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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으로 간 구상나무

백두대간을 달린 사람들 본문

생활 여행자/백두대간 이야기

백두대간을 달린 사람들

구상나무 구상나무 2008.07.05 13:05
 

** 아래 글은 지난 2007년 3월 8일에 네이버 블로그에 올렸던 글을 옮겨 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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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을 완주한 이우학교 학생들.

2006년 11월 12일은 이우학교 56명의 학생들에게는 특별한 날이었을 것이다. 바로 2005년 3월부터 시작한 백두대간의 마지막 구간을 마친 날이기 때문이다. 2005년 3월부터 40여개 구간으로 나누어 매달 격주로 산을 찾아가는 노력 끝에 이루어낸 성과다.


이 결과는 쉽게 얻어진 것이 아니었다. 백두대간 종주는 어른들도 어려운 일이다. 게다가 단체 산행이라 탈이 없지도 않았다. 경북 문경 조령산 삼두봉을 지날 때는 폭설로 중학생과 여학생들이 조난을 당할 뻔도 했다. 자칫 큰 사고가 날 뻔했지만, 서로가 서로를 격려하며 무사히 마칠 수 있었던 것이다.


백두대간 종주는 어린 학생들에게 어떤 경험이었을까. 끈기와 인내심, 그리고 성취감을 얻어낼 수 있지 않았을까. 백두대간 종주는, 아니 산행이라는 것 자체가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며 자신을 누르고 산에 더 다가서려는 끊임없는 도전이 필요한 싸움이다.


인쇄업을 하는 박용기(58) 씨는 백두대간 종주를 통해 인생의 새로운 전환을 이루어냈다. 박씨는 구제금융의 한파가 몰아치던 그 시절, 자살까지 고민했다고 한다. 그를 삶의 절망에서 구한 것은 산이었다. 그는 당시 위기에 처해 술과 절망으로 나날을 보내던 자신을 반성하고 하루도 빠짐없이 북한산과 청계산을 오르면서 삶의 의지를 불태웠다. 다행히 공장을 팔고 리스한 인쇄기도 외딴 곳에 옮겨 새로 일을 시작하며 서서히 삶의 본 궤도를 되찾아 지금에 이르고 있다.


삶이 정상 궤도로 올라서던 2002년, 그는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그해 6월부터 본격적으로 백두대간을 타기 시작한 그는, 매번의 구간 산행을 할 때마다 화두를 잡고 출발해 소형 녹음기를 들고 다니며 끊임없이 자신과 대화했다. 그리고 2년 2개월만인 2004년 8월1일 종주가 끝났다. 그리고 백두대간과 나눈 자신의 대화를 풀어 책으로 펴냈다. <백두대간에서 산이 되리라>(소나무)는 그의 고통과 좌절과 희망과 열정이 담겨 있는 기록이다.


이처럼 백두대간은 어린 학생들에게는 끈기와 인내를 배우는 학습터이면서 절망한 어른들에게는 자신을 돌아보고 삶을 향한 불씨를 되살리는 현장의 연장선이었다. 이런 백두대간을 처음 타본 사람은 누구였을까.


근대 이후 오랫동안 백두대간은 우리 민족의 생활 속에 있지 않았다. 아니 땅과 하늘은 그대로였지만 사람들은 백두대간을 알아보지 못했다. 숨쉬고 있는 공기처럼, 마시고 사는 물처럼 그 존재를 옆에 두고도 까맣게 잊고 살았다. 1980년대 이우형 선생에 의해 백두대간의 존재가 점차 구체화되면서 가장 먼저 백두대간을 종주한 이는 남성도 아닌 여성산악인 남난희씨였다.


남난희 씨는 1984년 1월 1일 부산 금정산에서 출발, 3월 16일 진부령에 도착할 때까지 76일간 백두대간을 단독으로 종주해 내며 대한민국의 산악인을 놀라게 했다. 이후 대학산악반을 중심으로 백두대간 종주팀이 줄지어 꾸려졌다. 90년대 중반부터는 일반인들도 가세하며 최근에는 기업 단위, 중고등학교까지 백두대간에 도전하고 있다. 그러나 그 중 남난희 씨를 기억하는 이는 얼마나 될까. 첫발자국의 고독과 어려움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하다.


“30kg 이상 나가는 배낭의 무게를 줄이기 위해 머리빗과 칫솔을 반토막만 준비하고 모든 구간의 식사를 빵으로만 했지요. 강원도로 접어든 첫날밤에는 혼자 있기 싫어 살을 에는 듯한 추위에도 불구하고 텐트 밖으로 나가 눈사람을 만들기 시작했어요. 그러나 갓 내린 눈이라 뭉쳐지지 않았어요. 그때 엄습해 오던 고독감이라니…. 그날은 울면서 꼬박 밤을 새웠지요. 육체와 정신적인 갈등 사이에 잠깐 미쳤었나 봐요. 너무너무 힘들었지만 마음놓고 쉬지도 못했지요. 나 자신 내가 아니었으니까요.” - 월간중앙 1999년 4월1일 인터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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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난희 씨는 당시의 기록을 <하얀 능선에 서며>라는 책으로 냈다. 이후에도 그의 끊임없는 도전은 계속 됐다. 1986년 네팔 히말라야 강가푸르나(7455m)를 여성 최초로 등반한 기록을 가지고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1991년 2월 25일 토왕성 빙폭등반을 11시간 50분만에 등반해 다시 한번 세상을 놀라게 했다.


이제 그는 지리산 골짜기에서 소박한 삶을 살고 있다. 가장 최근에 낸 그의 저서인 <낮은 산이 낫다>(2004 학고재)는 그의 소박한 자기성찰이 담겨 있다. 그는 이 책에서 그동안 산은 오로지 오르는 것만이 목적이었는데, 이제는 오르지 않고 그냥 바라만 보아도 좋은 편안한 산을 만났다고 한다.


“게다가 한 곳에 뿌리를 내리고 사는 나무들의 삶은 내겐 부러움의 대상이기도 하였다. 그때 나무들을 보면서 항상 방황하고 항상 떠돌아다녔던 내게 정착이라는 말의 의미가 새로이 다가왔다. 나무에도 체온이 있다는 것을 그 산행에서 처음 알게 되었다.”(<낮은 산이 낫다> 중에서)


백두대간을 종주한 시인도 있다. 이성부 시인이다. 그는 8년간에 걸쳐 백두대간을 종주했으며 백두대간에서 얻은 시심을 <지리산>(2001 창작과비평)과 <작은 산이 큰 산을 가린다>(2005 창비)에 담았다.


그는 ‘왜 산에 오르는가’라는 질문을 던지지 않았다고 한다. 산에 오르는 것이 무엇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냥 어렵게 올라가는 과정이 좋고, 그것들이 되풀이됨으로써 형언할 수 없는 만족감과 성취감을 느끼기 때문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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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산이 큰 산을 가린다>에 있는 시 ‘지팡이’가 그와 산을 이야기하고 있다.



나무 지팡이

-내가 걷는 백두대간 84

                                                 이성부



풀섶에 버려진 나무 지팡이 하나 쓸 만해서

집어들고 산을 내려간다

오랜만에 짚어보는 지팡이 모가지 잡은

내 왼손을 거쳐

땅 기운이 내 몸속으로 들어오는 것을 알겠다

언젠가 다른 산에서도 느껴 알아차렸던

그 편안한 가슴 트임 같은 것

내 손가락 발가락 끝 모세혈관까지

힘이 실려 도는 소리 같은 것

죽은 나무마저 땅과 사람을 잇는구나

저녁 하늘이 불그레하게 옆으로 드러누워

나도 너의 편이다라고 말씀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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