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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인간이 되지 못한다 해도 괴물은 되지 말자. 맞다, 그런 말이 있다. 아무리 지금 상황이 고달프고 벼랑끝으로 몰린다 해도, 사람으로 태어난 이상 인간성을 잃어버리면 안된다. 우리는 누구나 그렇게 말하지만, 정작 인간성을 지킬 수 없는 극한 상황에 다달을 때면 어떻게 바뀔까. 이에 대해 주제 사라마구라는 작가는 <눈먼 자들의 도시>라는 소설에서 그의 상상력을 펼쳤다.


줄거리 요약



모든 사람들이 눈이 멀어버린단는 설정 자체부터 파격이다. 작가는 왜 사람들의 눈을 갑자기 멀게 했을까. 그리고 이런 사건을 통해 드러내고자 한 그의 이야기는? 여기에는 인간성에 대한 깊은 관심이 담겨있다. 시각을 잃어버린 인간은 감각과 본능에 의해 움직이기 시작했고, 우리가 말하는 인간성을 하나씩 하나씩 잃어갔다. 그리고 유일하게 시력을 가진 안과의사의 아내만이 이를 목격하며, 괴로워한다. 만일 내가, 그리고 당신이 그 도시에서 유일하게 앞을 볼 수 있는 사람이라면 어떤 일을 상상할 수 있을까. 도시는 점차 인간성을 잃어가고 사람들은 하나둘 동물과 다름 없는 나락으로 떨어져가고 있다. 유일하게 눈 뜬 사람으로서 눈먼 사람들의 안내자이며 보호자로서 자처할 수 있는가. 눈앞에서 뻔히 벌어지고 있는 폭력에 대해 유일하게 저항할 수 있다면 살인을 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인간성은 무엇인가.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 갖추어야할 인간의 존엄성의 가치는 어떻게 매김할 것이며, 무엇을 지키고자 하는가. <눈먼 자들의 도시>는 이런 문제을 던져주는 문제작이다. 자 다시 한번 생각해 보라. 눈먼 자들의 도시에서 당신만이 눈을 뜨고 있다.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참혹한 상황을 보면서 당신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어떤 행동을 취할 것인가.

그리고 다시 돌아와, 지금 당신이 보고 있는 지금의 세상.. 그래 지금 현실을 당신은 어떻게 보고 있는가? 야만과 폭력의 현장에서 지금 당신은 눈먼자가 아닌가? 아니 당신이 지금 그 현실을 목도하고 있다면 당신은 어떤 행동을 할 것인가. 책의 한 구절을 인용하자면, "가장 심하게 눈이 먼 사람은 보이는 것을 보고 싶어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말은 위대한 진리에요."이다. 당신은 눈뜬 사람인가, 눈먼 사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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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구상나무



어제 점심 때의 일이다. 간만에 동료 직원들과 함께 식당에 들렸다. 흔히 볼 수 있는 대형 식당이다. 주로 고기를 파는 집이지만 점심 때는 근처 셀러리맨들을 대상으로 점심 영업도 하는 집이다. 내가 근무하는 곳이 대형 빌딩들이 밀집되어 있고, 사무직원들이 많이 일하는 곳이라서 점심 때면 쏟아져나오는 사람들로 넘쳐난다. 그만큼 식당들도 점심 반짝하는 시간 무척이나 번잡하고 소란스럽다. 그나마 우리 회사가 점심 시간이 30분 늦는 터라 식당의 막바지 손님들이긴 하지만 인기있는 식당들은 꼭 줄을 서야 한다.

우리가 간 식당은 워낙에 큰 식당이라 그런지 줄을 설 일은 없다. 게닥 한바탕 손님들이 쓸고 지나가서인지 상당히 어수선하고 먼저 다녀간 손님들의 음식냄새가 진동을 한다. 우리도 자리에 앉아 식사를 시작하려는 찰나 건너편 식탁에서 나즈막하지만 압력이 느껴지는 말이 들렸다.

"일 처음 해봐요?"
"……"
"이런 일 처음해 보냐구요!"

크지는 않았지만 찍어 누르는 듯한 말이다. 손님들을 의식하여 크게 내지는 않았지만 공교롭게도 우리 식탁에서는 아주 분명하고 또박또박 그 압박이 느껴지는 울림이 있었다. 씹던 밥알들이 고스란히 목구멍을 건드리는 걸 느꼈다.

식당에서 밥을 먹을 때마다 그곳에서 일하는 아주머니들의 노동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5000~6000원짜리 밥을 먹으면서도 10년째 그 가격을 유지할 수 있는 배경에는 값싼 중국산 식재료들도 있겠지만, 여전히 열악한 노동환경에서 밤늦게까지 식당일을 하는 저임금 여성 노동자들의 저임금도 한몫하고 있다.

고용인과 고용주의 관계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권리나 권한은 법의 한계 바깥에 존재하는 게 현실이다. 그런 사람들이 노동을 하며 겪는 모욕과 수치심은 '어쩔 수 없는 것'으로 여겨지는 것도 현실이다. 그런 와중에 최저임금은 고작 시급 110원 인상됐다.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을 더 착취해 그보다 잘 사는 사람들의 안락을 유지하겠다는 몰염치가 내재되어 있다.

서민을 위한다면서 정책은 그 반대로 가는 현실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가난은 수치와 혐오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 이 세상을 정상으로 봐야 할까. 인간의 존엄성이 지켜지지 않고 모욕을 견뎌야 하는 노동은 언제까지 용인되어야 하나.

다시는 그 식당에 가고 싶지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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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구상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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