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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으로 간 구상나무

[서울둘레길6-2]비야 비야 와라. 많이 많이 와라. 본문

생활 여행자/걷고 또 걷고2017

[서울둘레길6-2]비야 비야 와라. 많이 많이 와라.

구상나무 구상나무 2017.07.03 18:22

온 동네에 퍼지는 음울한 냄새는 머리를 아프게 했다. 요즘에는 미세먼지가 환경의 주범이었지만, 내 어릴적에는 안양천과 그 지류들에서 나는 악취를 삶의 당연한 일부로 안고 살았다. 알 수 없는 거품과 기름띠가 범벅이던 그 하천. 한여름 폭우로 안양천과 그 지류인 목감천이 범람하면 물난리를 피해 가재도구를 높은 지대로 옮겨야 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많은 이들이 한강과 안양천, 그 지류들을 찾는다. 안양천 상류 지역에서는 1급수에서만 산다는 버들치도 나온단다. 속절없는 개발의 흐름 속에서 버려졌던 강물이 조금씩 제모습을 찾아간다. 이번에 걸었던 서울둘레길 6코스는 안양천에서 한강으로 이어지는 길이었다. 


2017년 6월 25일.

서울 둘레길 6-2코스의 여정: 구일역-오금교-도림천 합수부(신정교)-오목교-목동교-양화교 폭포-안양천 합수부(한강)-황금내근린공원(가양동)-가양역




 안양천 둑방길은 대부분 흙길로 이루어져 있다.


 싱그러운 초록빛 사이로 잘 가꾸어 놓은 화단도 잘 조성되어 있다. 


 대부분의 길이 나무그늘 아래로 곧게 뻗어 있다.



 성미 급한 단풍들이 벌써 얼굴을 내민다.



 오랜 가뭄으로 송충이들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나무 하나는 절반 가까이 나뭇잎이 뜯어먹혔다.


날이 무척 가물었다. 방송에서도 가뭄으로 인해 해충들이 기승을 부린다는 뉴스를 전했다.(가뭄에 또 해충 기승…대형 애벌레 득실 / YTN 사이언스) 안양천 주변에서도 몇몇 나무들은 뉴스 기사에 나온 밤나무처럼 잎사귀를 죄다 갉아먹은 애벌레들로 가득차 있었다. 위의 사진은 그나마 양호한 나뭇잎을 건진 것인데, 대개 나뭇잎 하나에 2~3마리의 애벌레들이 열심히 잎을 갉아먹고 있었다. 


이날 일기예보에서는 다행히 비소식을 전해주었다. 우리는 비를 맞으며 걷는다는 것에 불편함보다는 기쁨이 더 컸다. 비좀 맞으며 걷자는 일념으로 걸으면서 아이와 아이 엄마가 주문까지 만들었다. 


"비야 비야 내려라, 많이 많이 내려라."


우리의 걷기 여행은 이렇게 기우제가 되었다. 손수건을 나풀거리면서 하늘을 향해 흔들었고, 아이는 우리가 주문 외우기를 멈추면 다시 주문 외우기를 재촉했다. 물론 누구보다 열심히 주문을 외운 것은 아이였다. 아이의 바람이 하늘에 닿은 것일까, 비가 조금씩 내리기 시작했다. 오후 늦게나 온다고 예보되던 비였기에 조금 뜻밖이었고, 우리는 그것이 아이의 바람이 하늘에 닿은 것이라며 아이에게 축하해 주었다. 


준비한 우비를 갖추어 입고 길을 걸었지만 비는 생각보다 가늘었고 금새 그치고 말았다. 실망한 아이는 계속해서 주문을 외우고 가늘어진 비를 우비에 있던 모자로 받아서 모으기도 하면서 비를 간절히 기다렸다. 하지만, 우리가 걷는 동안에는 비다운 비는 내리지 않았다. 비는 우리가 둘레길을 벗어나고 식당에 들어섰을 때 쏟아지기 시작했으니 이걸 행운이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아쉬워해야 할지 모르겠다.  


익숙하고 친절한 서울둘레길 안내판


안양천 둘레길 코스는 둑방길로만 연결되긴 어렵다. 간간히 고수부지 길로 내려가는데 그또한 지루함을 덜어주니 반갑다.


 다양한 체육 시설이 곳곳에 마련되어 있다.




 테이크아웃 햄버거와 미리 준비한 과일로 점심을 채웠다.


안양천의 옛 이름은 '대천(大川)'이라고 한다. 안양천의 물이 삼성산에 위치한 안양사(安養寺)에서 발원해 붙여진 이름이다.[각주:1]  1910년 경의 안양천의 모습은 상당히 굴곡이 있는 하천이었다. 그러다가 도시 개발에 따른 하천 정비 사업으로 지금의 비교적 곧바로 흐르는 하천의 모습이 되었다고 한다. 

굴곡이 있는 사행하천에 비해 흐름이 단순해진 하천은 그만큼 홍수에 취약하다. 1977년 7월 8일 발생한 폭우로 안양천 대홍수가 발생했고, 인명 피해만 총 677명으로 이중 사망 208명 실종 49명이 집계됐다. 이후 안양천에 대한 본격적인 정비가 시작되었으나 맑고 깨끗한 안양천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닌 범람으로 인한 홍수 피해를 예방하기 위한 것이 주 목적이었다. 그러면서 하천의 둑방을 시멘트로 덮고 천변의 모래톱이나 갈대 숲을 없애버리면서 강은 점점 더 죽어가고 말았다. 

게다가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도시 개발과 공장 지대가 급속도로 늘어나면서 생활 하수와 공장 폐수가 무분별하게 쏟아져들어왔고 안양천은 어떤 생물도 살 수 없는 최악의 하천이 되고 말았다. 당시의 안양천의 생물학적 산소요구량(BOD)가 136mg/L이 나왔는데, 이정도에서는 어떤 생물도 살 수가 없는 수치였다. 


자연형 하천 조성 사업이 시작된 것이 2001년이니 그리 오래된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사업은 꽤 효과를 보고 있다. 징검다리 설치, V자 여울, 습지 조성 등 자연과 같은 흐름과 물살을 만들어 내기 위한 노력이 다시 물고기와 철새들이 노니는 하천으로 만들고 있고, 사람들이 몸과 마음을 편하게 쉴 수 있는 공간으로 탈바꿈하고 있는 것이다. 




주문을 외우는 아이와 아이 엄마


 오후 늦게나 온다던 비가 살짝 왔다.


이내 그쳐버리고 다시 후텁지근한 날씨로...




비가 와서 강물이 범람하는 것은 자연의 이치이다. 범람하는 강 주변은 그로 인해 옥토를 형성했고, 사람들은 그 주변에 모여서 마을을 이루고 땅을 가꾸어 풍성한 곡식을 거두며 살았다. 세계 문명의 시작이 모두 강 주변에서 시작된 이유이기도 하다. 강이 범람하지 않았다면 이루어 낼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이제 인간은 강을 관리한다. 치수라는 이름으로 더이상 강은 범람하지 않는다. 도시는 더이상 기름진 땅을 필요로 하지 않았고, 강은 가정의 생활 하수를 받아야 하며 공장의 폐수를 흘려 보내는 장치가 되어 버렸다. 그렇게 강은 더러움과 치욕을 견뎌야 하면서도 범람할 수도 없이 길들여지면서 병들었다. 


안양천의 개발 역사를 보면 어떤 생물도 살 수 없는 물이 되어 버린 일도 있었다. 강을 가두고 흐름을 막아 인간이 인공적으로 만든 쓰레기를 흘려보내던 시절이다. 강이 정화할 수 있는 양 이상의 유기물들이 강으로 쏟아져 들어갔다. 인공적으로 변한 강 주변 시설도 강의 정화 능력을 현격히 떨어뜨렸다. 인간에 의해 범람을 허락받지 못한 자연 하천은 그렇게 썩어갔던 것이다. 












안양천은 이제 사람이 거닐 수 있고, 자연이 되살아나는 하천이 되었다. 안양천의 자전거도로는 이제 자전거도로의 경부선으로 불릴만큼 통행량도 많아졌다. 자전거도로와 분리되어 조성된 서울둘레길 안양천 코스는 초급코스 중의 초급코스로 걸을 수만 있다면, 아니 휠체어를 타야 하는 이들도 풍광을 즐기며 산책을 할 수 있는 곳이다. 이제 안양천을 달리거나 걷는 것은 우리 시대의 작은 행복이 되었다. 




  1. 출처: 안양천의 역사와 문화(이종만, 한국하천협회지(2007)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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