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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으로 간 구상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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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상나무 아래에서/일상의 발견

한 고개를 넘고

구상나무 구상나무 2011.01.21 23:45


무사히 제출했다, 라는 말이 맞는지는 모르겠다. 물론 제출하는 데까지는 성공했다. 이제 내 손을 떠난 책이니 더이상의 미련도 괜한 정신 낭비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기는 필요하다. 과연 처음에 가졌던 초심이 잘 반영된 책일까. 책을  생각할 때 가졌던 그 마음들과 생각들과 의지들이 세상에 나온 책들에 잘 반영되어 있을까.

어디나 어려움은 있다. 천재적인 저자이지만 나태함은 어쩔 수 없고, 능력은 뛰어나지만 책임감이 없는 디자이너도 어쩔 수 없다. 실적만 요구할 뿐 비전을 이해하지 못하는 회사도 어디나 비슷하다. 예술적 투혼은 있어도 앞뒤로 꽉막힌 삽화가는 또 어떤가. 정책결정권자들에게 이상은 있을지 모르겠지만 인간에 대한 예의는 없어 보인다. 편집자? 어디서나 여기저기 치이기 마련이다.  그나마 편집자가 없다면 이런 책은 나올 수가 없다. 모든 이해당사자들의 입장을 조율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런 과정에서 책은 탄생하기 마련이다.

편집자는 이처럼 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다. 저자는 물론, 디자이너, 삽화가, 제작 관계자, 인쇄기장, 제본 관계자 그리고 마지막 독자까지. 여기저기서 삐걱거리며 책을 만들어간다. 편집자는 그 모든 관계에서 평형을 유지하고, 서로의 이해관계를 조정해야 한다.

이러한 조정은 곧 책을 만드는 과정의 하나하나에 초점을 맞추는 과정이다. 예전의 교과서가 저자와 학습자가 만나는 공간이라고 했다면, 최근의 교과서는 저자뿐만 아니라 다양한 관계자들이 학습자와 대면하게 하는 책이다. 위에서 말한 모든 사람들이 최근 교과서의 주요 참여자인 셈이다. 따라서 좋은 교과서가 나오기 위해서는 다양한 관계자들이 저마다의 몫을 충분히 할 수 있어야 하고, 각각의 참여자들이 정확한 지침을 가지고 구체적인 목표를 향해 작업을 했을 때 좋은 교과서가 나올 수 있다. 여기에 편집자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이유가 있다.


교과서 외의 학습지나 교재가 개인이 스스로 학습하는 것을 지향하고 있다면, 교과서는 철저하게 학습자와 학습자, 학습자와 교사 사이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나아가 예전의 교육과정이 교사-학습자 사이의 관계를 중요시 한데 비해 지금의 교육 과정은 학습자-학습자 사이의 소통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 모둠 학습이나 다양한 토론 학습 등을 제시하는 이유다. 물론 이것이 지금의 교육현장의 현실에 비하면 너무 이상적이라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우리의 교육이 나아가야 할 길이기도 하고, 현재 사회가 일방적 교육이 아닌 다자간 소통을 중요하게 여기는 만큼 당연한 지향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교육 현장의 흐름이 교과서에 투영되기 위해서는 편집자의 시대 인식과 현실 인식이 날카로워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편집자의 역할과 임무, 그리고 필요한 능력은 매우 중요해졌지만, 편집자 풀은 대단히 취약해지고 있다. 교과서 시장 역시 정부는 시장논리에 따르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고, 게다가 수많은 업체들이 뛰어들어 나눌 수 있는 파이가 점점 적어지고 있고, 많은 야근과 집중적이고 고단한 업무, 사람 관계의 어려움, 무엇보다 적은 임금 등으로 이 업계로 들어오려는 신규 인력은 점차 줄어들고 있는 현실이다.

만만치 않은 변화의 큰 흐름을 보고 있다. 게다가 저 멀리 E-book이 열대성 저기압골을 형성하면서 점차 그 세력을 확대하고 있는 것이 보인다. 지금도 따라가기가 벅찬데, 저 쓰나미처럼 몰아닥칠 폭풍우는 어떻게 견뎌낼 수 있을까 하는 걱정도 든다.

그러나 편집자는 성장하고 있다. 성장은 목표나 희망은 되지 못하겠지만 그 자체가 소중한 자산이 된다. 특별하지 않은 평범한 사람들이 가진 가장 강력한 무기가 바로 이 성장이다. 편집자는 한권의 책에서 자신의 성장판과 나이테를 발견해야 한다. 그럴 때 편집자로서의 존재의 이유가 발견될 수 있을 것이다.

교과서가 앞으로 어떻게 변화할까. 이북의 흐름이 교과서 시장에 어떤 식으로 영향을 미칠까. 다양한 질문과 기대감들이 올해를 채울 것이다. 올해는 그 질문들에 답하는 것이 중요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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