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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상나무 아래에서/일상의 발견

진눈깨비

구상나무 구상나무 2018.11.28 07:06
목요일 새벽
첫날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새벽에 잠이 깨서 어지러웠다. 일찍 잠이 들어서 그런 것일까, 아니면 전날 술을 한잔 한 게 원인이었을까. 혹시 감기 기운? 새벽에 잠이 깨는 날이 간혹 있긴 했으니 그리 대수로울 일은 아니었는데, 여느 날과는 다른 한기가 뒷덜미를 감싼다. 

목요일 저녁
밥을 먹고 있었다. 김치와 라면을 넣고 남은 밥을 넣어 죽을 만들어 먹고 있었다. 가까이 살고 있는 친구 최에게서 전화가 왔다. 
"KH 동생 JH가 전화를 했는데, 무슨 소린지 잘 모르겠다. KH가 어떻게 된거 같은데, 네가 한번 전화해서 들어봐라."
JH 동생 전화번호를 받아 전화해 보았다. 
"아버지 모시고 울진 갔다가 다시 올라가는 중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다시 전화드릴텐데, 형님이 돌아가셨어요. 사인을 밝히기 위해 대구 국과수로 시신은 옮겨졌고, 아마도 내일 쯤 결과가 나올 거고 장례 일정이 잡힐 것 같습니다."
친구가 세상을 떴다. 망할 놈... 

금요일
부고 문자가 도착했다. 시흥에 있는 장례식장에서 장례절차를 다루고, 이후 천안 추모 공원에서 화장을 한다고 밝혔다. 다시 몇몇 친구들에게 문자를 전달하고 친구 최와 통화해 저녁에 함께 장례식장에 가기로 했다. 회사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옷을 갈아 입었다. 밤을 셀 거냐는 아내의 질문에, 외롭게 살던 친구놈인데, 마지막 가는 길은 배웅해야겠다고 답했다. 
장례식장에 들어서니 몇 안되는 친구들이 모두 와 있다. 다시 한번 죽은 친구의 마지막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KH는 자신이 타고 다니던 차를 몰고 울진까지 내려갔나보다. 주로 천안에서 일을 해왔던 친구인데, 직장이 불안해서 일이 없을 때는 그냥 쉬는 바람에 일정한 수입을 가지지 못했다. 그런 친구가 울진에는 왜 갔는지 알 수가 없다. 울진 바닷가에 그가 신었던 신발과 안경이 가지런히 놓여져 있었다. 국과수 부검에서도 폐에 물이 찼을뿐 별다른 외상은 없다고 한다. 스스로 바다에 들어갔던 것이다. 그날 날씨는 최저 기온이 10도가 되지 않는 쌀쌀한 날씨였다. 공기부터 차가웠는데, 그를 컴컴하고 찬 바다속으로 이끌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동생 JH가 형이 타고 다니던 차에서 즉석 복권 2장을 발견했다고 한다. 차에서 먹고 잤는지, 차 안은 무척 지저분했다고 한다. 마땅한 잠자리도 없었던 거다. 
장례식 친구들 대부분 한 달 전쯤에 KH로부터 전화가 왔었다고 한다. 그냥 안부나 묻는 줄 알았던 그 전화는 실상 그와의 마지막 통화였고, 그가 마지막 가는 길로 가기 위한 정리 작업 중 하나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그는 희망을 잃고 생을 정리해 갔던 것일까. 영정 사진을 쓸만한 사진도 없어서 색이 바래고 흐려진 운전면허증 사진을 가져다가 영정 사진으로 썼단다. 동생 JH가 친구들에게 함께 찍은 사진이 없는지 미리 물었지만 아무도 그와 찍은 사진을 가지고 있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사실 KH는 사진 찍는 걸 싫어했다. 내가 한창 DSLR에 빠져서 가지고 다니면서 사진을 찍을 때도 그는 사진 찍는 걸 싫어하고 피하기까지 했다. 그런 그가 사진을 남기지 않았다는 게 참 마음이 아프다. 


토요일. 
운구가 나가는 날이다. 같이 밤을 센 사람 중 친구는 남아 있지 않았다. 함께 운구를 들어줄 이가 없어 나와 상주인 동생 JH와 장례버스 기사, 그리고 기사가 섭외한 동료 이렇게 넷이서 운구를 날라야 했다. 끝까지 외롭고 외롭다. 이런 녀석에게는 진눈깨비가 딱이다. 새벽부터 진눈깨비가 하늘에 가득하더니 그나마 장례식장을 나갈 때는 많이 옅어졌다. 45인승 버스에는 아버님, 동생, 동생의 여자친구만 동승했다. 그이의 삶만큼 단촐하다. 그를 화장하기로 한 곳은 천안 추모 공원 화장장. 천안 추모 공원에서 일련의 마지막 절차를 치르다 보니 여기서 장례를 치렀으면 돈을 많이 절감할 수 있었을 것 같다며 JH가 말한다. 살아 있는 사람은 살아야 하는 법이지. 가난한 살림에 아버지를 모시고 사는 JH에게 형님은 종종 돈을 보내달라는 대책없는 형이었다. 그가 살아가야 할 세상 또한 힘겹다. 아버님이 새벽부터 속이 아프다고 하신다. 활명수와 청심환을 드시게 했지만 그 타는 속을 약으로 어떻게 할 수는 없는 것이니. 큰 아들을 먼저 보내는 마음이 얼마나 아플까. 화장을 마치고 다시 시흥 장례식장에 오자마자 병원으로 스스로 걸어가셨다. 

난 그렇게 인사드리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진눈깨비가 서울의 첫눈이었단다. 첫눈 오면 녀석이 그리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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