성대 등도 있지만 지정학적 위치로서 강화도가 가지는 역사는 그렇게 아름답지만은 않다. 대몽골 항쟁의 본거지였고, 근대에는 신미양요, 병인양요 등의 서구 열강의 외침을 겪었던 장소다. 한국전쟁 당시 가족과 이웃 사이에도 학살과 보복이 처절하게 되풀이 되어 지금도 전쟁 당시를 떠올리는 것이 금기처럼 된 곳이다.


우리는 일정 때문에 대부분의 돈대나 진, 보를 그냥 지나쳤다. 자전거 여행을 하다보면 이렇게 지나치는 곳이 많다. 자전거는 차보다 느리기 때문에 도로에서 시간을 많이 뺏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달리는 그 과정이 중요하다. 그러다보면 고통스럽게 달리기보다 그것을 즐기는 법을 배우게 된다. 그리고 차로 지나가면 못보는 것들을 볼 수 있는 시선과 여유를 가질 수 있는 것이 자전거 여행의 장점이다.





우리가 초지진을 나온 시간은 11시 50분. 초지대교를 건너온 이후 김포 IC까지는 356번 지방국도를 타고 간다. 지방도로이지만, 자전거 도로와 갓길이 잘 되어 있어 안전한 편이다. 김포IC에서는 다시 48번 국도를 타고 갔다. 한강 제방둑길을 타고 가볼까 했지만, 아는 길로 빨리 가자는 김선배의 제안을 따르기로 했다. 48번 국도를 타고 행주대교까지 무사히 도착했다. 오후 2시가 좀 넘어 행주대교에 도착했다. 갈 때보다 상당히 빨리 왔다.


늦은 점심을 어제의 국수집에서 해결하려 했으나 다시 찾아가는 게 쉽지 않아 한참을 헤맸다. 그리고 찾아가니 국수집은 닫혀 있었다. 어쩔 수 없이 근처 식당을 찾아가는데, 4000원짜리 콩나물국밥에 맛깔난 반찬까지 꽤 괜찮았다. 어제의 국수에 이어 오늘의 콩나물국밥까지 행주산성 근처 식당은 주머니가 크지 않은 사람들에게 참 괜찮은 먹을거리를 제공해 주었다.






늦은 점심을 먹고 4월달 파주 원정을 다짐하고 헤어졌다. 김선배는 들어가는 대로 큰애의 조립장난감을 같이 만들어 주어야 하며, 작은애의 네발 자전거의 뒷바퀴를 떼어주기로 했단다. 결혼하고 아이가 생기면 주말에도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 많아진다. 나는... 딱히 할 일은 없다. 홀가분할 수도 있지만, 때로는 아이들과 함께 하는 즐거움이 부럽기도 하다.


왕복 120여km, 총 주행시간 약 12~13시간의 강화도 여행은 이렇게 무사히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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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로 오랜만에 자전거답게 달렸다. 작년 11월 이후로 이렇게 하루 종일 자전거 타보는 건 처음이다. 사실 많이 긴장하고 걱정했다. 체력은 될까? 자전거는 펑크 나지 않을까? 펑크나면 내가 고칠 수 있을까? 강화도까지 하루에 갈 수 있는 거리일까? 중간에 위험한 곳은 없을까? 길을 잃어버리면 어쩌나? 등등...

예전에 자전거 전국일주 떠나기전에도 그랬다. 걱정을 하다보면 하늘이 무너질까 걱정하는 것처럼 온갖 상황들이 다 떠오르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그냥 가는 게 좋다. 말이나 생각보다 위대한 것은 행동이기 때문이다. 최소한 목숨이 위태로울 정도의 걱정이 아니라면 페달에 과감하게 발을 얹고 돌려보는 거다.


안양천 자전거도로



안양천과 한강이 만나는 합수부 지역에서. 멀리 보이는 다리는 가양대교



행주대교 남단에서 다리위로 올라가는 길


집에서 나와 달리기 시작하니, 지난 번 보다 짐도 마음도 가볍다. 날씨도 비교적 따뜻하고 화창하다. 안양천을 타고 한강을 향해 달리니 윤비(자전거 이름)도 신이 난 것 같다. 씽씽 휘파람 소리를 내는 것을 보니 이 녀석도 기분이 좋은 거다.

함께 가기로 한 김 선배와는 행주대교 북단에 위치한 국수집에서 보기로 했다. 처음 가는 곳이라 한참 헤맸는데, 다행히 행주산성에서 선배와 만날 수 있었다. 시간은 12시 경. 점심은 국수로 하기로 하고 근처 <원주 국수집>을 찾아갔다.



원조국수집 주요 메뉴인 잔치국수, 건너편에 희미하게 보이는 그릇에는 비빔국수



원조 국수집, 벽에 세워놓은 자전거들.


우리가 찾아간 '원조 국수집'의 국수는 3,000원. 반찬은 달랑 김치 하나였지만, 양만은 어느 집 국수보다 푸짐했다. 아침을 늦게 먹고 출발한 나는 잔치국수를 다 먹지 못할 정도였다. 김선배는 비빔국수를 시켰는데, 그런대로 맛있단다.

선배 말에 따르면, 원래 이곳 원조국수집은 자출사(자전거로 출퇴근하는 사람들)의 본거지란다. 이곳에서 자주 모임을 가진다는데, 이날도 모임이 있었나보다. 김선배나 나도 회원이기는 한데, 가입인사만 했지 들러보지도 않았던 터라 그냥 모른체 했다. 다른 자전거 회원들은 우리가 누군가 싶은지 흘깃흘깃 쳐다본다. 민망했다.

밖으로 나와보니 좋은 자전거들이 즐비하다. 자전거를 잘 모르는 나는 그냥 좋아보인다 싶었는데, 김선배 말로는 보통 50만원 이상 되는 것들 같다고 한다. 우리 자전거는 20만원 대의 저렴한 자전거. 그래도 저 으리으리한 자전거 중에 과연 몇대나 한달간 전국일주를 해보았을까 생각하니 은근히 내 자전거가 자랑스럽다. (원조 국수집은 행주산성 입구에 있다. 매주 일요일은 휴무)

점심을 든든히 먹고 출발한 시간은 오후 1시경. 예상보다 꽤 늦은 출발이었다. 행주대교 남단에서 48번 국도와 만나는 지점이 있다. 거기서 48번 국도만 타고 내내 달리면 강화대교를 건널 수 있다. 처음 가는 것인만큼 48번 국도만 내내 따라 달리기로 했다.

행주대교 넘어 초반에 자전거 도로가 조금 있다가 급격히 줄어들었다. 다시 김포 근처에 이르니 넓직한 갓길이 나오고 차량통행도 한산해졌다. 최고제한속도가 80km라고 하지만 한산한 도로에서 그렇게 달리는 차량은 없다. 전국일주 하면서 고속으로 달리는 차량 소음에 익숙한 나에 비해, 김선배는 약간 긴장하는 듯했다.

잘뻗은 국도변도 김포시내에 들어서자 없어지고 우리는 차도 위로 달렸다. 역시 시내주행이 까다롭다. 차량들이 속도는 많이 떨어졌지만 통행량이 증가하기 때문이다. 다시 김포시내를 벗어나면 얇은 갓길이 나온다.

김포를 벗어나 강화대교를 건넌 것은 3시 반. 행주산성을 떠난 후 2시간 반만에 강화대교를 건널 수 있었다.



시원하게 뻗은 서울-김포 48번 국도



나를 믿고 첫 자전거 여행을 나선 김선배



강화대교 건너기 전


강화대교 건너편 휴게소에 들려 쉬었다. 우리는 서로 엉덩이의 안부를 물었다. 목표한 강화도에 왔다고 생각하니 힘이 쭉 빠지는 느낌이다. 커피 한잔을 마시고 휴게소 매점에서 지도를 얻어 다음 목적지를 논의했다. 그래도 최대한 달려서 석양을 보자는 욕심에 아픈 엉덩이를 달래며 안장에 올랐다. 계획은 해안도로 북쪽길로 달려 섬의 서쪽까지 가는 것. 하지만 길을 잘못들어 그만 해안도로 남쪽길로 들고 말았다. 다시 길을 돌아오다 착한 동네 주민분을 만났다. 그분도 자전거를 타고 가시길레 붙잡고 물었다.

"아저씨 해안도로 북쪽길로 가려면 어디로 가나요?"
"아 연미정 가려고 하는구만요. 거기 좋지. 얼마전까지 군사지역이라서 못들어갔는데, 요즘에는 주말에 한해서 신분증을 제시하면 들어갈 수 있다고 하던데..."
"아네, 그쪽으로 가려면 어디로 가나요?"
"그게 휴게소에서 아래쪽으로 내려가는 길로 가는 거지. 군부대 옆으로 통과하는 거에요. 나도 연미정이나 한번 가볼까 생각중인데, 하하"

아저씨는 아주 유용한 정보 두가지를 알려준 셈이다. 해안도로 북쪽길과 '연미정'이라는 곳이 참 볼만하다는 것. 아저씨 말대로 휴게소에서 아래쪽으로 내려가는 길을 따라 가니 반듯한 자전거 길이 나온다. 하지만 그 옆으로는 견고한 철조망이 쳐져 있어 좀 삭막하다.


얕은 차단벽도 있는 자전거 전용 도로

아저씨가 안내해 준 길은 해안도로로 연미정 가는 길도 맞았다. 그런데, 우리가 간과한 정보가 있었으니... 강화도는 북한과 가까이 있다는 점이다. 연미정 가는 길에 해병대 군인 아저씨들이(무척 앳되 보였다) 도로를 막아섰다.

"무슨 목적으로 오셨습니까?"
"그냐 자전거타고 왔는데... 관광이죠."

물론 살풋이 웃어주는 것도 잊지 않았지만, 군인 아저씨들은 더이상 가는 것은 안된다며 돌아가라고 했다.

"민통선 안으로 출입하실 수 없습니다."

민통선이라니, 우리가 참 많이도 올라왔나 보다. 민통선이라는 개념을 순간 망각한 나는 개념없는 질문을 했다.

"그럼 혹시 다른 길로 갈 수 있는 길이 있나요?"

군인아저씨도 황당했을 텐데 친절하다.

"글쎄요. 아무튼 돌아가셔야 합니다."

씁쓸하게 웃으며 돌아서서 가려는데, 군인 아저씨들 우리에게 거수경례도 붙인다. 오랜만에 받아보는 거수경례에 웃으며 "수고하세요"라고 답했다. 나는 왜 군인을 보면 늠름하다는 생각보다는 참 고생한다는 생각이 들까.

제법 넓직한 평야지대를 형성하고 있어 우리는 어림짐작으로 강화군청(중심지)이 있을 만한 지역을 찍어 바로 농로로 들어섰다. 지도에도 없는 임시도로길을 달렸다. 논들은 한번 밭갈이를 해주었는지 객토가 잘 되어 있다. 오랫동안 가물었을 텐데도 한번 객토를 해놓으니 검고 찰진 흙들이 밖으로 드러나 보였다.


임시도로를 달리는 김선배. 평화로운 강화의 봄이 느껴졌다.



임시도로 위를 달리는 김선배

결국 우리는 강화군내로 들어왔다. 거기서 숙소를 잡았다. 김선배의 네비게이션에서 검색해 나온 유일한 여관 독일장 여관에 짐을 풀었다. 물론 군청 주변에 여관은 많았다. 결론적으로 여관 상태는 그다지... 아무튼 짐을 풀고 저녁식사를 하러 나왔다.

여기저기 둘러보다 마땅한 집이 없는데, <소문난 감자탕집>이 있어 어떤 맛이기에 소문났다고 자랑하나 궁금해 찾아들어갔다. 결론적으로 그냥 평범한 감자탕이다. 우거지가 많이 들어갔다는 것이 좋았다. 고기맛은 나쁘지 않다. 국물맛은 진한편이다. 감자는... 하나도 못먹고 다 뺏겼다.


<소문난 감자탕>집의 감자탕 가장 작은 것(1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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찜질방은 항상 어수선하다. 밤늦게까지 TV시청이 이어지고 끊임없이 이어지는 아주머니들의 그 많은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이 끝나는가 싶으면 남자들은 갖가지 잠자리 기행-예를 들어 코골기, 이빨갈기, 잠꼬대 등등-을 선보이고, 새벽에 자지러지게 깨어나 우는 아이들까지 참 많은 것을 겪기 마련이다. 그런 상태에서도 잠을 잘 수 있는 내성을 키운지는 오래지만, 간간히 그렇게 잠이 깨면 부시시 일어나 물이라도 한모금 마셔서 화를 삭힌다.

어쨌든 그럴걸 알기 때문에 일찌감치 사람들이 <주몽>을 보느라 정신없는 시간에 나는 눈을 붙였다. 새벽에 두어번 깨고, 6시에 잠자리를 털고 일어나 욕탕에 들어가 잠시 잠든 몸을 한번 더 깨웠다. 찜질방에서 자는 날은 항상 그렇다. 솔직히 욕탕에 들어가 있으면 이제 그만 쉬고싶다는 마음이 굴뚝같다. 그렇지만 서울까지 가야한다는 생각에 미치면 마음을 다시 단단히 부여잡는다.

정읍을 나왔을 때 오늘의 목표는 군산이었다. 705번 지방도를 타고 이평면까지 가고 거기서 710번 지방도를 타고 신태인방향으로 향했다. 이길 옆에 만석보유적지가 있다. 동학혁명의 발원지인 것이다. 정읍 여기저기에는 동학혁명을 기리는 장소와 유적이 많다.

신태인 방향으로 가다가 신태인으로 들어가지 않고 30번 국도를 타고 부안-김제 이정표를 보고 달렸다. 조금만 달리면 부안으로 가는 30번 국도와 김제로 가는 29번 국도 갈림길이 나오는데 여기서 29번 국도를 타고 김제로 향했다. 김제에 들어섰다는 것을 실감한 것은 바로 '지평선'이었다. 쭉 뻗은 도로의 끝에도 지평선이 보이고 양옆으로 펼쳐진 논에도 지평선이 보였다. 여기가 그 넓다는 김제평야다. 시원스럽게 지평선을 향해 내달리며 이 넓고 풍요로운 땅을 보는 것만으로 흐뭇해졌다.






김제시내로 들어가지 않고 바로 군산방향으로 길을 틀어 달리기 시작했다. 김제에서 군산 가는 길에 학성강당에 들려볼 생각이었다. 이곳에서 대학동기가 공부를 하고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정읍에서 전화를 했더니, 그 사이에 어느새 임용고시도 보고 발령도 받아 올해부터 광주의 모중학교에서 한문을 가르치고 있다고 한다. 정읍에서 전화했을 때에서야 알았으니, 미리 알았다면 광주에서 얼굴이라도 볼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그러나 같이 공부하는 형이 그런 아쉬움을 단숨에 털어버리게 했다.

"시골에 왔는데, 하룻밤 묵고 가야제."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에 내 발목이 잡혔다. 아마도 비때문에 짧게 갔던 것을 빼고는 오늘 최단시간을 달렸다. 10시에 하루 여정을 마쳤으니 말이다. 하지만 형 덕분에 큰 스승님까지 뵐 수 있었고, 좋은 말씀도 들을 수 있었다. 형은 이곳에서 일가를 이루었다. 강당에서 10년 공부를 마치고 분가해 지금은 학성강당 옆에 손수 한옥집을 짓고,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공부하며 살고 있다. 지금은 가족들과 함께 된장을 만들어 판매하기 위해 준비 중이다. 옛 유학자들은 모두 주경야독을 했다면서 자기는 아직 깨달음에 이르지 못했기 때문에 계속 공부하고 학문을 익힐 거라고 한다.

격물치지, 어떤 일을 하던, 어떤 물건을 보던 그 안에 들어 있는 이치를 깨닫는 것, 그것이 공부란다. 학문은 묻고 배우면서 익히는 것이고 공부는 일하면서 익히는 거라고 한다. 어떤 일이든, 그것이 가지고 있는 이치를 깨닫기 위해 노력해야 하며, 그것이 학문의 시작이라는 것이다.

무슨 일을 하던, 어떤 자리에 있던 거기서 최선을 다하는 것, 그래서 세상이 돌아가는 진리를 터득해 가는 것, 그것이 삶이다. 직접 집을 짓는 근이 형을 돕기 위해 난생 처음 전기톱으로 나무를 손질하면서 '일'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 본다. 그리고 나는 어떤 '일'을 하며 거기서 무엇을 생각하고 배울 것이냐는 자문에, 떨어지는 무수한 톱밥보다 많은 생각에 생각이 겹쳐지는 것을 보았다.





주행거리 : 43km
주행시간 : 3시간
주행구간 : 정읍>이평면>신태인>김제>학성강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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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자전거 여행은 국도와 지방도를 번갈아 이용합니다. 일단 국도 정보를 통해 가는 길을 가늠해 보는 게 보통이죠. 그러다가 관광지 등을 찾아가기 위해서는 국도를 빠져나가는 것이고요. 국도에 있는 숫자를 잘 보시면 홀수는 남북을 잇는 도로이며 짝수는 동서를 잇는 도로입니다. 만일 내가 짝수국도를 타고 있다면 동서를 있는 도로를 타고 있다고 보시면 되겠죠.


아래 정보는 http://www.letsgobike.com/ 에서 퍼온 것을 조금 다듬었습니다.


◎ 1번국도(문산-목포)

목포에서 신의주까지 갑니다. 1번 국도는 우리나라 서부 주요도시들을 다 지난답니다.

문산→파주→고양→서울→안양→수원→평택→천안→조치원→공주→계룡→논산→전주→정읍→장성→광주→나주→무안→목포


◎ 2번국도(신안-부산)

신안-부산입니다. 남해를 질주하는 국도입니다.

신안→목포→강진→순천→진주→마산→부산


◎ 3번국도(철원-남해)

남해에서 북한의 초산이라는 곳까지 갑니다. 한반도 중앙을 지나는 국도이죠.

철원→동두천→의정부→서울→성남→이천→장호원→충주→문경→상주→김천→거창→진주→남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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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구상나무




 



영암의 식당에서 아침을 먹으려니 일단의 사람들이 식당으로 들어섰다.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들어보니 오늘 월출산을 오르려는 사람들이다. 영암주민이 월출산 자랑을 늘어놓는다. 그러고 보니 영암에서 길을 물어보거나 물건을 사러 갈 때면 "월출산에 가러 왔냐"는 질문을 받게 된다. 그럴때마다 몇번 온적이 있다고 하면 이것저것 월출산 자랑을 늘어놓기 시작한다. 월출산에 대한 영암 사람들의 자부심이 매우 크다는 걸 느꼈다. 나도 월출산을 3번 정도 오른 적이 있다. 월출산은 멀리서 바라보아도 멋지지만 그 산세 안으로 들어가면 정말 아름다운 산이다. 주말이라서 그런지 월출산을 찾는 사람이 많아 보였다. 식당에서 본 사람들도 인천에서 밤에 출발해 내려온 사람들이었다. 

월출산을 뒤로하고 13번 국도를 탔다. 솜털구름들이 하늘을 덮고 있었지만 날씨는 매우 쾌청했다. 자전거 타기 참 좋은 날씨다. 영암에서 나주까지는 20여km에 불과해 2시간도 채 안되어 나주에 도착했다. 여기서 광주를 들어가는 길은 13번국도를 통해 광주 서쪽에서 진입하는 방법과 1번 국도를 타고 광주 남쪽에서 진입하는 방법이 있다. 출발할 때는 13번 국도를 생각했는데, 막상 나주에 들어와 보니 1번국도 쪽으로 영산강의 지류에 나 있는 자전거 도로가 보기 좋아 이 도로를 탔다.

도로가 좋다는 이유 말고도 '1번'이라는 숫자가 주는 매력도 컸다. '드디어 1번 국도를 타는구나'라는 생각을 하니 벌써 서울에 거의 다 도착했다는 느낌마저 들 정도로 기뻤다. 1번국도변의 자전거도로를 달리면서 영산강과 나주평야를 같이 보는 기쁨도 컸다. 강에는 철새들이 긴 여행을 준비하는 듯 떼지어 이리저리 날라다니며 분주하고 멀리 빈 들판에서는 논둑을 태우는 연기가 솔솔 피어올랐다. 

광주를 들어가는 경계선에 들어간 시간이 12시 10분 전. 이곳에 사는 사촌누나에게 전화로 오전 중에 광주 진입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제 대략 거리와 시간의 관계에 대해 감을 잡고 있었다. 부산과 달리 광주에서 시내 중심가로 들어가는 길은 매우 난감했다. 갓길도 없고 그렇다고 인도도 없어 그냥 차도로 내달리는데, 시외곽이라 차량들의 통행도 많고 속도도 이만저만이 아니라 위협적이다.




광주에서 후배를 만나 점심한끼 잘 먹고 다시 오늘 묵을 사촌누님네 집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광주 일곡지구에 있는 사촌누님의 집은 광주에서도 북쪽 끝이다. 시내 중심가에서 길을 또 헤매다가 시간을 허비하고 어느 굴다리 밑에서는 또 넘어지면서 어렵게 찾아갔다. 항상 시내 주행이 문제다. 길찾는 것이 여간한 일이 아니다. 길치는 어쩔 수 없다.

누님이 차려준 거나한 저녁상을 앞에 두고 자전거 여행 얘기며 직장 얘기들을 오간다. 오랜만에 마음 편하게 이야기하며 먹는 저녁식사였다. 식구, 그것은 같이 밥을 먹는 사람들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주행시간 : 9시간
주행거리 : 65km(도상)
주행구간 : 영암터미널 >신북면 >영산포 >나주시 >광주 >일곡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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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구상나무



 




비가 오면 빗물로 인해 도로 위에 얇은 층이 형성됩니다. 이 층은 물만이 아니라 도로위에 있던 먼지 등의 부유물이 섞여 있기 마련이죠. 물도 그렇지만 이런 부유물들로 인해 도로는 자연스럽게 매우 미끄러워집니다. 차량 통행이 많은 도로의 경우에는 차량에서 흘러나온 각종 기름들이 같이 섞이게 됩니다. 우천시 자전거 여행은 매우 위험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죠.


그리고 시야확보도 어려워집니다. 모자를 써도 빗물로 인해 전방을 제대로 관찰할 수가 없을뿐더러 만일 백미러를 하고 있다고 해도 백미러 역시 빗물에 노출되어 있다보니 쉽게 뒤에서 오는 차량을 살피기도 어렵습니다. 게다가 빠른 속도로 지나가는 차량으로 인해 고인 빗물을 옴팡 뒤집어쓰는 경우도 종종 있죠.


타이어, 핸들, 브레이크, 페달 모든 면에서 자전거는 빗속에 100%노출되는 구조입니다. 그러다보니 빗속에서 일어날 수 있는 기능고장 사례도 많지요. 브레이크 패드와 림이 젖기 때문에 제동력이 떨어집니다. 핸들부분의 기어조절장치에도 물이 들어가고 장갑이 젖었을 경우 기어 조정도 애를 먹게 됩니다.


도로를 함께 이용하는 차량과 자전거는 끊임없이 서로 소통합니다. 자전거는 수시로 뒤에서 오는 차량에게 무언의 신호를 보내고 차량 역시 여러 방법으로 앞에 달리는 자전거에게 신호를 보내기 마련이죠. 비는 이런 소통을 방해하기도 합니다.


자전거가 비를 맞게 되면 반드시 청소를 하고 기름칠을 다시 해야 합니다. 가급적 비가 올 거라고 예상되면 자전거를 몰지 않는 게 좋습니다. 물론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비를 맞게 되면 체온이 떨어지는데 거기에 무리해서 페달을 밟으며 운동을 하니 감기에 걸리기 십상입니다. 자전거도 사람도 비를 맞은 후 관리를 잘해야 건강한 여행을 지속할 수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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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구상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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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거리 자전거 여행을 하다보면 예상했던 장해를 만나도 당황스럽지만, 예상치 못한 장해를 만나면 중도에 여행을 계속할지를 심각하게 고민하게 됩니다. 저 역시 한라산 등반 이후 예상치 못한 다리근육통으로 여행을 계속해야 할지를 고민해야 했습니다. 다행히 등반할 때 쓴 다리근육과 자전거 페달을 밟을 때의 근육이 서로 다른 것 같더군요. 자전거 페달을 밟고 갈 때는 고통이 걸을 때만큼 심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여행은, 특히 혼자 가는 여행은 수많은 자기연민을 불러일으키고 감상에 빠지게 하면서 스스로 회의에 빠져드는 일이 잦아집니다. “내가 이 짓을 왜 하나” “집에 가고 싶다” “애인이 보고 싶다” 등등 별의별 생각이 나를 유혹합니다.


여행의 준비과정부터 마음가짐을 잘 새겨넣는 것이 중요하듯이 여행 중간 위기의 순간에도 다시 한번 마음가짐을 제대로 갖추는 게 중요합니다. 일단 끝까지 해보겠다는 각오와 보다 분명한 목표의식을 가진다면 목표에 도달하는 정상적인 방법은 여러 가지입니다. 여행의 중간정도를 지나는 시점에서 일정이나 경유지 변경은 그중 하나일 뿐이고, 중량을 줄이기 위해 우편으로 안 쓰는 짐을 보내는 것도 좋겠죠.


여행은 온전히 자기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입니다. 무엇보다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도 자기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죠. 즐겁고 기쁠 때는 잘 모르지만 어렵고 힘들고 고통스러울 때 나의 치부는 내 앞에 드러나게 됩니다. 이때 그것마저 온전히 내 것으로 받아들이고 그것을 끌어안고 갈 수 있는 힘, 그것이 자기애가 아닐까 합니다. 누구나 후회를 하고 자괴에 빠지고 실패를 두려워하며 좌절을 고통스러워합니다. 하지만 그런 것이 인간이며 그것이 바로 자기자신일 때, 그럴 때 생기는 자기연민으로 자기를 사랑하는 것을 배우는 것, 그것이 자전거 여행이 아닐까요.


여행 중 하루하루 자신을 돌아보고 기록한다면, 먼훗날 자랑스러운 자신의 모습으로 기억될 역사의 한페이지가 있음을 뿌듯하게 여길 때가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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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구상나무




돌아보면 저는 참으로 무식하게 제주를 여행했네요. 좀 여유있게 제주를 느껴야 했는데, 무척이나 아쉽습니다. 보통 제주도 일주를 1박2일만에 마무리 하는 건 정말 달리기만 했다는 것입니다. 위 여행기에도 나오지만 이튿날 제대로 관광지를 둘러본 곳은 섭지코지 뿐이 없습니다. 그 많은 제주의 명소를 그냥 지나친 것이죠.


제주도 자전거 여행을 간다면 최소한 제주도 일주만 2박3일을 잡아야 합니다. 여기에는 한라산 등정은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좀 넉넉잡고 정말 관광다운 관광을 하며 간다면 3박4일을 추천합니다. 아래는 추천코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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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차 :

제주항(제주공항) -> 제주시 -> 용두암 -> 이호 해수욕장 -> 고내해안도로 -> 애월-곽지전망대 -> 곽지해수욕장 -> 협재해수욕장 -> 한림공원(협재굴, 쌍용굴) -> 금능 석물원 -> 절부암 -> 고산해안도로 -> 차귀도


2일차 :

차귀도 -> 수월봉 -> 송악산 -> 사계해안도로 -> 용머리해안 -> 산방산 -> 화순해수욕장 -> 안덕계곡 -> 중문관광단지 -> 천재연폭포 -> 주상절리 -> 여미지식물원 -> 신라호텔 -> 롯데호텔 -> 약천사 -> 월드컵경기장 -> 외돌개 ->


3일차 :

서귀포시 -> 천지연폭포 -> 정방폭포 -> 남원큰엉 -> 신영영화박물관 -> 제주민속박물관 -> 표선해수욕장 -> 섭지코지 -> 성산일출봉


4일차 :

성산항 -> 우도 -> 산호해수욕장 -> 검밀레 -> 성산항 -> 종달리 해수욕장 -> 만장굴 -> 김녕미로공원 -> 제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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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구상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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