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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상나무 아래에서/밥과 꿈과 사람

살(live)만한 집, 살(buy)만한 집

구상나무 구상나무 2011.03.21 18:04

최근 아이가 태어나고 전세 계약 만료일도 다가와 이사를 하기로 결정했다. 막상 집을 구하자니, 턱없이 높아진 전세금으로 집을 구하는 것이 어려웠고 그마저도 물량이 없어 부동산 시장이 얼어 있다는 말이 실감났다. 결국 처음 예상했던 금액보다 더 많은 금액에 가까스로 전세를 구할 수 있었다. 물론 초과된 금액은 빚을 지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재미있는 계산을 해 보았다. 수도권에서 전세 2억짜리 아파트에서 산다고 했을 때, 하루 숙박비를 계산하면 얼마가 나올까? 은행 정기예금 금리를 연 4%로 생각하고, 2억원을 은행에 넣어두면 받을 수 있는 이자 소득은 하루 18,630원 정도가 된다. 물론 이자에 대한 세금 15% 제외한 금액이다. 따라서 2억 원의 전셋집에서 살 경우 2만 원 정도를 매일 숙박비로 지불하는 셈이다. 물론 여타 생활비용(가스, 전기, 수도 등)을 제외하고 말이다.

우리나라 가구당 평균 자산은 약 2억7천만 원. 그중 부동산은 2억6백만 원으로 약 75.8%정도다. 게다가 가게 부채가 약 4천2백만 원인데, ‘빚이 없다면 부자’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집을 사거나 전세로 들어가는 과정에서 많은 가구가 빚을 안고 살고 있다. 우리나라 4인 가족의 한달 평균 수입이 284만원으로 1년 연봉으로 3400만원 정도다. 1년 동안 번 돈 모두를 한푼도 쓰지 않아도 부채를 갚지 못한다. 가계 부채 중 부동산이 차지하고 있는 비중이 사상 최대치를 경신하고 있는 요즘, 뛰는 물가 위에서 날고 있는 전세값의 고공 행진이 사람들 가슴을 억누르고 있다. 과연 우리의 주거권은 안녕할까?
 

지금의 전세값 고공 행진의 원인에 대해 신규 주택 공급의 부족과 신혼부부 등 신규 가계의 자연 증가 등이 맞물려 벌어지는 현상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많은 가계가 불안한 주택 가격의 변동으로 집을 구입하기보다 원금 보존이 가능한 전세 수요로 몰리고 있는 점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더욱 설득력 있다. 집값 상승의 요인이 없지는 않더라도 대세는 여전히 관망에 방점을 두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이같은 흐름은 집을 주거의 공간, 문화의 공간이 아닌 재산적 가치로만 보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다. 물론 현대 사회에서 집은 단순한 주거 공간이 아닌 경제적 가치를 분명히 가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우리나라는 더욱 특수한 부동산 역사를 가지고 있어, 집의 경제적 가치에 대중이 몰입하고 있는 경향이 매우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전세 가격의 고공 행진, 부동산 가격의 불안 혹은 급상승 등은 주거의 본래적 의미를 퇴색시키고 말았다.
 

일반적으로 주거권이라고 하면 가장 가난한 사람들만의 것으로 인식되기 쉽다. 예를 들어 철거민이나 홈리스, 저소득 임차가구 등의 권리는 당연히 가장 우선시 되어야 하는 과제임에는 분명하다. 하지만, 일반 중산층이나 일부 고소득 임차가구 등의 주거권도 보호되어야 할 기본권이다.
 

여전히 강제 철거가 아무렇지도 않게 자행되고 있는 우리나라 현실에 비추어 볼 때 분명 중산층의 주거권 문제는 인권적인 측면에서 그다지 시급한 문제로 취급되지 않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보다 광범위한 접근을 통해 주거권의 문제를 인권의 문제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다양한 인권 활동이 필요하다.
 

1996년에 제2차 세계 주거 회의(Habitat Ⅱ)에서 채택된 의제는 주거권과 관련된 가장 포괄적이고 중요한 국제 문건이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의 주거권과 관련된 국제적인 합의들을 종합하고, 또 주거권의 실현과 관련한 주거권의 구체적인 여러 측면들을 검토하고, 실천의 지침을 공동으로 작성한 것이다. 여기에서는 국가가 적어도 다음과 같은 정책을 실시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적절한 주거를 누릴 수 없는 사람들을 포함하여, 주택을 거주 가능하고, 경제적으로 부담가능하면서 이용 가능하도록 하기 위해 다른 여러 가지 중에서 특히 다음과 같은 정책을 채택하여야 한다.

① 적절한 규제 장치와 시장 경제에 기반한 유인책을 통해 경제적으로 부담할 수 있는 주택의 공급을 늘인다.

② 가난한 사람에 대한 보조금과 임대료 및 다른 형태의 주택자금 지원을 통해 부담 능력을 향상시킨다.

③ 지역 사회에 기반한 협동 주택과 비영리 임대주택, 자가 주택 사업을 지원한다.

④ 집 없는 사람들과 그밖의 취약한 집단에 대한 지원을 확대한다.

⑤ 주택과 지역 사회 개발을 위해 재정과 공공 및 민간 부문의 다양한 자원들을 혁신적으로 활용한다.

⑥ 경제적으로 부담할 수 있는 임대주택과 자가 주택에 대한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시장 경제에 기반을 둔 각종 유인책을 실시하여 민간부문을 활성화시킨다.

⑦ 일자리, 재화와 서비스, 편의시설을 쉽게 구하고 이용할 수 있는 지속가능한 공간 개발 형태와 교통체계를 장려한다.

⑧ 집 없는 사람과 부적절한 주택의 정도를 파악하는 것을 비롯하여 주거 조건에 대한 평가와 효과적인 감시를 하고, 취약한 인구 집단에 대한 상담을 통해서 각종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적절한 주택 정책을 채택하고 공식화하며 효과적인 계획과 전략을 수행하여야 한다.


 

위의 정책적 권고들은 주거권 보장을 위한 주요 원칙으로 모든 계층에게 적용될 수 있는 내용들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공간에 대한 가치를 결정하는 것은 경제적인 부분도 있지만 문화적인 부분도 분명 존재한다. 주거가 가지는 가치를 재평가하는 데에 있어 국가가 해야 할 역할은 참으로 막중하다. 우리 사회가 주거권의 문제를 경제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인권적인 측면에서 접근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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