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은 아내의 친한 동생네 돌잔치에 다녀왔습니다. 멀리 남양주에서 열리는 돌잔치라서 이왕 나서는 길, 가족 나들이 계획까지 세웠더랬죠. 아침 일찍 나와서 쁘띠프랑스를 둘러보고 청평휴양림에서 산림욕을 즐긴 후 마석공원 미술관에 들렀다가 저녁 6시에 있을 돌잔치에 참여하자는 거창한 계획은 때아닌 장마 소식에 물거품이 되었습니다. 대신 쁘띠프랑스만 둘러보고 돌잔치에 다녀왔지요.
쁘띠프랑스는 입장료가 대인 8,000원이었는데, 그 가격만큼 볼만한 게 있었는지는 회의적입니다. 여기저기 다채로운 행사를 하던데, 아기를 안고 다니기에는 사실상 어렵더군요. 그래도 좀 큰 아이들은 신나 보였습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소설 <어린왕자>는 아이들보다는 어른들을 위한 동화라고 할 수 있지 않나요. 잃어버린 순수의 세계를 되찾아야 한다는 생텍쥐페리의 이상이 <어린왕자>에 드러나 있죠.
어린왕자는 장미들을 다시 보기 위해서 갔다.
그는 꽃들에게 말했다.
"너희들은 나의 장미와 조금도 닮은 데가 없어. 너희들은 아직 아무것도 아니야. 누구 하나 너희들을 길들이지 않았고 너희들도 누구
하나 길들이지 않았어. 옛날엔 내 여우가 꼭 너희들같았지. 세상에 흔해 빠진 여우들과 뭐 다를 데 없는 여우 한 마리에 지나지
않았지. 그러나 내가 친구로 삼았고 이젠 이 세상에서 단 하나밖에 없는 여우가 됐어."
그 말에 장미꽃들은 몹시 난처했다.
어린왕자는 말을 계속했다.
"너희들은 아름다워. 그러나 너희들은 비어있어. 아무도 너희들을 위해 죽을 수는 없는거야. 물론 나의 꽃인 내 장미꽃도 멋모르는
행인은 너희들과 비슷하다고 생각할꺼야. 그러나 그 꽃 하나만으로도 너희들 전부보다 더 소중해. 내가 물을 준 꽃이기 때문이야.
내가 유리덮개를 씌워준 꽃이기 때문이야. 내가 바람막이로 바람을 막아준 꽃이기 때문이야. 내가 벌레를 잡아준 꽃이기 때문이야.
(나비가 되라고 두 세 마리는 남겨 놓았지만) 내가 불평을 들어주고, 허풍을 들어주고, 때로는 침묵까지 들어준 꽃이기 때문이야.
그것은 나의 장미이기 때문이야."
나만의 장미, 나만의 여우, 저에게는 민서와 아내가 그런 사람들입니다. 이제 그들에게 기들여져 있어 그들 없이 세상을 건넌다는 게 저에게는 무의미하게만 느껴집니다. 그들에게 물을 주고, 유리덮개를 씌워주고, 바람막이가 되어 주고 싶습니다. 그리고 항상 그들의 이야기에 귀기울이고 싶습니다. 저는 그들에게 길들여지고 싶은 마음입니다.
쁘띠프랑스는 좀 실망스러웠지만, <어린왕자> 이야기를 생각하면서 내가 아끼는 사람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수 있었습니다. 그 순수한 마음으로 그들에게 다가갈 수 있도록 제 곁에 항상 어린왕자를 두고 있어야겠네요.
동자승이 된 민서
일요일에는 부모님까지 참석한 작은 행사가 있었습니다. 이른바 '민서 머리 깎기'. 이전부터 머리를 한번 싹 밀어주자는 아내의 요청이 있었는데, 자꾸 미루어 오다가 어제 드디어 거사를 진행했죠. 민서가 숨넘어가는 울음을 울거라는 우리의 예상과 달리 민서는 머리를 깎는 내내 아주 침착하고 조용히 있더군요. 물론 좀 귀찮다는 듯 머리를 도리질 치긴 했지만 그다지 큰 어려움 없이 일을 치를 수 있었습니다.
이발기를 이용해 깎긴 했지만 너무 바짝 자르지 말라는 아내의 요청이 있어서 이발기에 보조기구를 대고 잘랐더니 밤송이 같은 머리가 나왔네요. 아내는 배냇머리를 잘 간직했다가 붓으로 만들어 주겠다고 했습니다. 이런 걸 대행해 주는 곳이 있다는 얘기도 들었다더군요. 어떤 사람들은 아기의 배냇머리를 고이 간직했다가 아이가 성인이 되었을 때 선물과 함께 준다고 합니다.
민서는 머리카락은 엄마를 닮아서인지 얇고 숱이 적은 편입니다. 저를 닮았다면 무성하고 빳빳할텐데 말이죠. 깎아 놓고 보니 어느 절의 동자승처럼 아주 귀엽습니다.
아내도 민서 머리 깎은 기념으로 더불어 결혼 이후 줄곧 길렀던 긴 머리를 잘랐습니다. 머리가 기니까 아기를 업을 때 여러가지로 번거로운 일들이 생기고, 무엇보다 머리를 다듬고 신경써야 할 일이 많다는 게 피곤하다는군요. 처음 만났을 때 짧은 단발머리였기에 오히려 전 환영했습니다. 아내는 짧은 머리가 아주 잘 어울리거든요.
이렇게 모녀가 함께 머리를 다듬은 날, 기념 사진을 하나 찍었습니다. 왼쪽은 before 오른쪽은 after^^
사진은 기억입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기억을 만드는 일이라고 할 수 있겠죠. 현대인들은 과거에 찍은 사진을 보면서 그때의 그 사람, 그 장소, 그 사건을 기억하고 감상에 젖어 듭니다. 어제(20일), 드디어 민서의 100일 사진 촬영을 위해 스튜디오로 나섰습니다. 사실 100일보다는 200일에 가깝네요. 요새 100일 사진은 100일에 찍지 않습니다. 아이가 엎드려서 머리를 가눌 수 있는 정도에 이르렀을 때 찍는 게 좋다고 합니다. 그만큼 아이의 다양한 행동과 표정, 그리고 사진 촬영 중의 피로감을 좀 덜 수 있다는 말이 아닐까요.
아이가 뒤집기를 하고 목에 힘을 주어 고개를 한참 들고 있을 즈음이면, 새살도 부리고 웃을 때면 활짝 웃기도 하는데 지금은 제법 소리까지 내면서 웃습니다. 엄마 아빠를 알아보는 것은 당연하고, 다른 가족들에게도 잘 안겨 놀 때입니다. 이럴 때 첫 100일 사진을 찍는 게 좋다고 합니다.
민서의 100일 사진을 찍겠다고 결정하고 차일피일 미룬 이유는 이렇습니다. 나름 사진 좀 찍어봤다고 셀프 스튜디오를 알아보다가 그만 때가 지나버린 거죠. 집 가까운 곳을 알아보다가 후배의 추천도 있고 해서 양천구 신정동에 있는 마이베베 셀프 스튜디오를 찾아 갔습니다. 대개가 그러하듯이 이곳도 100/200일 사진 찍는 곳과 돌 및 유아 사진 촬영하는 장소로 나누어져 있더군요. 시간당 3만원, 카메라 대여는 1만원. 스튜디오는 생각보다 넓었습니다. 저와 제 아내 외에 처조카 셋이 도우미로 왔는데, 그렇게 복작거린다는 느낌이 없었죠. 게다가 다양한 소품들도 갖추고 있어서 다채로운 연출을 해 볼 수 있었습니다. 캐논 5D 카메라도 대여해 줍니다. 조명과 카메라 세팅은 스튜디오에서 알아서 다 맞추어 줍니다. 아이 200일 사진은 보통 조명을 터뜨리기 보다는 은은하고 따뜻한 지속광으로 하는 게 좋다고 하네요.
촬영의 관건은 아기에게 있습니다. 일단 환경이 낯설면 아기는 엄마에게서 잘 떨어지지 않으려고 합니다. 사진을 찍으려고 하면 얼마 못가서 찡찡대기 시작하죠. 그리고 더 시간이 지나면 아기가 보챕니다. 잠이 오거나 배가 고파서인데, 2시간을 빌렸다면 잠시 재우는 것도 방법입니다만, 아이가 잘 노는 시간으로 예약을 잡는 게 가장 좋겠죠.
민서는 첫 번째 배경 촬영(맨 위 사진)을 마치자마자 계속 찡찡댔습니다. 촬영이 무척이나 힘들었습니다. 처조카 셋이 동원되고 아내가 춤을 추어도 아랑곳없이 안아달라고 우는 데 방법이 없더군요. 당연히 촬영이 지체되는 일이 많습니다. 위의 사진에서 눈을 보면 눈물이 글썽거리죠. 싫다고 떼쓰다가 잠깐 촬영한 건데, 딱 성냥팔이 소녀 컨셉이 나오네요.^^
대개의 셀프 스튜디오는 다양한 소품과 배경을 촬영할 수 있고 의상도 여러 벌 준비되어 있어 아기 촬영에는 손색이 없게 꾸며놓습니다. 민서가 아직 앉는 게 불안한데, 아기용 의자가 마련되어 있어서 위의 사진처럼 앉혀서도 찍을 수 있죠. 그러나 민서는 저 의자가 어색한지 앉힐 때마다 울어서 결국은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촬영 전에 미리미리 앉혀 버릇하면 잘 했을 텐데, 그게 또 아쉽네요.
시무룩한 민서의 모습이 그날 하루의 민서를 다 말해 주는군요. 잠시 젖을 물리니 까무룩 잠이 들려고 하네요. 젖을 떼고 다시 사진 촬영하겠다고 옷을 갈아입히면 싫다고 찡찡찡~ 안아달라고 찡찡찡~ 2시간의 한정된 사진 촬영 시간에 어떻게든 좋은 작품을 내고 싶은 부모 마음과 그냥 편하게 쭈쭈 먹고 잠자고 싶은 민서 마음이 충돌했습니다. 힘들어 하는 민서 보면서 "이래서 부모 욕심 때문에 아이 잡는다"는 말이 나오는 거구나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중간에는 카메라를 아내에게 맡겼어요. 아내도 꽤 사진을 잘 찍는 편이라서 안심하고 맡겼는데, 평소 집에서 엄마가 카메라 들고 사진 찍는 걸 많이 봐서 그런지 제가 하는 것보다는 더 편안한 사진들이 많이 나왔습니다.
좀 더 특별한 사진을 원했으나 특별한 경험도 덤으로 했습니다. 아기와 함께 아기가 주인공이 된 첫 행사였습니다. 민서가 잘 웃고, 잘 울고, 많이 힘들어했지만 그럭저럭 좋은 결과가 나와서 흐뭇합니다. 그런데 민서 엄마가 사진 촬영을 다녀온 후 민서 치장하는 데 부쩍 관심이 커졌습니다. 당장 민서 모자부터 예쁜 걸로 하나 사겠다고 하니, 앞으로 민서에게 들어가는 돈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물론 아깝지는 않으나 제 수입이....
민서도 이번에 큰 일을 치룬 셈이죠. 온 가족이 다함께 공들여서 만든 작품들을 보면 흐뭇합니다. 아내는 민서의 사진첩을 준비하고 있지요. 민서가 혼자 버티고 설 수 있지만 아직 걷기는 힘들 때쯤에 돌 사진을 찍을까 합니다. 보통 돌 전에 아기가 설 수 있다고 하니까 빠르면 10월이나 11월쯤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때는 더 재미있고 다양한 연출이 가능하리라 기대하고 있죠.
셀프 스튜디오 촬영에 들어간 비용은 총 8만원. 물론 현상이나 인화를 하지 않고 룸 대여료(2시간 6만원)와 카메라 대여료(캐논 5D 2시간 2만원)만 지불했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현상하고 인화하면 또 지출이 생기겠지만 아이와 함께 한 셀프 스튜디오 나들이 꽤 즐거운 일이었습니다. 아이 100일 사진을 고민하는 분들에게 추천하고 싶군요.
보통의 아기들이 그러하듯 일단 뭐든지 입으로 갑니다. 안고 있으면 아빠 팔뚝이나 손등을 빨고 있고, 장난감을 주면 맛부터 보려는지 입으로 가져가는 거죠. 아기는 미각을 가지고 있을까요? 미각은 태어날 때부터 가진 감각 중의 하나라고 합니다. 민서는 요새 입에 침이 고이는 경우가 많아요. 입으로 "브르르르르"하며 고인 침을 가지고 장난도 치죠.
민서가 처음에는 젖병을 강력히 거부했습니다. 어렸을 때 젖꼭지를 이용해서 비타민과 약을 좀 먹였는데, 그 기억 때문인지 젖병의 꼭지를 물면 약을 먹는 줄 알고 혀를 내밀어 뱉어내려고 하거나 짜증을 내곤 했죠. 덕분에 처음에 사놨던 분유는 고스란히 애물단지로 남아버렸더랬습니다.
그런데 점점 엄마 젖이 모자르기 시작했죠. 그러던 어느날 유난히도 보채던 민서에게 분유를 타서 먹였더니 아주 잘 먹기 시작했어요. 젖꼭지를 아주 강하게 거부하던 민서의 모습은 사라지고 왜 그동안 이 맛있는 걸 안주었냐며 쭉쭉 빨아 먹더군요.
지금은 민서 엄마가 분유와 모유를 번갈아가면서 주고 있어서 아주 건강해지고 살도 하루가 다르게 통통하게 오르고 있습니다. 젖병을 물기 시작하면서 제가 손수 먹일 수도 있고, 덕분에 민서 엄마는 좀더 자유로와질 여지가 생겼지요.
젖도 잘 먹고 분유도 잘 먹으니 힘도 세지고 노는 것도 에너지가 펄펄 넘칩니다. 바구니에 앉혀 놓으면 모서리를 잡고 가만히 앉아 있을 수도 있을 정도로 허리힘도 생긴 듯합니다.
바구니를 타고 바구니를 밀어주면 저 앙증맞은 손으로 바구니를 꼭 잡는 듯합니다. 오래 못가 잉잉거리지만 그래도 짧은 바구니 여행이 싫지는 않았나 봐요. 그나저나 아기랑 놀아주려면 보통 에너지가 필요한게 아닙니다.
순수한 육체적인 삶의 경험에서 태동하는 아이의 영혼은
우리에게 바로 '지금'과 공명하라는 신호를 보내고 있다.
아이가 알려주는 그
신호에 우리는 충분히 반응해야 한다.
이것이 운명이다.
아이를 안아 들어 본다는 경험은 매우 특별하다. 그것은 큼직한 사랑을 하나 들고 있는 무게와 같다. 아이가 무럭무럭 크다 보면 그 버거움은 아이의 몸무게만큼 더욱 커진다. 그런 사랑을 거뜬히 들어 올리는 게 또한 사랑이니, 사랑은 얼마나 위대한 경험인가.
고된 업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면 아내와 아기가 함께 맞아주는데, 그때마다 민서는 활짝 웃어 주는 걸 잊지 않는다. 그날 있었던 모든 안 좋은 기억들을 지워주는 미소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그래서 점점 가벼워진다. 누군가는 회사에 묶어 놓은 말뚝을 다시 집으로 가져와서 묶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고 하는데, 아무래도 그 말뚝은 꽃을 닮았나 보다. 집안에서는 꽃향기가 나는 듯하다.
민서가 7kg을 살짝 넘어서고 있다. 2.02kg의 미약한 몸무게로
태어났지만 200여일을 지나고 있는 지금 아주 건강하고 활기차게 잘 자라고 있다. 민서를 들어 안는 일은 행복하지만 조금씩 삶의 무게로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내 걱정스런 눈길을 느꼈는지 민서는 환하게 웃어 준다. 빠져들 것 같은 눈동자를 보며 근심을 잊는다.
요새는 뒤집기가 한창이다. 어떨 때는 잘 자다가 자기도 모르고 뒤집고는 끙끙대는 통에 나와 아내의 잠도 깨우고 만다. 그럼에도 아이가 뒤집는 모습은 경이롭다.
처음에는 허리를 활처럼 휘는 것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한쪽 다리와 뒷머리를 받쳐서 허리를 띄운다. 이러면 절반은 성공이다. 예전에는 여기서 힘이 딸려서 다시 원상태로 돌아오고 말았는데, 요새는 다리 힘도 세지고 목의 근육도 단단해졌는지 끙끙 두번만 하면 어느새 뒤집고 엎드려 있다.
민서에게 엎드려서 보는 세상은 이전과는 아주 다른가 보다. 무척이나 신기한 듯 고개를 둘레둘레 흔들며 주위를 살핀다. 자신이 한 행동이 의미하는 것을 곰곰이 뒤짚어 보는 듯한 멍한 눈빛으로 앞을 본다. 물론 그렇게 한 5분 정도 있으면 울음을 터뜨린다.
요새는 뒤집은 자세에서 발을 허둥대곤 한다. 아마도 조금 있으면 본격적으로 기어다닐 것이다.
기어다니기 시작하면 그때부터가 큰일이라고 다들 말한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어느 부모든 그럴 것이다. 아이가 다칠 거라는 생각은 그 어떤 악몽보다 무섭다.
그러나 이 세상은 비참과 무지, 불의와 폭력이 난무한다. 이해할 수 없는, 아니 이해를 무력화시키는 온갖 사건사고들이 곳곳에서 터지는 이런 세상에 아이를 낳은 것 자체가 원죄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항상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며 우리의 꿈과 희망을 다음 세대에 걸어 보는 것이다. 생명 있는 것은 모두 더 나아지려는 욕망을 가지고 있고, 이 사회는 인간의 이런 유기적 욕망이 한데 어우러져 있는 곳이라면 좀더 나은 사회로 나아갈 수 있다는 희망은 얼마든지 가질 수 있는 꿈이다.
사람들은 결혼과 출산 육아를 통해 무엇을 기대하고 있을까. 그것은 '살아있음에 대한 경험'이다. 순수한 육체적인 삶의 경험에서 태동하는 아이의 영혼은 우리에게 바로 '지금'과 공명하라는 신호를 보내고 있다. 아이가 알려주는 그 신호에 우리는 충분히 반응해야 한다. 이것이 운명이다.
순전히 경험에 비추어 이야기하는 거지만, 아기가 우는 데는 세 가지 이유가 있다. 먼저 배고프면 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배가 고프면 배가 고프다고 말하는 게 생명의 본능. 아기는 이것을 우는 걸로 표현한다. 둘째, 밑이 불편하면 운다. 즉 기저귀가 젖어 있거나 똥을 싸놓았는데 갈아주지 않으면 운다. 불편하니까 깔아달라는 얘기다. 셋째, 신체적 변화가 오면 운다. 열이 있거나 속이 안 좋거나 하는 경우다. 몸이 자기가 원하는 상태가 아닌 것이다. 주사 같은 경우는 처음 맞을 때만 울 뿐, 잘만 달래주면서 놀아주면 금방 울음을 그친다. 하지만 몸이 아프면 대책 없다. 아기가 끊임없이 울어대는 경우는 그래서 병원을 찾아가게 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잠투정. 잠이 온다고 운다. 아이를 안 키워본 사람은 잘 이해가 가지 않겠지만, 아이를 키워 본 부모라면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궁금하면 지금 당장 포털사이트 검색창에 '잠투정'을 쳐 보라. 아기 잠투정 때문에 속상한 부모들의 사연들이 줄줄이 뜰 것이다. 아기는 잠이 오면 자야 한다는 사실에 익숙지 않다. 눈꺼풀은 무겁고 정신은 몽롱하고 하품은 나오는데 자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아기의 편안한 잠을 위해서는 특별한 의식이 필요하다.
아기가 잠이 올 때는 여러 가지 사전에 예측할 수 있는 행동을 한다. 눈을 부비거나, 하품을 하거나, 눈을 자주 깜박인다. 이때 잠자리 의식을 치루지 않는다면 아기는 칭얼대기 시작한다. 여기서부터 바로 아이를 재우는 의식을 하는 것도 좋지만, 만일 아기가 더 놀고 싶은 욕심이 많거나 충분히 졸리지 않다면 오히려 역효과가 난다. 엄마아빠가 자기를 억지로 재우는 의식을 하면 아기는 싫어하고 놀아달라고 발버둥치는 거다. 그럼 또 놀아주어야 하는데, 아기와 놀아주기는 쉽지 않다. 어른들이 빨리 지치는 이유 중의 하나다. 그러다가 아기가 다시 졸음이 오면 또 하품을 하고 눈을 부빈다. 다시 잠자리 의식을 치른다. 이런 행동을 반복하다 보면 길게는 한시간 이상 울고 보채는 아기와 싸워야 한다. 더군다나 졸린 아기이니 그냥 놔두지 못하고 안고 서성이며 다독여 줘야 잠이 올까 말까하니 쉽지 않은 일이다. 한 번은 우는 아기를 달래겠다고 한밤중에 동네를 한 바퀴 돈 적도 있다.
민서는 순한 아이다. 누가 안아도 낯가림도 없이 잘 안긴다. 물론 안는 자세가 서툴거나 어색하면 칭얼대는 건 모든 아기와 다르지 않다. 허나 잘 안아주는 사람에게는 그냥 잘 안긴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은 민서가 순하다고 한다. 민서 재우는 걸 안 해본 사람들 말이다. 한번은 시골에서 아기를 재우는 데, 아기 잠투정을 처음 본 어머니는 아기 어디 아픈 게 아니냐며 병원에 데려가라고 하신다. 그렇지만 아기는 아픈게 아니라 잠투정을 하는 거였다. 그날따라 2시간 가까이 잠투정을 했으니 집안 어른들이 다 놀라고 말았다.
잠투정은 딱히 방법이 없나 보다. 지금으로서는 적당하다 싶을 때 누워서 젖을 물리면서 재우다 보면 잠이 들면 다행이다. 젖을 빨지도 않고 떼를 쓸 때가 문제다. 아기 키우면서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눕히고 손발이 다 닳도록 고생하며 밤잠을 설치면서 살아가는 부모의 마음을 실감하는 바다.
그래도 아이는 쑥쑥 큰다. 지금 민서는 한창 뒤집기 발버둥을 치고 있다. 한쪽 다리를 직각으로 세우고 힘을 주어 허리를 튕겨서 엎어지기 직전까지 왔다. 가끔 민서 엄마가 아기를 엎어 놓으면 고개에 힘이 잔뜩 들어가 곧추 세운다. 아직 기어나가는 단계까지는 오지 않았지만, 뒤집으면 곧잘 기어갈 것 같다는 예상이다.
책을 읽어주어야겠는데, 마땅히 방법도 모르겠고 시간도 쉽지 않다. 집에 와서 저녁 먹고 나면, 아기 목욕 준비하고 목욕 끝나면 젖을 먹이면서 잠잘 준비를 한다. 잠잘 준비라는 게 보통 방안의 불을 모두 소등하는 거라서 책을 읽는 게 어렵다. 잠투정이 없으면 10시 정도에 잠이 들지만, 어느 날은 11시 전후에 모든 하루 일과가 끝난다. 나 스스로도 책 읽을 시간이 쉽게 나지 않는다.
지난 주말에 마트에서 유모차를 한대 샀다. 아직 내 차도 없지만, 아기차는 꼭 있어야하지 않나. 그리고 어제 드디어 유모차 외출을 해 보았다. 유모차를 끌고 다녀보니 장애인분들의 고충을 새삼 느낀다. 사람이 안전한 길, 유모차가 편안한 길, 휠체어가 자유로운 길은 어렵겠지만 놓쳐서는 안 될 사회적 약속이 되어야 할 것이다.
집 앞의 목감천을 따라 안양천까지 약 30분 정도의 도보길, 그리고 샌드위치로 하는 점심식사와 이야기. 5월의 평화로움이 삶에 배어들었다. 잠든 아기와 환하게 웃는 아내의 얼굴을 보니 세상의 모든 행복이 이곳에 내려와 있다는 착각에 빠져든다. 그러고 보면 세상의 모든 남편들은 저 평화로운 잠과 아름다운 웃음에 빠져 그 험한 세상을 걷고 있는 건 아닐까?
4월 19일이 결혼 1주년입니다. 비록 아내와 딸은 멀리 전라남도 구례 산골짜기에 있지만, 저로서는 남다른 날을 남다른 방법으로 기념해 보렵니다. 불과 1년 전 사랑하는 사람과의 결혼에 들떠 정신없이 결혼식을 치렀던 기억들이 이제는 아주 오래전 기억처럼 아득하기만 합니다. 무엇보다 지금 이 자리에 사랑하는 아내와 그만큼 또 사랑하는 딸, 민서가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인 듯합니다. 현재가 행복하면 과거는 금방 멀어지는 법이죠. 이렇게 저에게 1년 만에 사랑하는 여인이 둘이나 생겼습니다. 세상이 맺어준 인연 아내와 하늘이 맺어준 인연 딸. 둘의 웃음을 지키기 위해 살아가는 일만큼 행복한 일은 없습니다.
그리고 지난 주말 새벽 5시에 출발해 다시 4시간여의 먼 길을 달려 아내와 민서에게 갔지요. 여전히 운전은 서툴고 낯설지만(2007년에 면허를 땄습니다), 그래도 사랑하는 사람을 향해 달려가는 길은 즐겁기만 했습니다. 9시 반쯤 장모님 댁에 도착해 보니 아내와 민서는 곤히 자고 있었지요. 주말 아침의 늦잠은 그 누구에게도 뺏기고 싶지 않은 거라 가만히 옆에 앉으려 했는데, 민서가 먼저 깨서 말똥말똥한 눈으로 아빠를 쳐다보네요. 그리고 아내도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깨서 일어났지요.
민서는 일주일동안 많이 달라졌습니다. 서울에서는 4~5일마다 변을 보았는데, 시골에 와서는 거의 매일 황금변을 내놓았습니다. 스스로 손을 모으고 물건을 잡는 시늉을 하고, 가만히 물건을 쳐다보거나 손을 쳐다보는 행동을 합니다. 안아주는 사람과 눈을 잘 마주치고, 엄마가 움직이는 대로 자기 시선을 돌립니다. 옹알이도 많이 늘어서 민서가 가장 기분 좋은 아침에는 아주 시끄러울 정도입니다. 뭐라고 하는지도 모를 말에 넙죽넙죽 대꾸를 잘하는 엄마가 있어 다행이지요. 상상력 부족한 저는 대답할 말을 못 만들어 내고 그냥 "어~ 어~"라고만 하지 말입니다.
이날은 아내와 딸을 데리고 자동차로 지리산 성삼재에 오르려 했으나 계속되는 이상저온으로 대신 쌍계사길 드라이브만 다녀왔습니다. 쌍계사 벚꽃 길은 아내가 예전부터 꼭 가보아야 한다고 누누이 강조했던 터라 저 역시 기대감이 컸는데, 정말 쌍계사 벚꽃 길의 아름다움은 서울 여의도 윤중로 벚꽃 길에 비할 바가 아니더군요. 아쉽게도 우리가 갔을 때는 벚꽃이 많이 지고 난 뒤였지만, 남아 있는 꽃잎과 떨어지는 꽃잎 속에서 이전의 아름다움을 상상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쌍계사에서 아내와 민서
민서는 아직 자동차 여행에 익숙지 않은 것 같았습니다. 게다가 여전히 작아서 아기띠를 해도 그다지 편안해 보이지 않았지요. 그리고 콧바람 신나게 쐬고 온 하루였습니다. 나중에 아장아장 걷게 되면, 산과 들로 더 신나게 다닐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아이는 감수성이 풍부하고 인간과 자연을 배려할 줄 아는 아이로 키우고 싶습니다. 이번 짧은 여행에서 아내와 나는 다시 한 번 민서와 약속하고 왔습니다.
민서가 일을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이전 포스팅 "안녕, 저 민서에요"가 그만 다음 view의 포토·동영상 베스트에 뜨면서 육아 베스트에도 올라 하루만에 제 블로그에 1600명이상 방문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 거죠. 민사의 인사 한번으로 이렇게 블로그가 대박이 났으니 앞으로 민서가 말하고 걷고 학교 다니면 아마 수만명이 다녀가지 않겠냐는 말도 안되는 상상도 해봅니다. ㅎㅎ
그래도 민서가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았으면 좋겠습니다. 아니, 어쩌면 아이가, 어린이가 보호받고 존중받는 사회가 되어야 하는 거겠죠. 저 먼저 우리 아이만 볼 게 아니라 다른 아이를 보호하고 존중하는 어른이 되어야겠습니다.
사실 사진의 모습은 막 잠들고 있는 민서의 모습입니다.
꼼지락거리던 중 오른손을 쫙 편 모습이 아내의 사진기에 순간포착으로 잡힌 거죠.
눈도 살포시 감긴듯 뜬듯하고 입꼬리도 샐쭉한게 살짝 웃는 듯합니다.
밤에 잠투정이 좀 심한 거 말고는
아주 건강하게 잘 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