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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으로 간 구상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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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상나무 아래에서

한여름밤의 원효대교

구상나무 구상나무 2008.08.10 22:44



여름에 한강에 나가 본 사람은 알 것이다. 그 한밤 중에도 자는 사람, 술마시는 사람, 싸우는 사람, 노래하는 사람, 고스톱치는 사람, 폭죽 터뜨리는 사람, 오토바이 타는 사람, 자전거 타는 사람, 낚시하는 사람, 배 타는 사람... 벼라별 사람들이 참 많다. 새벽 2~5시까지 풍경이었다. 물론 그중 노래하는 사람, 술 마시는 사람에 본인을 비롯한 일행이 있었음을 부정하진 않겠다. 하지만 뭐, 우리만 그랬나. 다들 그렇게 여름밤의 무더위를 즐기고 있었다.

제주도 뒷풀이라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갑자기 한강에 가서 술마시자는 제안은 내가 했다. 마침 서영 선배의 차가 있었고, 거기에 돗자리도 두 장이나 있다고 했다. 한강의 야경에 술잔을 띄워보자는 아주 낭만(?)적인 제안에 금세 호응해 주었다.

그런데 역시 쉬운 일은 없다.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회를 떠간다는 게, 노량진 수산시장까지 길 찾아가는 데 한참을 헤매니 말이다. 예상했지만 수산시장의 횟값이 싼 것도 아니다. 광어 1kg에 2만원이라니... 저울 사기도 있다고 하는데, 이거 원 저울을 믿을 수가 있나. 좋은 마음으로 출발했는데, 딱히 즐겁지만은 않은 장보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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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차저차 우여곡절을 건너뛰어 원효대교 밑에 도착해 돗자리를 깔고 앉은 시간이 대충 10시 반정도. 이미 다리 밑은 초만원이다. 이미 자리잡고 누워 주무시는 분들도 많다. 으레 그러듯이 한편에서는 점 100원 고스톱이 한창이다. 경찰봉 휘휘 돌려가며 의경 둘은 유유자적 돌아다니고 있다. 단속할 만한 일은 없지만, 그래도 경찰이 옆에서 지켜준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을까. 유감스럽지만, 의경 둘이 할 수 있는 일은 그다지 기대할 수 없다.

내 왼편에 누운 아주머니 아저씨는 이미 깊은 잠에 빠져든 것 같았다. 조심스럽게 자리를 깔고 앉아 준비한 회를 풀어놓고 가까운 매점에서 술과 음료수를 사고 컵과 젓가락을 얻어왔다. 어수선하고 소란스럽지만 그래도 한강으로 떨어지는 가로등불이 빚어낸 멋들어진 야경을 보는 것은 색다른 경험이다. 한여름밤에 돗자리깔고 앉아 있는 것도 오랜만이며, 술 마시는 것도 몇 년 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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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왼편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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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오른편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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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롭고 즐거운 자리는, 그러나 오래가지 못했다. 분명 다닐 수 없을 텐데 하나둘 오토바이들이 보였다. 누가 이 밤에 피자라도 주문했나 싶었는데, 수시로 왔다갔다하는 게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얼마 안 있어 수십대의 오토바이들이 모여들었다. 희한한 경적을 울리는가 하면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다니는 오토바이도 있다. 그들만의 회합이 시작된 것이다. 근처에 있던 의경 둘이 자전거 도로를 오가는 오토바이들을 제지하려 하지만 대부분은 그냥 도망친다. 잠시후 방송국 카메라 등장했다. 오토바이를 타는 아이들을 찍었다. 한 청년을 잡아 인터뷰도 시도했다.

우리가 날을 제대로 잡았나 보다. 단지 우리에게 오토바이가 없을 뿐이다. 젠장, 아무튼 무척이나 시끄럽고 짜증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하나 둘 돗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사람들이 떠난 자리만큼 오토바이들의 영토도 늘어났다. 꿋꿋이 자리에 누워 고집을 피우던 사람들도 결국은 인상을 찌푸리며 일어났다. 다리밑에서 듣는 오토바이 소음은 참기 힘들다. 우리는 그나마 한강에 바싹 붙어있던지라 참을만 했지만, 그래도 제발 회합 끝내고 거리를 달려주기를 간절히 바랬다. 2시 넘어서 회합이 질주로 변했다. 족히 수십대의 오토바이들이 원효대교를 나가 차도를 달리기 시작했다.

사람들도 떠나고 오토바이도 떠난 원효대교 밑에, 조금씩 새로운 사람들이 다시 돗자리를 깐다. 젊은 연인 둘이 우리 옆으로 와서 텐트형 모기장을 치고 들어가 잤다. 그때 그만 모기에 물렸다. 저거 하나 갖고 싶다. 우리는 한강에서 꼬박 밤을 새워 보았다. 누구는 잠을 잤고, 누구는 이야기를 했고, 누구는 노래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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돗자리 깔고 모기장 안에서 편하게 자는 사람들. 저런 모기장이 갖고 싶단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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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11시경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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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5시경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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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2시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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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5시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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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을 나오면서 63빌딩 한컷. 밑에서부터 붉은 아침기운이 서서히 물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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