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대비가 춤을 추듯이 온다.
옥상으로 나가는 문을 여니 반갑다고 바짓가랑이에 달려 든다.
함께 춤을 출까 하다가 집에 갈길이 걱정됐다.
이래저래 소심한 마음은 쏟아지는 장대비를 카메라에 담는 걸로 위안한다.

사진첩을 보다가 우연히 지난 겨울 옥상에 눈이 쌓인 모습을 담은 게 발견됐다.
이렇게 눈이 왔던 게 엊그제 같은데 이제 얼마 안있어 9월이다.
세월 참 빨리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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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도 살기 힘든 인간에게 500년, 1000년의 시간은 영원과 동의어다. 큰 산에는 천년을 살아온 주목이 있고, 오랜 사찰이나 향교에는 그곳의 역사만큼 살아온 은행나무가 있다. 시골의 동네 어귀에는 아름드리 느티나무들이 그곳을 떠났던 사람들의 추억거리로 자리 잡고 있다.


그 중에서 은행나무는 도심 길거리에서 아주 흔하게 볼 수 있는 나무가 되었다. 예전에 플라타너스가 주종을 이루던 가로수를 얼마전부터 은행나무로 교체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나무가 산에서 숲을 이루고 있는 모습은 아마도 볼 수 없을 것이다. 이 나무는 우리 땅에서 스스로 싹을 내지 못하기 때문이란다. 그렇다면 그 많은 은행나무들은 어떻게 자라서 도심의 길가를 채우고 있는 것일까. 얕은 지식으로는 찾을 수 없었다.


그럼에도 은행나무는 중생대부터 지구상에서 살아와 지금까지 유전자를 이어오고 있다. 이 때문에 다윈은 은행나무를 들어 ‘살아있는 화석’이라고 불렀다. 경기도 양평의 용문사 은행나무는 수령이 1100년 정도로 추정된다. 전설에 따르면 신라의 마의태자가 심었다는 설도 있고, 의상대사의 지팡이라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어느 것이든 천년의 세월에서 비롯된 가상의 이야기겠지만, 나무가 살아온 영겁에 가까운 시간을 생각하면 아득하기만 하다.


성균관대의 명륜당에 있는 은행나무는 그보다 못하지만 500년에 가까운 수령을 보인다. 오래된 은행나무는 대개 사찰이나 사당에 많이 심어진 것들이 많은데, 명륜당의 은행나무도 마찬가지다. 명륜당 앞마당에서는 종종 전통혼례식이 열린다. 내가 찾아간 이날도 지인의 전통결혼식이 있었다. 500년을 살아온 은행나무 아래에서 인간은 백년해로의 의식을 거행한다. 은행나무의 기운이 그들을 축복했을 것이다.







예전부터 잘 알고 지내던 후배 박선영 양. 오랜 인연과 드디어 결혼을 올렸다. 신랑이 전통결혼식을 고집했다고 하는데, 그 이 역시 싫지는 않았나 보다. 그에게 전통 혼례복은 아주 잘 어울렸다.



식전 신랑 신부가 전통 혼례복을 입고 명륜관 마당 여기저기서 기념촬영을 했다. 거기에 나도 끼어서 사진을 찍었다.



신랑은 시종일관 땀을 흘렸다. 그야말로 육수가 뚝뚝 떨어진다는 표현이 맞겠다. 그래도 싱글벙글. 신부의 언니가 동생의 신랑 땀까지 손수 닦아주신다.




결혼식의 주인공은 신랑 신부겠지만, 무엇보다 주목 받는 건 역시 신부. 온갖 카메라 세례를 받는다. 아무래도 쉽게 접하기 힘든 전통 결혼식이라서 그런지 저마다의 카메라들이 모두 동원되었다.




궁금한 건 참을 수 없지. 전통 혼례에서 신부는 얼굴 가리는 게 꽤나 중요했나 본데, 요새 신부에게 그것은 별로 중요한 게 아니다.




술은 정말 잘 마셨는데 말이죠. 그쵸?



덕담도 듣고...




신랑 저러다 쓰러지는 줄 알았다. 땀흘리는 모습.




신랑신부도, 하객도 모두 무더위 보다 뜨거운 사랑으로 끝까지 자리를 지켰을 것이다. 그 둘을 지그시 지켜보던 은행나무의 보살핌으로 부디 백년해로 하면서 행복하게 잘 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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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커뮤니케이션 도구(SNS)의 첨병으로서 페이스북과 함께 우리나라에서는 트위터가 한창 그 주가를 올리고 있다. 나름 초기 사용자이지만 여전히 그다지 활동적으로 사용하고 있지는 않은 트위터인이다. 하지만, 오랫동안 옆에서 보아온 트위터의 위력은 만만치 않다는 게 사실이다. 그 소식의 전파 속도나 이야기의 질, 그리고 글 내용의 청정성, 다양한 글 추천 등은 여타 인터넷 게시판의 글들보다 수준이 높다.

어쩌다 보니 여기서 옛 지인들도 만나게 된다. 대학 동문들끼리 트위터에서 만나면 무슨 이야기를 할까. 그다지 새롭지 않다. 새로운 이야기들보다는 옛날 이야기들, 혹은 공통된 사람들의 현재 근황, 자기 이야기 등등





따지고 보면 그다지 새로울 것 없는 이야기들인데, 술병은 켜켜이 쌓여간다. 낯설지 않은 분위기 편안한 담론들, 지루하지 않게 넘어가는 술잔들 사이에 옛정이 새록새록 스며들었다. 그래서 꽤나 마셨나 보다. 딱히 무슨 이야기를 할까라는 고민도 없었지만 어느새 시간은 자정을 넘어 새벽으로 달렸고, 술이라도 잠시 깨보자고 달려간 노래방에서는 픽 쓰러져 잠들고 말았다.

그리고 다음날은 온몸의 뼈와 근육들이 반란을 일으키고 내장은 고통에 겨워 신음하며 머릿속은 지옥의 아수라장처럼 어지럽기만 했어도 되돌아보면 그 인연들이 다들 기쁘고 반갑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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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구상나무





8월 장마라는 말이 생길 정도다. 8월 한 달간 비가 오지 않은 날이 다섯 손가락에 꼽힌다니 말이다. 덕분에 자전거 출퇴근은 단 한번에 불과하다. 어제가 그 날이었다. 오랫동안 쉬던 자전거라서 그랬는지 탈이 나도 단단히 났다. 퇴근길에 구로역 근처에서 그만 대못을 밟고 말았다.


한창 집으로 달리는 길이었다. 갑자기 뒤에서 “펑”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무언가가 드르륵드르륵 걸리는 소리가 들렸다. 처음 생각에는 뒷바퀴 쪽에 안장 등에서 문제가 생겨 주저 앉은 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자전거를 세우고 찬찬히 살펴보니 뒷바퀴에 모나미 볼펜심 정도의 길이와 굵기를 가진 대못이 박혀 있었다. 그 대못의 머리 부분이 바퀴 물받이 부분에 부딪히면서 드르륵드르륵 소리를 냈던 것이다.


난감한 상황이었다. 펑크를 떼울 줄도 모르고 설사 안다고 하더라도 떼울 수 있는 장비도 없었다. 오랜만에 자전거 끌고 나와서는 집까지 걸어가야 상황이 난감하다 싶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구로역 못가 자전거 점포가 있고, 동양공전 근처에도 자전거 점포가 있다는 것이 떠올랐다. 시간은 오후 9시를 넘어가고 있어서 가게가 열었을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실낱같은 기대를 가지고 걷기 시작했다. 다행히 구로역 근처의 자전거 가게는 열려 있었다.


5000원을 주고 펑크를 떼운 후 무사히 집에 돌아왔다. 이로서 이날까지 977.9km를 달렸다. 올해 계획인 3000km 주행은 어렵겠지만 그 절반은 무난하지 않을까. 이놈의 비만 그만 내리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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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난 민서가 태어나던 날을 잊을 수가 없다. 민서와 처음으로 눈을 마주친 날이라는 점에서도 그렇지만, 고통스러워하고 힘겨워 하던 아내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출산의 고통에 대해 무시무시한 이야기를 많이 들어왔던 터라 어느 정도 짐작은 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이 힘겨워하고 고통스러워 하는 모습을 보는 것도 매우 힘겹고 고통스러운 일이다. 그 고통은 여전히 내 기억에 자리잡고 있다. 물론 당사자에 비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그녀가 둘째를 생각하고 있다.

내가 둘째를 가지는 것에 대해 가장 마음에 걸렸던 부분은 내 재정 건전성이나 내 삶의 부자유 등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렇게 힘들어 했던 아내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물론 아내가 그것을 잊었을 리가 없다. 적지 않은 나이라서 임신과 출산을 위해서 단단히 마음을 먹지 않으면 안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굳이 둘째를 생각하는 이유는 사랑하는 딸 민서가 홀로 자라게 하고 싶지 않다는 것. 그 고통과 힘겨움을 무릎쓰려는 엄마의 모정은 이렇게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물론 둘째를 가졌을 때 내가 감당해야 할 것들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키워 보면 후회할 거라는 사람들의 말도 흘려 듣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행복할 수 있는 길을 찾아갈 것이다. 미래에 저당잡혀 걱정하기 보다는 지금 아내와 나, 민서가 행복한 길을 찾는 게 정답이다.

아내가 둘째를 가지자고 한다. 아마도 잘 된다면 마흔 전에 아이 둘 키우는 아빠가 될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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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례 큰집 풍경


처음으로 큰아버지와 단둘이 함께 한 여행은 시제를 지내러 간 남해였다. 대학 때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벌써 10년이 훌쩍 넘어 20년 가까이 지난 세월이다. 허물어져가는 종가집이라지만, 그래도 나름 종손이라고 해, 나만 유일하게 남해의 조상 묘소에 찾아간 것이다. 큰아버지와의 여행을 통해 나는 나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는 나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형제분들이 낳은 자손이 지금도 하나의 마을을 이루며 살고 있다.

큰아버지의 이야기는 구례로 들어와 일가를 이룬 앞 세대의 고난에 대한 이야기이다. 마치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찾아 떠나는 유태인들의 이야기처럼 장대한 대서사시가 큰아버지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하지만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이야기는 그 당시 나로서는 양자역학에서 나오는 소립자 이론만큼이나 실체가 불분명하고 이해가 어려운 이야기였다. 당시의 나로서는 내가 이 세상에 나오기까지 지난한 과정의 앞세대의 삶이 있었다는 새로운 인식을 심어주는 것으로 충분했을지도 모른다. 그 누구도 내 선조에 대해 이야기를 해 주는 이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큰아버지의 조촐한 고희연이 지난 토요일 구례에서 있었다. 큰아버지의 동생과 그 자식 손자, 그리고 친척분들만 참석한 자리지만 식당 한켠을 온전히 차지하며 시끌벅적했다. 손자손녀들도 큰애가 이제 어린이집에 다니는 정도이지만 제법 소리를 내는 터라 정신이 없긴 매한가지였다. 그래도 오랜만에 일가친척들만의 자리라 제법 즐겁고 유쾌한 자리가 마련된 것이다. 돌아보면 나로서는 몹시 아쉬움이 남는다. 큰아버지가 가진 삶의 무게는 한 인간의 역사가 아니라 그 전 세대의 삶의 이야기를 고스란히 간직한 역사의 무게가 느껴지기 때문이다. 언제가 기회가 된다면 큰아버지의 옛날 이야기들을 녹취해 볼 생각이다. 우리의 아이들에게 먼저 살다간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삶을 들려주는 것도 삶의 뿌리와 정체성을 알아가는 데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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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나를 모를 때가 많다. 이것은 꼭 속마음만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몸 상태에 대해서도 똑같이 적용된다. 많은 이들이 갑작스레 찾아온 병마와 사투를 벌이고 있다. 하지만 병마는 갑자기 찾아오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자신의 몸에서 조금씩 아주 천천히 자라고 있는 것이다. 그 병마를 키웠던 것은 자신의 식습관과 생활 습관이다.


내 몸 상태를 알 수 있는 방법으로 건강 검진이 있다. 얼마 전 국민건강보험 공단에서 제공하는 일반 정기검진을 받았다. 혈액검사와 소변검사를 제외하고 그다지 신통한 검사는 없었다. 그 결과가 오늘 나왔다. 키는 더 커졌고(응?) 몸무게는 약간 줄었다. 체지방과 허리둘레도 정상으로 나왔다. 다만 혈액검사 결과에서 이상이 있었다.


총콜레스테롤은 178(200미만 정상)이 나왔는데, HDL-콜레스테롤은 42(60이상 정상)로 정상보다 적게 나왔다. 반면 트리글리세라이드 221(100~150미만 정상)로 정상보다 많이 나왔다. LDL-콜레스테롤 91.8(130미만 정상)은 정상으로 나왔다. HDL-콜레스테롤과 트리글리세라이드가 비정상 수치를 보이고 있었다.


생소한 의학용어들은 대개 공포의 대상이 되기 쉽다. 더군다나 비정상 수치라고 찍혀 나오니 내 건강염려증을 부채질한다. 인터넷에서 각각의 단어를 검색해 보았다. 트리글리세라이드는 일종의 중성지방으로 몸에 그다지 좋지 않은 콜레스테롤이다. 반면 HDL-콜레스테롤은 관상동맥질환과 역의 상관관계가 있어서 몸에 좋은 콜레스테롤이다. 몸에 좋은 콜레스테롤은 적고 몸에 별로 좋지 않은 콜레스테롤은 높으며 아주 안 좋다는 콜레스테롤은 정상인 셈이다. 역시 건강관리에 좀 더 신경 써야 한다는 결론이다.


HDL-콜레스테롤은 등푸른 생선이나 채소와 과일에서 많이 나온다. 과일과 생선을 즐기지 않은 내 식습관이 문제다. 중성지방이라는 트리글리세라이드는 주로 알코올이 수치를 높인다고 하는데, 일주일 1~2회 정도의 음주력을 가지고 있는 나로서는 확실히 많이 줄여야 할 이유가 됐다. 보통 이쯤 되면 “술이 웬수다”라고 하지만, 그렇지 않다. 자신의 음주 습관이 ‘웬수’인 것이다. 따라서 술을 없애거나 바꿀 게 아니라 자신의 음주 습관을 바꿔야 하는 것이다. 곧 스스로를 바꿔야 한다.


















고지혈증의 식이요법으로 제시되고 있는 정보다.

1. 하루 3끼 식사는 규칙적으로 합니다. → 아주 잘 하고 있다.

2. 과식은 피하고 곡류(밥, 빵, 떡 등), 어육류(생선, 고기 등), 채소, 우유, 과일 등을 다양하게 먹습니다. → 생선과 우유, 과일 섭취에 좀 더 신경 써야겠다.

3. 합병증을 막기 위해선 반드시 싱겁게 식사를 해야 합니다. → 아내의 음식은 좀 싱거운 편이다.

4. 술은 고혈압과 뇌졸중의 위험이 있으므로 삼가는 것이 좋으나, 만약 마실 경우에는 주 1-2회 이내로 하고, 1회는 2잔 이내로 마시도록 합니다. → 주 1~2회는 맞으나 1회 1병 이상 마신다. 주 1회로 줄이고 1병 이내로 줄여야겠다.

5. 잡곡류 (콩, 보리, 현미), 채소류, 해조류 (미역, 다시마) 등 섬유소가 많은 식품을 충분히 섭취합니다. → 잡곡류는 충분히 잘 하고 있지만 해조류는 규칙적으로 먹어야겠다.

6. 햄, 소시지, 핫도그, 반조리 식품 등의 가공식품은 피합니다. → 이젠 또 하나의 낙이 사라졌다.

7. 과체중이면 체중조절을 하도록 합니다. → 아주 살짝 과체중이다.

8. 규칙적인 운동은 고지혈증의 예방과 치료에 필수적입니다. → 일주일에 3회 이상 자전거 출퇴근(왕복 2시간)을 하고 있다.


우리는 먹고 마시는 게 풍부한 세상을 살고 있다. 하지만 몸에서 받아들일 수 있는 음식의 양과 질은 한정되어 있는 법이다. 옛 표어를 빌려와 표현하자면, "무턱대고 먹다가는 돼지꼴을 못면한다"라고 했다. 무엇을 어떻게 먹고 살 것인가는 그저 한 개인의 건강관리라는 측면 보다는 보다 진보적인 삶의 방향을 설정하는 데에 필요한 기준이 된다. 3끼 건강한 식사와 꾸준한 신체 활동, 그리고 운동 등을 통해 내 몸을 아끼고 사랑하는 것이 이 지구를 사랑하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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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총통화 시간 : 86시간 27분 49초 4108통화
☏ 발신 통화 시간 : 48시간 18분 05초 2312통화
☏ SMS 발신건수 : 661건
₩ 구매 당시 가격 : 100원
@ 구매 년월 : 2008년 2월 경

액정에 얼룩같은 상처들이 꽤 넓게 분포해 있다. 
윗부분의 색은 이미 군데군데 벗겨져 있다.
횟수로는 3년을 사용하고 있는 셈이다.

전화기라는 것이 통화만 잘되면 되는 거다,
라는 생각은 이제 고릿적 이야기가 되어 버렸다.
다양한 기능이 있는 스마트폰이 대세다.
굳이 대세를 따라간다는 생각은 아니지만
여러가지 기능들을 보면
나에게 참 유용할 것으로 보이는
여러 애플리케이션들이 눈에 띈다.

처음에는 안드로이드 폰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아이폰 4G가 나를 유혹하고 있다.
어찌됐든 조만간 지금 저 핸드폰과는 이별이다.
수많은 사람들과 세상을 이어준 저 녀석과 이별할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짠하다.

아직은 그래도 내 곁에서 잘 살아주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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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구상나무







결혼은 희생을 강요한다. 아니, 희생 없이 결혼 생활은 불가능하다. 그런데 가끔 우리는 그 희생의 대상이 상대방이라고 착각한다. 여기서 필요한 자각은 그 희생은 상대방을 위함이 아닌 결혼 생활을 지키기 위함이다. 자신의 희생이 상대방으로 향한다는 가정은 결국 그 희생에 대해 유세를 떨거나 반대로 피해 의식에 사로잡혀 서로의 관계에 상처를 내는 쪽으로 흐르기 마련이다. 그것은 희생이라기 보다 위선에 가깝다. 그러기 때문에 상대방을 위해 희생한다고 생각할 때부터 결혼은 이미 파국을 향해 치닫는다. 진정한 자기희생은 숭고한 결과를 만들어내지만, 위선은 비극으로 내달린다.

결혼 생활은 서로에 대한 자리매김이다. 평생을 두고 진행되는 이 자리매김은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위기(혹은 기회)의 성격과 내용이 다른만큼 어느 하나의 정답을 만들 수는 없다. 항상 머리를 맞대고 그 위기(혹은 기회) 앞에서 서로의 역할과 임무를 배분해 관계를 재정립한다. 그럼 그 결과는 무엇일까?

"결혼은 시련입니다. 이 시련은‘관계’라는 신 앞에 바쳐지는 ‘자아’라는 제물이 겪는 것이지요. 바로 이 ‘관계’ 안에서 둘은 하나가 됩니다."

신화학자 조셉 캠벨이 이야기하는 바다. 잃어버린 반쪽을 만나는 것은 쉽지만 그 잃어버린 반쪽과 만나 하나가 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신은 자아라는 제물을 요구하며, 따라서 결혼 생활을 희생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연애는 할 수 없는 것, 둘을 하나가 되게 하는 바탕이 바로 결혼이다.

지난주 토요일 결혼을 앞두고 자신의 신부를 소개하는 후배의 술자리에 초대를 받았다. 후배는 자신의 배우자가 '착하다'고 했다. '착하다'는 말도 '결혼'이라는 말처럼 단어가 가진 사회적 해석이 오묘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말에서는 선의가 느껴졌다. 그동안 이어져 온 연애 생활을 청산하고 오랜 역사적 전통과 사회적 풍습이 주는 시련을 둘은 이겨내야 한다. 그 과정에서 불필요하고 소모적인 희생이 뒤따르더라도 그 시련은 둘의 관계맺기를 통해 하나가 탄생하는 산고의 과정이다.

세상은 진정 하겠다고 결심하고 스스로 실천하는 사람에게 길이 열린다. 부디 먼훗날 행복이라는 옥동자를 생산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덧, 결혼식 못가서 이런 글 쓰는 건 절대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만... 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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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에는 황사로 창밖이 노랗더니
오늘은 또 아이 주먹만한 눈송이들로
창밖이 하얗다.
3월 말에 봄비도 아니고 봄눈이다.
그런데 봄과 눈이 어울리는 조합일까.
실상 오늘 내리는 눈만 보아도
봄을 소리내어 비웃듯이 쏟아졌다.
대설주의보.
3월말의 대설주의보는
봄에 대한 불신을 나았다.
사람들은 봄을 의심했고,
3월을 의심했다.
눈에 보이는 눈이 눈에 보이지 않는
3월을 이긴 것이다.

어차피 시간이라는 것은
사람이 만든 개념이다.
3월에 눈이 오는 것이
이해되지 않을 수 있지만,
지구 기후의 과학적 엄밀성은 
'3월'이나 '봄'이라는
인간이 만든 개념과는
하등의 관계가 없다.
여기서 나는 그동안 쌓아온 3월,
봄의 개념을 다시 의심해 본다.
흔들릴 수 없는 긍정을 부정해 보는 것은
매우 흥미롭다.
3월의 눈은 사람들의 입에서
기후 변화를 이야기하며
지구의 고통을 이야기하도록 만들었다.
우리 말에 '오랜 의심이 봄눈 녹듯이
녹아 없어졌다'는 말이 있다.
그런데 오늘 내린 봄눈은
새로운 의심을 싹틔웠다.
과연 우리 지구는,
우리 자연은 괜찮은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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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구상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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