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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돌아가신 김대중 전 대통령은 역대 대통령 중에서 가장 오랜 기간인 5년여의 수감 생활을 하신 분이죠. 그러나 그는 감옥 생활에는 또 다른 즐거움이 있던 공간이었다고 회상했습니다.

“나의 경우, 감옥 안에서 네 가지 즐거움을 맛보았습니다. 그 첫째이자 가장 큰 것이 독서의 즐거움이었습니다. 과거 1977년 청주 교도소에서 2년간의 생활은 그야말로 독서의 생활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철학·신학·정치·경제·역사·문학 등 다방면의 책을 동서양의 두 분야에 걸쳐서 읽었습니다. (중략) 진주와 청주에서의 4년여의 감옥 생활은 나에게 다시없는 교육의 과정이었습니다. 그리고 정신적 충만과 향상의 기쁨을 얻는 지적 행복의 나날이었습니다.”
- <새로운 시작을 위하여> 중에서

얼마전 사형수의 자살이 사회적 이슈가 되었습니다. 그가 남긴 글에서는 사형에 대한 두려움이 담겨 있었다고 합니다.

한나라당 박민식 의원에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2005년 이후 전국 교정시설에서 자사를 시도한 사람의 수는 422명에 달하며, 이중 72명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나왔습니다. 이중 살인(28명, 38.9%)으로 복역 중인 수용자가 가장 많았고, 다음으로 성폭력 범죄를 저지르고 자살한 수용자(15명, 20.8%)가 그 뒤를 따르고 있습니다.

타인의 신체에 직접적인 해를 끼치고 복역하는 수용자들의 자살이 절반을 넘습니다. 이런 이들에 대한 마땅한 교육 시스템은 여전히 부재한 실정입니다.

이런 측면에서 가난한 이들에게 인문학을 전파하는 클레멘트 코스를 창안한 인문학자 얼 쇼리스의 유명한 일화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1995년 얼 쇼리스 교수는 한 여죄수와 만나서 대화를 나눕니다. 가난과 범죄의 악순환을 고민하는 그에게 그 여죄수는 이렇게 말합니다.

“방법은 간단해요. 우리 아이들에게 시내 중심가 사람들의 ‘정신적 삶’을 가르쳐야 합니다.”

이에 얼 쇼리스는 범죄자를 포함해, 알콜 중독자, 노숙자, 실업자 등에 대한 ‘인문학’ 강의를 하는 클레멘트 코스를 전파합니다.

“당신은 이 수업을 통해 도대체 무엇을 얻으려 합니까?”

“인문학을 배우기 전에는 욕이나 주먹이 먼저 나갔어요. 그런데 이젠 그러지 않아요. (왜냐하면) 나를 설명할 수 있게 됐거든요.”*

나를 설명하는 힘, 그것은 상대를 이해하는 바탕이 되었고, 그들로 하여금 새로운 희망을 가지고 새로운 시각으로 사회를 바라볼 수 있는 눈을 가지게 하였습니다. 그들에 대한 인문학 과정은 사회적 약자로 만들었던 ‘조건들’에 대해 과거와 다르게 대응하는 힘을 갖게 한 것이죠.

범죄자들이 수형 시설에서 사회를 원망하고 이웃을 저주할 때, 인문학 과정은 새로운 대안이 되어 줄 수 있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감옥에서 읽었던 대부분의 서적들-철학·신학·정치·경제·역사·문학 등은 모두 인문학의 영역에 있는 책들입니다. 지금의 세상과 사람에 대해 보다 분명하고 구체적인 시각과 관점을 심어줄 수 있는 인문학 독서가 김대중이라는 시대적 위인을 만들어냈듯이 수용시설의 수용자들에게 펼쳐지는 인문학 강의도 그들 자신과 우리 사회에 매우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입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감옥에서의 독서를 통해 얻었다는 정신적 충만과 향상의 기쁨을 수용자들도 누릴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 EBS <지식채널e>의 일부를 옮겨왔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 블로그 별별이야기에 보낸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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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구상나무

ⓒ 사진 구상나무


그러고 보니 오늘은 1자가 네 개나겹치는 날이죠. 이런 날을 사람들이 가만히 놔둘 리가 없습니다. 가장 많이 오르내리는 명목이 바로 길죽한 과자 이름을 딴날입니다. 당초 부산의 어느 여학교에서 11월 11일을 맞아 서로 살을 빼고 날씬해지자며 나누어 먹었다는 이야기에서 유래된날이라는데, 지금은 해당 업체의 한해 매출의 절반가량을 해결해 주는 상업적인 날이 되어버렸네요. 이 날의 상업적 흥행은 아무래도미디어가 한몫을 했다고 보기에 여기서는 단 한글자도 그 과자의 이름은 언급하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오래전부터 11월 11일은농업인의 날이었죠. 과자의 이름으로 날을 기억하는 것보다 일하는 사람들을 기리는 날이 더욱 뜻 깊고 의미 있지 않을까요? 사람의권리, 인권을 생각하는 블로그이니만큼 오늘 ‘농업인의 날’을 맞아 농촌의 인권과 인권위를 생각하는 포스팅을 해보겠습니다.

농업인들의 인권 문제는 어떤 것이 있는지 아시나요? 지금부터 국가인권위원회가 안내하는 농촌, 농업인의 문제에 조금만 관심을 가져 주세요.

얼마전 국가인권위는 ‘2009년 10대 인권 보도’를 선정했습니다. 그중 하나는 세계일보의 ‘탐사기획 / 대한민국 농촌, 가장 위험한 작업장’(링크 참조)이었습니다. 이 보도에서는 한국 농촌의 위험한 작업 현실을 깊이 있는 탐사와 취재로 조명해 보았습니다. 우리가 먹는 농산물을 생산하기 위해 농업인이 얼마나 위험한 작업 조건과 환경에서 일하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농업인 79%가 농부증에 시달린다는 이야기, 농기계 사고로 매일 한 명꼴로 농업인들이 구급차에 실려 가는 현실 등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농촌, 농업인의 현실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다음의 농촌 인권 사안으로는 국제결혼 가정이 있습니다. 2006년 통계청 조사에 의하면 농어민 10명 중 4명이 국제결혼을 하고 있을 정도로 우리나라는 다문화·다민족 사회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농촌 지역에거주하는 결혼이민자들은 사회로부터 고립되다시피 한 상태에서 언어적, 문화적, 교육적, 인간관계 측면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서 월간 <인권> 2007년 7~8월호에 실린 ‘“여부, 우리 행북하게 사라요.”’(관련 링크 참조) 글에서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르포작가 박형숙 씨가 취재한 글에 따르면, 국제결혼으로 한국에 들어온 이주 여성의 문제는 곧바로 그 2세로 연결된다고 합니다.

광주인권사무소의 블로그에 올라오는 시리즈 ‘사진으로 만나는 이주 여성’은 이주 여성들의 삶을 사진으로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줄 것입니다.


 



▲ 국가인권위원회 광주사무소 블로그 '호제와 남주네'의 '사진으로 만나는 이주여성 시리즈' 중 "며느리가 하고 싶은 일 도와 주고 싶어요"(관련 링크 참조) 


마지막으로 농촌 청소년 문제입니다. 농촌청소년의 문제는 그들이 접하는 풍경의 황량함에 있습니다. 또래 친구들의 부족과 작아지는 농촌, 문화적 갈증과 소외감은 농촌의아이들 마음에 깊은 생채기를 내고, 그들에게 대도시로 탈주하려는 욕구를 자극합니다.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고장에 대한 자부심을잃어가면서 정체성에 심각한 혼란을 겪어야 하는 아이들의 모습도 농촌이 앓고 있는 고통 중의 하나입니다.


 











월간 <인권> 2007년 7~8월호에 실린 "여부, 우리 행북하게 사라요." (출처 국가인권위원회)

 

“어렸을 때는 그래도 괜찮지만,초등학교만 졸업하면 조금이라도 여유 있는 집 아이들은 다 도시로 빠져나가요. 남아 있는 우리들이 오히려 이상해지고, 나만 왜 못나가고 남았을까 하는 불행한 생각이 들어요. 솔직히 도시로 간 아이들이 부러워요.”

작가 오수연 씨가 월간 인권 2005년 3월호 ‘사투리를 쓰지 않는 아이들’(링크 참조)에 소개한 그 아이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부안에 그대로 있을까, 아니면 어느 대도시에서 무슨 일을 하면서 살고 있을까 궁금해집니다.

물론 이밖에도 농촌, 농업인의 문제는너무나도 많습니다. 빈곤 문제, 노령화 문제, 농산물 가격 문제, 환경 문제 등등 헤어릴 수 없는 고민과 고통이 농촌에 산적해 있죠. 그많은 문제의 귀결은 아마도 결국 농촌 소외 문제로 귀결될 것입니다. 농업, 농촌의 문제를 인권적 차원에서 접근해 풀어가려는 노력이 절실합니다.

오늘은 농업인의 날입니다. 이상한 과자를 내세우는 상업적인 ‘데이’보다는 우리 농촌과 농업인들의 삶과 인권을 생각해 볼 수 있는 뜻 깊은 날이 되기를 바랍니다.  




위의 글은 지난 11일 국가인권위원회 블로그 별별이야기에 올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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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구상나무


1991년, 추석 연휴를 맞아 고향인 구례를 찾아갔을 때 장장 24시간에 걸쳐 내려간 일이 있습니다. 그 기록은 여간해서 깨지지 않는 저의 귀향 기록이 될 것 같습니다. 이런 귀성 전쟁은 비단 저만 치르는 것은 아니죠. 추석 이후에는 너나없이 모여 서로 어떤 귀성전쟁을 치렀는지 무용담처럼 이야기하곤 합니다. 한국인이면서 고향이 먼 시골이라면 대부분은 겪어봤을 고통 중의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고향길이 아니라 고행길이라지만, 어쩌면 이 분들을 앞에 놓고 생각하면 ‘사치에 가까운 행복’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바로 이산가족 문제입니다.

오는 26일부터 10월 1일까지 남북 각각 100가족이 극적인 상봉을 이룰 것으로 보입니다. 2007년 이후로 끊어졌던 이산가족 상봉이 이루어진 점은 정말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이산가족 문제를 인권적 문제로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세계인권선언문 중 제16조의 3항에서는 “가정은 사회의 자연적이고 기초적인 단위이며, 사회와 국가의 보호를 받을 권리가 있다.”라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사회의 자연적이고 기초적인 단위로서 가정을 지켜야 할 의무를 사회와 국가에 있다고 규정한 것이죠.

이에 대해 국가인권위원회 역시 비슷한 입장을 표명한 바 있죠. 국가인권위원회는 2006년 11월에 ‘북한 인권에 대한 국가인권위원회의 입장’에서, ‘정부는 이산가족, 국군포로, 납북자 문제 등과 같은 인도주의적 사안을 해결하기 위해 보다 적극적이고 구체적인 조치를 취해야 한다. 이들의 문제는 분단과 전쟁에 의해 발생했다는 점에서 다른 인권문제 보다 정부의 노력이 한층 더 요청되는 사안들이다. 정부는 이 사안들에 대하여 북한과 조건 없이 협의하여 이 사안들과 관련된 모든 사람들의 고통과 상처를 치유하는 데 노력해야 한다.고 발표했습니다.

지금의 이산가족 문제는 헤어진 가족들이 편안하게 만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확보해 주는 것이 급선무일 듯합니다. 이산가족의 고령화로 인해 시간이 지날수록 급격하게 1세대가 사라져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2000년 6.15 남북 정상회담 이후 가족상봉 참가를 신청한 사람만 127,343명인데, 지금까지 대면상봉 16,212명, 화상상봉 3,748명만이 가족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 와중에 가족을 못 만나고 사망한 이산가족이 39,000여명에 달합니다. 지금까지 10년에 걸쳐 상봉 행사를 가져왔지만, 신청자 중에서 만난 사람들보다 먼저 사망한 사람이 많을 정도인 만큼 남은 신청자들이라도 하루 빨리 상봉할 수 있게 하는 조치가 시급한 현실입니다.

이번 상봉에서 최고령자인 96세의 박양실 할머니는 딸을 만나기 위해 부산에서 금강산까지 머나먼 여행길을 나설 것으로 보입니다. 저야 아무리 걸려도 24시간이었지만, 이 할머니는 50년을 넘어서야 딸을 만나게 된 것이죠. 우리 사회, 나아가 남과 북이 분단과 전쟁으로 헤어진 이산가족의 아픔을 치유하기 위해 시급히 나서야 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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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구상나무




어렸을 적에 동네나 학교 운동장에 친구들과 놀 때면 늘 깍두기 한두 명씩은 껴있기 마련입니다. 저 역시 아주 어렸을 적에 형들과 놀고 싶은 마음에 깍두기를 자처하던 때가 있었죠. 이때 깍두기는 기량이 많이 떨어지거나 신체적으로 핸디캡이 있는 이들을 놀이에 껴줄 때, 특별한 지위나 능력을 부여해 놀이에 원활하게 참여할 수 있게 하는 기능이라고 할 수 있겠죠.

깍두기라서 행복해요

며칠 전 술자리에서 만난 친구 현호(가명)와 신영(가명)은 어렸을 적에 늘 깍두기를 단골로 맡았던 사람들이었죠.

현호는 어렸을 적에 운동신경이 몹시 둔했다가 합니다. 그러다 보니 자기가 낀 팀은 패배를 밥 먹듯이 해야 했고, 그럴 때마다 눈치를 보는 게 무척 싫었다더군요. 그런데 어느 날부터 자기는 깍두기가 되어 놀이에 참여하고 있더랍니다. 그런데 그럴 때, 실수를 하거나 도전의 한계치에 다다르면 오히려 친구들이 도와주거나 요령을 더욱 자세히 알려주었고, 격려나 응원의 목소리도 다른 친구들에게 보다 더 많이 받았다지요. 게다가 다른 친구들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기술이나 도전을 해결하면 다들 함께 좋아하고 기뻐했다고 합니다. 일종의 특권적인 배려를 받은 셈이지요. 현호는 깍두기 생활을 하다가 어느새 기량과 실력이 늘어서 어느 날은 깍두기를 하지 않을 때도 더러 있었다고 합니다.

깍두기는 죽기보다 싫었다구

반면, 신영은 정반대로 깍두기 되는 게 무척이나 싫었다고 합니다. 어렸을 때부터 또래보다 키가 작아 또래들이 고무줄놀이를 할 때면 깍두기를 도맡아 했죠. 친구들은 깍두기가 아니면 놀이에 끼워주지 않겠다고 그러고, 그러면 자신은 깍두기 되는 게 싫다며 억지를 부리지만 번번이 어쩔 수 없이 깍두기를 하여 같이 어울렸다고 합니다. 신영은 그래서 악착같이 혼자 또는 짝궁과 따로 연습을 했죠. 그리고 그렇게 연습한 끝에, 여전히 자기보다 키가 큰 아이들이 머리 위로 올리는 고무줄은 잡을 수 없었지만, 낮은 위치의 고무줄에서는 어느 누구보다 현란한 실력을 보여주었다고 하는군요. 신영은 그런 데서 자신감을 느끼고, 지기 싫어하는 자존심을 키워왔다고 하는군요. 다른 친구들과 당당히 겨루고 싶고 아무 거리낌 없이 어울리고 싶었던 바람이 때로는 좋은 결과를 가져오기도 했죠.

‘깍두기’, 현호에게는 승패를 떠나서 아이들과 함께 즐겁게 어울릴 수가 있다는 것이 그에게는 가장 중요한 가치였던 것이죠. 반면 신영에게는 놀이에서 자신의 가치를 중요시 여기며 자신에게 주어진 몫을 반드시 해내야 직성이 풀렸던 친구였습니다.

깍두기를 생각하는 인권의 마음

인권은 누구에게나 평등한 기회를 주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우리 사회의 누군가는 마땅한 기회조차 쉽게 주어지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장애인이나 노인, 여성, 청소년, 성적소수자들은 어쩌면 놀이의 ‘깍두기’같이 보다 세심한 배려와 관심을 통해 사회의 일원으로 활동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또 깍두기라고 해서 언제까지 깍두기만 하라는 법은 없습니다. 언젠가 그 사람은 깍두기에서 벗어나 하나의 온전한 객체로 일어설 수 있을 것입니다. ‘깍두기’라는 사회의 세심한 배려와 관심이 그 기회이며 삶의 자극인 셈이죠. 깍두기를 배려하고 격려하는 마음, 어릴 적 놀이의 추억에서 인권의 마음을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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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구상나무




최근에 개봉해서 잔잔한 감동을 주었던 영화 <킹콩을 들다>는 우리나라의 비인기 종목을 주제로 한 감동의 드라마를 선보였습니다. 이 영화를 주목해 보는 이유는 기존의 스포츠와 달리 여기에는 중고등학교 운동선수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성인 스포츠 분야가 점차 그 시장을 넓혀가고 있는 지금 중고등학교 운동선수를 다룬 이 영화는 인권적 측면에서 눈여겨 볼만한 것이 몇가지 있습니다.



첫째 운동선수에 대한 폭력 문제입니다. 물론 지나치게 위악적인 캐릭터가 학생들에게 잔인한 폭력을 휘두르는 모습은 영화적 설정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2008년 11월 국가인권위원회는 6개월여에 걸쳐 실시한 학생운동선수 인권 실태 조사에서 나온 학생들의 이야기는 충격적입니다.


(지도자가) 뺨을 때려요. 별 이유가 없어요. 초등학교 1학년짜리 쌍둥이 있거든요. 피하다가 고막이 나가가지고 수술했거든요. 그러면 안 때려야 되잖아요. 작심삼일이에요. 삼일 지났다가 또 때려요... [중3, 농구]

(지도자가) ××년아, 니 그럴 거면 꺼지라면서, 그리고 니는 뭐 이렇게 살면 나중에 인간 대접도 못 받는다면서 막 뭐라고... 진짜 싫고...[중2, 핸드볼]

선생님한테 선배가 혼났을 때 (선배가) 정말 선생님하고 똑같이 대가리 박으라고 하고 발로 밟고 그러지요...[고3, 농구]


이 실태조사 결과 75%의 초등학생 선수들이 언어적 신체적 폭력을 경함하고 있고, 주당 평균 신체적 폭력 피해 횟수도 3~4회에 이상이 40%, 주당 11회 이상이 5.1%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어린 초등학생에게 나타나는 폭력은 다시 하급생이나 후배에게 전달되는데, 이는 중학교나 고등학교에서도 어렵지 않게 발견되는 현상 중의 하나입니다. 최근에는 프로야구팀의 2군에서 선배가 후배를 야구배트로 폭행한 사건이 언론에 보도된 일도 있었습니다. 한국 사회에서 가장 사랑받는 스포츠라는 프로야구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둘째 학습권 보장의 문제입니다. <킹콩을 들다>의 주인공 이지봉은 학생들이 운동 연습때문에 수업을 따라가지 못할 것을 걱정하고 우려합니다. 그래서 따로 영어 공부도 시킬 만큼 어린 학생들의 수업을 챙기지요.

국가인권위 실태조사에서도 이런 문제는 제기됩니다. 실태조사에 응한 어느 고등학생은 “더하기 빼기부터 하고 싶어요”라고 말했습니다. 조사에 따르면 중고등학생들의 정규 수업 참여시간은 평균 4.4시간(시합이 없을 때이며 시합이 있을 때는 이마저도 2시간 까먹는 2시간에 불과하다). 그렇다고 수업결손에 따른 보충수업을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이러다 보니 학생들은 더더욱 학교 수업과는 멀어집니다. 고등학교 1학년으로 학교 양궁선수로 뛰고 있는 김하늘(가명) 양의 말입니다.


“5학년 정도 되면 소년체전이라는 게 있어요. 거길 붙으면 그 전에 한 달 전부터 합동훈련하고 적응훈련 다니고… 그러면 수업을 빠지니까 점점 성적이 떨어지잖아요. 그럼 어떻게 채울 수가 없으니까 운동이라도 해서 그걸로 밀어붙이고 나가라. 이러고……”


많은 학생운동 선수들이 과도한 훈련과 시합 출전 등으로 정규 수업을 받지 못하여 제대로 된 학습권을 보장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이런 수업 결손에 따른 제도적 뒷받침이 되는 것도 아니라서 학생 선수들은 운동을 그만두고 싶어도 다시 학교 수업을 따라가기 힘들어 결국 하고 싶지 않은 운동을 계속 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내몰리는 악순환이 되풀이 되고 있습니다. 영화에서처럼 코치선생님의 헌신과 관심으로만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 제도적인 뒷받침(예를 들어 최저학업기준인정제 등)이 되어야 하는 문제가 바로 학생 운동선수들의 학습권 문제이지요.



스포츠라는 분야가 강한 근성을 요구하고, 그런 근성을 위해 일정 고통을 이겨내는 사람이 승리의 영광을 안을 수 있다는 것은 진리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아이들에게 근성을 빌미로 행해지는 폭력은 잠깐 효과를 볼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아이들에게 씻을 수 없는 정신적 신체적 상처를 남기는 일입니다. 영화 속에서 이지봉 코치 선생님은 자신의 제자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이런 말을 남깁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금메달에 도전한다. 하지만 동메달을 땄다고 해서 인생이 동메달이 되진 않아. 그렇다고 금메달을 땄다고 인생이 금메달이 되진 않아. 매순간 끝까지 최선을 다한다면 그 자체가 금메달이야.”

자라나는 아이들이 폭력이 무서워서, 혹은 승리에 눈이 멀어서, 상대방을 운동의 파트너가 아닌 적으로 대하고 페어플레이가 아니라 전쟁을 치르듯이 운동 경기를 치르는 모습은 우리 사회에 결코 바람직한 모습은 아닙니다. 상대방을 이기는 것보다 자신을 스스로의 힘으로 이겨내는 것이 얼마나 가치 있고 소중한 경험인지 알려 줄 수 있는 분야로 스포츠만한 것이 있을까요. 아이들이 즐겁게 운동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일, 지금 바로 시작해야 합니다.


- 국가인권위 블로그 '별별이야기'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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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구상나무


예전에 학교 다닐 때 새 교과서를 받으면 그 냄새부터가 기분이 좋았어요. 집안이 넉넉지 못해서 새 책을 사주는 일이 드물다 보니 새 교과서를 받는 날이면 눈코입귀손 등 오감을 동원해 책을 느끼며 좋아했지요. 그리고 지난 달력을 가져와 교과서를 표지를 싸는 일도 즐겁기만 했는데요.

그런 시절에도 누구나 한번쯤은 교과서에 낙서 한 번 안해 본 사람이 없었을 겁니다. 표지의 ‘국어’를 ‘북어’로 ‘수학’을 ‘잠수함’으로 고치는 장난은 예나 지금이나 여전한 듯합니다. 무엇보다 교과서 삽화에 장난하는 것도 똑같습니다. 인터넷에 올라온 아이들의 교과서 낙서를 보면 순정만화 그림부터 성적인 호기심을 드러내는 그림, 코믹한 그림 등 아이들의 재기발랄한 낙서들이 넘쳐납니다.



  





인터넷 검색으로 본 청소년들의 낙서를 보면서, 일찍부터 경쟁 체제에 내몰린 아이들이 그 스트레스를 교과서에 풀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간혹 무시무시한 폭력 장면, 살인이나 폭행 등을 그려 넣은 엽기적인 그림도 더러 볼 수 있는데, 그 정도로 청소년들의 낙서에서는 날이 시퍼렇게 서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지요. 칼이나 총, 살인, 폭력, 욕설 등이 예사로 등장하는 것을 보면, 지금 이 청소년들이 아프다고 아우성치는 소리를 듣는 것 같습니다.







학업에 대한 부담감도 크고 학교 수업보다 학원 수업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풍조로 인해 교과서가 무시되고 있는 현실도 한몫하고 있습니다. 학생들은 수업시간이 졸리거나 지루하면 교과서에 낙서를 합니다. 지금의 교육 현실에서 모든 아이들을 만족시키는 수업을 한다는 것이 쉽지 않다는 걸 알지만, 선생님들이 좀더 아이들이 집중할 수 있는 수업을 고민하고 개발한다면 교과서 낙서도 줄지 않을까요.

물론 그러기 위해서 교과서 역시 잘 만들어야져야 합니다. 교과서에 인권침해나 차별적인 요소가 있다는 것, 그것도 어느 누군가에게는 폭력이 될 수 있죠. 그런 폭력을 교과서가 청소년들에게 심어주는 역할을 해서는 안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전 교과서들은 무심결에 인권침해, 혹은 차별적인 요소들을 삽화로 사용한 경우가 간혹 있었습니다.




위 그림은 지난 교과서입니다. 두 삽화에서 여성이나 여아는 집안일, 육아를 담당하는 것으로 성역할을 고정화하는 편견을 담고 있습니다.




왼쪽 삽화에서는 여성은 치마, 남성은 바지, 그리고 직업군인은 모두 남자로 그렸습니다. 오른쪽 삽화에서는 의사와 조종사, 경찰은 남성으로 교사와 간호사는 여성으로 묘사했습니다. 이 역시 남녀를 차별하는 그림입니다.




왼쪽 삽화는 남성은 일, 생산에 종사하는 반면, 여성은 가사, 양육을 전담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또 오른쪽 삽화에서는 국제협약을 소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각국 대표를 모두 남성으로만 그리고 있습니다.

교과서의 삽화는 아이들에게 해당 학습 내용을 좀더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돕는 중요한 학습 도구가 됩니다. 그러나 해당 학습 내용에만 국한되어 인권적인 내용을 소홀히 한다면, 작은 걸 얻고 큰 것을 잃는 결과가 되고 말 것입니다.

오늘 저녁에라도 댁의 자녀들이 학교에서 돌아오면 함께 교과서를 펼쳐 보세요. 자녀분들의 교과서에는 어떤 낙서가 되어 있나요? 창의적이고 재기발랄한 낙서들이 있다면 무조건 야단칠 것이 아니라 그 아이의 가능성을 가늠해 보시는 것도 좋겠습니다. 반면 아이들의 그림이 폭력적이라면 자녀와 진지한 대화를 나누어 보는 것이 어떨까요.

그리고 나서 아이들과 함께 교과서 안의 삽화들을 살펴보세요. 살펴볼 때는 다음 2가지 관점에서 보는 것이 좋습니다.

첫째, 고정관념에 따라 삽화를 구성한 것을 찾아보세요.

남자는 바지, 여자는 치마만 입고 있는 삽화, 여자만 집안일을 하고 있는 삽화, 여성이나 여아를 집안일이나 비역동적인 놀이를 하는 삽화 예를 들어 남아는 축구, 여아는 공기놀이 등을 하는 삽화, 중요하거나 고위직 등의 직업이나 직종은 남성 중심인 삽화 등을 찾아봅시다.

둘째, 삶의 다양성이 드러나도록 그려진 삽화를 찾아보는 거죠.

외국인을 그릴 때 긍정적인 모습에는 유럽계 외국인, 부정적 모습에는 아프리칸계 외국인으로 구분지어 그린 삽화는 없을까요? 또 놀이를 하거나 활동을 할 때 장애인을 넣지 않은 삽화도 생각해 볼 문제죠. 그리고 국제결혼 2세대 자녀의 모습도 삽화에 담겨져 있어야 할 것입니다.

어찌 보면 사소할 수 있는 문제겠지만, 세심한 배려나 관심으로 세상은 더 따뜻해질 수 있습니다. 작은 편견이나 차별이라도 그것이 누군가에게는 아픔이고 상처일 수 있다는 마음을 가질 때 세상은 더 아름다워질 수 있는 것이 아닐까요.


(인권위 기고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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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구상나무


얼마 전에 청계천을 갈 일이 있었습니다. 예전에는 산책 삼아 거닐다 보면, 데이트 하는 연인들 모습 때문에 씁쓸했었답니다. 하지만 직장도 옮겼고, 연인을 옆에 두고 있다 보니, 이제는 그다지 가고 싶은 마음은 없어요. 일전에는 일이 있어서 잠시 지나는데, 한창 공사 중이더군요. 일명 청계천 보도 확장 공사. 





속으로 ‘이제야 청계천 보도가 확장되는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면서 머릿속 타임머신의 시계는 2005년 8월로 거슬러 올라가네요. 2005년 8월 4일, 개장을 불과 한달여를 앞둔 청계천변의 시설에 대해 국가인권위의 현장조사가 실시되었죠.(관련 보도자료) 그때 국가인권위는 청계천에서 장애인과 약자들의 접근과 이동도 청계천 흐름만큼 자유로울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이를 위해 청계천과 차도 사이의 보도폭, 휠체어의 경사로 진입 시 턱 등 장애요소들이 있는지 여부를 조사했습니다. 또, 경사로의 폭과 경사도 등의 안전성이나 점자 블록의 적절한 설치 여부도 확인했습니다. 이런 조사들은 모두 장애인과 약자들의 안전한 이동권이 실질적으로 보장되고 있는지를 알아보기 위한 활동이었죠. 또 이런 조사를 통해 중요 국책사업 등의 설계 과정에서 장애인 당사자의 참여 보장 문제 등을 검토한다는 취지였습니다.

그리고 같은 해 9월 1일, 국가인권위는 청계천에서 장애인이나 약자들의 이동권 보장이 미흡하다는 권고를 전달했습니다. 국가인권위는 이 권고에서 반드시 개선되어야 할 4가지의 문제점을 지적했었죠. 그 중 하나가 바로 보도폭이었습니다.

“청계천 쪽에 설치된 보도를 보면, 이 보도의 폭은 1.5m이나 보도에 가로수가 심어져 있어, 가로수가 있는 곳의 통행가능 유효폭은 60~70cm 밖에 되지 않아 휠체어나 유모차 등이 지나가기가 어려워 장애인 등의 이동권을 제한하고 있습니다.[사진1, 2, 3] 더구나 이와 같이 보도에 가로수를 심은 것과 가로수로 인해 유효폭이 60~70cm로 된 것은 ‘휠체어 사용자가 통행할 수 있는 보도 등의 유효폭은 1.2m 이상으로 해야한다’, ‘보행장애물을 설치하는 경우에는 장애인 등의 통행에 지장을 주지 않도록 설치해야 한다’는 장애인․노인․임산부등편의증진보장에관한법률시행규칙 제2조에 위반되는 것입니다.”  - 관련 보도자료 중에서  




청계천의 안전시설 문제는 첫날부터 불거졌습니다. 개장 첫날 삼일교에서 중앙에 있는 조형물을 구경하던 유모씨가 5.5m 아래로 떨어져 사망한 사고가 발생한 것이죠. 그리고 다시 개장 한달여를 지난 시점에서 또다시 시민의 추락사고가 발생하고 말았습니다. 안전시설에 대한 문제 제기가 전혀 억지가 아님을 증명한 사건들이었죠. 비장애인도 그렇게 사고를 당하는 마당에 장애인이나 약자 등은 어떤 위험과 공포에 떨어야 할지는 뻔한 거 아닐까요?

이순원 작가는 월간 <인권>을 통해 청계천의 차별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지금 뽑아 다른 곳으로 옮기기엔 왠지 너무도 아깝게 보이고 크게 보이는, 몇 년 후 더 자라서는 청계천을 상징할 나무로 보이기도 하는 저 이팝나무가 내 눈엔 바로 ‘그 나무 때문에 청계천 나들이가 불편한 절대 소수에 대해 그 나무로 청계천 나들이가 더 행복한 절대 다수’가 가하는 차별의 상징수처럼 보이는 것이다.” - 2005년 10월호 휴먼필-왼손과 오른손, 그리고 청계천의 이팝나무

작가는 나무라도 뽑아서 길을 확보하라고 충고했지만, 사실 차도를 좁혀서 보도를 넓히는 게 더 인간적이고 자연친화적인 일이겠지요. 4년이나 지났습니다. 만시지탄(晩時之歎)의 감이 있지만, 지금이라도 보도폭을 넓힌다는 게 반가운 소식입니다.

다시 그때의 국가인권위 권고 내용을 담은 보도자료의 마지막 문장을 인용해 봅니다. 국가기관과 지자체 담당자분들 꼭 생각해 보셨으면 합니다.

“향후 공공사업 시행에서는 계획 단계에서부터 사회적 약자의 참여를 보장함으로써 사회 구성원 모두가 차별 없이 함께 누릴 수 있는 공공시설 개발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지난달에 인권위에 보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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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구상나무



요새 아내와 함께 푹 빠져있는 드라마가 있습니다. 엠비시의 월화 드라마 '선덕여왕'이죠. 아내는 주말보다 월요일을 더 많이 기다릴 정도로 선덕여왕 팬이죠. 저도 함께 보는 재미에 푹 빠져 있는 게 사실입니다. 정말 주옥같은 대사들이 쏟아지는데, 어제는 비담이 덕만을 병부령에게 넘긴 일을 두고 문노가 크게 꾸짖죠.


"사람의 목숨에 무게를 달려고 하느냐"


그리고 선덕여왕이 끝나고 PD수첩을 보았습니다. 쌍용자동차에 사태를 다루고 있었죠. 평택에서는 100일이 넘도록 '함께 살자'를 외치며 파업을 벌이는 노동자들이 있습니다. 함께 사는 길은 정녕 없는 것일까요? 지금 600명의 밥줄을 끊어서 나머지 20만명을 살리겠다는 계산, 그런 계산을 하려는 사람이 혹시 당신이 아닙니까. 내 얘기가 아니라고 쉽게 이야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물론 구조조정 정리해고는 절대 안된다는 말은 아닙니다만, 그것은 정말 최후의 방법이겠죠. 하지만 다양한 대안과 방법들이 나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와 회사측은 들어주지 않습니다. 아무래도 정부는 청산을 통해 정부는 담보를 회수하겠다는 복안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참고기사 : 쌍용차 청산, 정부는 담보회수하고 노동자들은 고용종료?) 과연 쌍용차는 청산되어야 할 회사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만일 그랬다면 법원에서 진작에 파산을 결정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법원은 회생쪽에 무게를 두었죠.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미국의 GM도 파산하는 마당에 치열한 자동차 시장에서 쌍용차가 과연 살아남을 수 있겠느냐는 것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많습니다. 또 공적자금까지 투여해서 쌍용차를 살렸을 때 국가적인 도움이 될 수 있는가, 아니면 재정 악화만 가져올 것인가도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지금 이렇게 막대한 소모전을 치러가고 있습니다. 생존권은 어떤 이념보다 중요하며 인권 중에서 가장 중요하고 바탕이 되는 권리입니다.


참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요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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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구상나무



우리 사무실에는 정수기가 하나 있습니다. 커다란 물통을 거꾸로 뒤집어 꽂아 놓는 형태죠. 매번 이 물을 마실 때마다 엘리베이터도 없는 건물 5층까지 이 무거운 생수통을 들고 오셨던 생수 회사 아저씨가 생각납니다. 한번 나를 때면 보통 5~8개를 오르락내리락하며 옮기시는데, 정말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죠.

사무실까지 올라온 생수를 생수기에 꼽는 건 남자 직원들 몫입니다. 물론 여직원들이라고 못하겠습니까만, 보통 남자가 있는 사무실에서는 남자가 하기 마련이죠. 아무튼... 이 신성한 업무(?)는 또한 사무실에서 제일 젊고(?) 가장 가까이에 있고, 또한 만만하게(좋게 말하면 편하게) 생긴 저에게 많이들 부탁하십니다.

그럼 저는 흔쾌히 임무를 수락하죠. 먼저 생수통을 생수기 옆으로 가져온 후, 뚜껑의 비닐을 벗기고, 휴지를 떼어다 적셔서 생수통의 입구를 깨끗이 닦아줍니다. 그리고 생수통을 팔로 감싸 안은 다음 허리와 다리의 힘을 이용해 들어 올린 후 팔을 뒤집어 주는 데, 이때 주의해야 할 것은 꺾으면서 생수통 입구와 생수기 입구를 잘못 마칠 경우 상당히 곤란한일이 생길 수 있다는 거죠.

우리가 마시는 깨끗한 물은 참 많은 과정을 거쳐 우리에게 옵니다. 그 과정 하나하나에는 인간을 생각하고 생명을 생각하는 세심한 배려가 듬뿍 담겨 있죠. 그래서 ‘물은 생명’이라고 하는가 봅니다. 우리는 그런 사실을 종종 잊고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평택의 쌍용자동차 노조에게는 이 말이 더욱 실감이 날 것 같습니다. ‘해고는 죽음’이라고 외치는 이들에게 물을 공급하는 것이 이 갑갑하고 막혀 있는 협상을 속시원하고 깨끗하게 뚫어줄 생명의 물이 되지 않을까요. 국가인권위는 쌍용차 노조에 대해 음식과 식수, 의약품이 차단된 상황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제기하였습니다(지난 7월 24일자 보도자료 : 쌍용자동차 사태에 대한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 긴급 성명7월 30일 보도자료 : 쌍용자동차 농성장에 식수 및 의약품 반입 등 긴급구제권고 결정).

오늘 서울과 경기도 일대에 소나기가 왔습니다. 이 물이라도 평택의 쌍용자동차 노조원들에게는 단비와 같을 수도 있죠. 지금 이 시간에도 협상은 진행되고 있습니다. 생명의 물을 공급함으로서 ‘해고는 죽음’이라며 절규하는 그들에게 여름날 단비 같은 삶의 실마리를 줄 수 있지 않을까요. 모두가 살 수 있는 길은 어쩌면 물이 알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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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구상나무


지난주, 교과서 대단원 표지 사진촬영을 위해 부산에 갔었습니다. 교과서의 대단원 표지는 해당 단원의 내용을 압축해 보여주면서도 학생들의 흥미를 유발할 수 있는 내용으로 만드는 것이 관건이죠. 교과서마다 저마다의 특색을 살려서 삽화나 사진, 혹은 삽화와 사진의 합성, 일러스트 등으로 표현하는데, 이날은 중2 음악교과서의 표지 작업을 위한 촬영이었죠.
 
예전 교과서의 경우 대단원 표지가 간단하게 제목만 나열하거나, 자료 사진이나 간단한 삽화로 대치해 왔습니다. 하지만 요새는 다양한 시도들이 나타나고 있는데, 국가인권위의 교과서 권고 이후 교과서 내용을 비롯해 사진과 삽화에서 인권적인 접근을 중요시하기 시작했습니다. 대표적인 경우로 사진이나 삽화에서도 고정관념에 따른 성 표현을 삼가하고, 삶의 다양성이 드러날 수 있도록 장애인과 국제결혼 2세대 자녀들을 고려하는 편집을 강조하게 된 것이죠.

부산예중에서 촬영에서는 뇌병변장애를 겪고 있는 하은이가 초대되었습니다. 하은이는 중1음악교과서에서도 대단원 표지 사진에 종종 등장하고 있는 아이인데, 웃는 모습이 참 어여쁜 아이였습니다. 더군다나 사진 촬영에도 익숙해서인지 또래 아이들 중 어느 아이보다 환하게 웃어주었고, 장시간의 지루하고 힘든 촬영 과정을 아주 잘 견뎌냈지요. 

하은이의 촬영을 위해 오가는 과정에서 시설들에서 느껴지는 고충이 한두가지가 아니었습니다. 촬영이 있던 부산예중의 교실은 5층에 있었는데, 승강기가 없어서 어른 셋이서 휠체어에 탄 하은이를 들어서 이동해야 했죠. 어른들이 힘든 것은 그렇다쳐도 하은이도 꽤 무서웠을거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즐거워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만, 학교에 장애인이나 약자를 위한 승강기가 없는 점은 아쉬웠습니다. 

비록 촬영을 보조하고 돕는 역할만 했지만, 하은이와의 촬영은 아주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또 사진 촬영 계획부터 하은이를 고려하고 배려하였던 음악교과서 담당자의 속깊은 마음도 느껴졌던 시간이었죠. 우리 사회에는 다양한 삶이 존재하며, 모든 인간은 존중받을 가치가 있다는 것, 그리고 사회적 소수자나 약자에 대한 배려가 중요하다는 것, 이런 내용들을 교과서에 담는 노력은 앞으로도 계속 지속되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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