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숲으로 간 구상나무

백두대간 4 - 아름다운 동행, 비바람을 뚫다 본문

생활 여행자/백두대간 이야기

백두대간 4 - 아름다운 동행, 비바람을 뚫다

구상나무 구상나무 2008.07.09 22:15




 아름다운 동행, 비바람을 뚫다




- 백두대간 지리산에서 덕유산까지 9박10일의 이야기 4

- 성삼재휴게소 >> 만복대 >> 정령치휴게소 >> 고기삼거리(11.2km)
- 2008.06.28




친구 기석은 새벽 2시가 좀 넘은 시간에 찾아왔다. 이번 종주 구간 중 1박 2일 동안 함께 동행하기로 했다. 지금까지 동행없이 가도 많은 사람들이 오고가는 구간이라 심심하지 않지만, 이제부터가 외로운 여행이 될 수밖에 없다. 지리산 종주 코스를 벗어나면 이런 장마철에 산을 찾아올 이가 드물기 때문이다. 물론
내면과의 동행이라 여기겠다는 다짐을 했지만, 막상 그것은 험난한 과정일 수밖에 없다.


혼자 가면 또 누군가를 만나지 않겠냐고 하는 사람도 있다. 그렇다면 또 즐거운 일이다. 그런 기대감이 여행을 즐겁게 한다. 그러나 산중 여행이라 그것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러기 때문에 백두대간을 함께 할 수 있는 동행은 절실하다. 친구는 약해지고 있던 나에게 큰 힘이 되어 주었다. ‘나’보다는 ‘우리’가 더 강하다.


우리는 잠깐 선잠을 잤다. 2시간 정도의 옅은 잠이었다. 이날 기상예보는 중부지방에 돌풍을 동반한 40~100mm의 비가 내린다고 알려왔다. 4시 반에 일어난 우리는 터미널로 나갔다. 터미널에서 콩나물국밥으로 식사를 하고 김밥을 2줄 준비했다. 6시 성삼재로 오르는 버스에 올랐다.








 

성삼재로 올라가는 길부터 심상치 않은 구름들이 산등성이를 올라가는 게 보였다. 가는 비가 뿌려지는 가운데 우리는 우의를 꺼내 입었다. 버스가 올라온 861번 지방도의 진행방향으로 좀더 나아가면 고리봉-만복대 방향 길이 좁게 나있다. 다시 능선에 올라서 고리봉으로 오르는 길, 기석은 인터넷을 통해 이 구간은 헌옷을 입어야 한다는 글을 봤다고 말했다. 길이 험한가 보다 싶었지만, 실제로 길을 걷다보니 왜 헌옷을 입으라고 했는지 실감이 났다. 숱한 잡목들이 살을 스쳤고, 가방을 잡아끌었으며, 발을 걸어왔다. 우의를 걸쳐 입어도, 신발 안으로 스며드는 빗물은 어쩔 수 없었다. 반바지를 입었기 때문에 빗물은 무릎과 정강이를 타고 발목 안부터 젖어들었다. 산행을 하고 불과 2시간도 안되어 신발은 푹 젖어버렸다. 등산화 자체는 방수처리가 잘 되어 있지만, 다리를 타고 안으로 스며드는 빗물은 어쩔 수가 없다. 신발 안까지 젖어버리니 온몸이 젖어든 듯하다.


묘봉치 전까지 길을 덮어버릴 정도로 무수히 자란 잡목들 때문에 앞으로 나아가기가 쉽지 않다. 편한 복장도 아닌데 우의를 입고 길을 뚫자니 여간 불편한 일이 아니다. 게다가 온몸은 젖어버렸고 신발도 질퍽거렸다. 발이 젖어버리면 물집이 쉽게 잡히고, 발바닥 살이 찝혀서 걸음걸이가 힘들다. 총체적인 난국이다. 하필 친구가 도와주러 내려온 마당에 이런 험한 일을 당하니 도움을 청한 나로서는 미안하기만 하다.


묘봉치를 넘어가면 그나마 거친 잡목들의 방해는 벗어날 수 있다. 잘 만들어진 능선길이 만복대까지 만들어져 있다. 하지만 여기부터는 바람의 본격적인 방해가 시작됐다. 이전까지는 잡목과 풀들이 바람을 막아주었지만 묘봉치에서 만복대를 오르는 구간은 바람을 막아줄만한 것이 없다. 가을이면 억새가 우거져 장관을 이룬다고 하지만 6월이라 그만한 억새들은 어디에도 없다. 무거운 배낭을 메고서도 바람에 휘청거린다. 예전 설악산에서 만난 바람만큼은 아니지만, 엄청난 돌풍이 비와 섞여서 귀청을 때렸다. 한걸음 내딛는 것도 쉽지 않았다.


날씨만 좋았다면 만복대에서 쉬면서 준비한 맥주도 한잔 했을 것이다. 정상에 오를수록 더욱 거세게 몰아지는 비바람에 곁눈질로만 만복대와 인사하고 곧장 내리막길로 내려섰다. 다시 잡목숲을 지나니 바람은 잦아들었다.


만복대에서 내려서 정령치 휴게소에 들렸을 때는 몸이 말이 아니었다. 당연히 정령치 휴게소가 열려 있을 거라고 판단한 우리는 휴게소로 들어가려 했으나 모든 문이 잠겨 있었고 공사중이라는 팻말이 붙어 있었다. 아무도 없는 휴게소의 바깥 어디에도 비바람을 피할 곳이 없었다. 이곳에서 대충 싸온 맥주와 김밥으로 점심을 때워야 하는 판에 난감하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비바람이 몰아치는 바깥에서 먹을 수도 없고, 쫄쫄 굶으면서 몇시간을 다시 산을 넘어야 하는 것도 쉽지 않다.


다행히 공사 준비를 위해 나와 있던 휴게소 소장님이 우리를 도와주었다. 공사를 위해 임시로 설치한 컨테이너 박스를 빌려 준 것이다. 온몸이 흠뻑 젖어 물에 빠진 생쥐꼴을 하고 있는 우리 모습은 정말 가관이었다. 소장님은 이런 비바람에 산을 탈 사람이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며 혀를 내둘렀다. 그리고 친절하게 커피도 손수 타주시면서 컨테이너 박스 안에서 충분히 쉬었다가 가란다. 우리는 거듭 고개 숙여 감사인사를 드렸다. 공사도구로 어지럽던 박스 안이었지만 비바람을 피하고 잠시라도 휴식을 취할 수 있어 정말 다행이었다. 맥주와 김밥으로 간단히 허기를 채운 우리는 다시 단단히 차려입고 길을 나섰다.


정령치 휴게소를 떠나 큰고리봉까지는 급한 오르막길이 이어진다. 큰고리봉에서는 철쭉으로 유명한 바래봉능선으로 갈라지는 길이 나온다. 여기서 대간은 고기리 마을 방향으로 뚝 떨어진다. 내리막길은 더욱 미끄러워 서두를 수가 없이 더디기만 했다. 짙은 구름 속에서 어쩔 줄 모르고 방황하는 나그네들이었다. 비바람은 좀처럼 멈추지 않았다. 열심히 걸어 온몸이 열이 올랐지만 비바람 때문에 금방 식었다. 우리는 오늘의 목적지를 수정할 필요를 느꼈다. 이렇게 온몸이 젖어 계속 간다는 것은 무리수라는 판단에서였다. 당초 목적지였던 수정봉을 포기하고 우선 고기삼거리의 민박집으로 들어가 비를 피하기로 했다.


고기리 삼거리에 내려서서 가까운 민박집-약촌산장-을 찾아들어가니, 이미 등산객 한팀이 식사를 하고 있었다.


“어디서 왔어요?”

“네, 성삼재에서 출발했어요.”

“허, 우리도 거기서 왔는데, 늦게 출발했나봐요.”

“네, 7시 쯤 출발했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반가운 인사가 매우 살갑게 들렸다. 우리만 산을 탔으려니 생각했지만 이미 우리 앞으로 간 사람들이 꽤 있었던 것이다. 이런 궂은 날씨에 함께 산을 탄 사람이 있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큰 위안이 되곤 한다. 같이 역경을 이겨냈다는 동질감이다.


방으로 들어선 우리는 먼저 푹 젖은 신발과 옷과 가방을 말리는 데 중점을 두었다. 내일도 산을 타야 한다면 최대한 잘 말려야 하기 때문이다. 방은 온통 젖은 옷가지와 물건들로 아수라장이 되었다. 옷걸이에 걸어놓은 배낭에서는 물이 뚝뚝 떨어져 밑에 수건을 받쳐야 했다. 신발은 깔창을 분리해 흙만 씻어내고, 방안 한 구석에 비닐을 깔아 올려놓았다. 대충 정리하는 데도 버겁기만 하다.




 

민박집 주인에게 부탁해 늦은 점심을 청했다. 식사와 함께 반주를 청해 친구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다른 친구들 얘기부터 다시 시작한 연애 이야기, 그리고 미래의 꿈에 대한 이야기들이 오갔다.


“요즘 시골에 땅보러 다닌다.”


뜬금없는 소리에 의아했다. 이 친구가 투기를 하려는 건가 싶었기 때문이다.


“내 꿈은 이런 산골이나 경치 좋은 곳에 작은 집 하나 짓고, 가끔 숙박 손님들도 받아 살아가는 거야.”


친구의 꿈은 어쩌면 많은 이들이 꿈꾸는 소박한 꿈이 아닐까. 지금부터 돈을 잘 모아보겠다고 한다. 지금은 그저 경치 좋은 곳에 가끔 여행 삼아 가면서 어디에 집을 지을까 고민하는 정도다. 보통 사람들이 땅 보러 다닌다면 시세나 투자가치 등을 따지는 것일 텐데, 그에게 그런 것은 아직 안중에 없다. 즉 땅보러 다닌다는 말의 의미는 여행 삼아 다니는 산골마을의 경치를 눈여겨본다는 말이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로 산골마을의 시간은 잘도 흘러갔다. 활짝 열린 미닫이 문 너머로 비는 추적추적 계속 내렸다. 바람은 그세 많이 잦았나 보다. 서서히 어둠이 내려앉는 산골마을에서 멀리 개짖는 소리가 들린다. 우리의 밤은 그렇게 깊어갔다.




(다음에 계속)




0 Comments
댓글쓰기 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