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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으로 간 구상나무

백두대간10 - 봄 찾으러 갔다가 구름에 쫓기다 본문

생활 여행자/백두대간 이야기

백두대간10 - 봄 찾으러 갔다가 구름에 쫓기다

구상나무 구상나무 2010.03.05 00:22

부제 : 백두대간 24구간 중 네번째 구간 후반부 : 백암봉-빼재 구간 종주
날짜 : 2010년 2월 27일





| 동행 : 두 사람 그리고 구름                                          

두 사람. 한 사람은 대학 동기이며 동종 업계에 종사하고 있는 친구. 또 다른 한 사람은 내 오랜 직장 상사. 한때 한 회사에서 한솥밥을 먹던 동료들이었다. 모두 출판편집자라는 명함을 가지고 있어서 종종 만나면 술 한잔 나눈다. 일복 터지는 직장 생활을 서로 위로하는 일이지만 알 수 없는 이유로 죽이 잘 맞는다. 이번에도 인연이 닿은 건지 셋이 함께 산행을 떠났다. 반은 내가 꼬신 것이고 반은 흥에 겨워 따라온 사람들. 그들에게 이번 산행은 즐거움과 힘겨움을 오가는 롤러코스트 같았을 것이다.

내 친구는 나와의 산행이 거의 20년 만이다. 대학교 1학년 때 지리산을 다녀온 후로 처음인 셈이다. 그는 오래전부터 겨울산에 한번 같이 가자고 졸라댔다. 재작년엔가 겨울 산행 장비를 다 마련했다며 빨리 산행 날짜 잡으라고 닥달을 했다. 그래서 다늦은 이번 겨울의 끄트머리에서 극적으로 산행에 합류한 것이다. 그는 산행을 통해 여유를 찾고 싶어 했다. 주말마저 정신없이 돌아가는 일상에 치여 살던 그에게 이번 산행이 작은 돌파구가 되었을까?

그리고 직장 상사 김차장님. 인연으로 따지면 벌써 10년 가까이 알고 지내는 셈이다. 한솥밥을 먹는다지만 직장 상사라는 어려움도 있다. 다만 드러내고 살면 불편한 것들은 바닥에 내려놓고 사는 것이 지혜다. 같은 사무실에 있으면서도 얼굴 못 보는 날도 있다. 딱히 보고 싶은 얼굴은 아닐지라도 못 보면 심심한 얼굴이다. 게다가 그의 자리는 모니터 세개로 완벽하게 쌓은 철옹성 같다.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는 것은 참을성인지 무심한 건지 헷갈린다. 다행히 이번 산행을 통해 똘똘 뭉쳐져 있던 자신을 살짝 풀어 헤칠 수 있었다고 한다. 그것 역시 여유라면 여유겠다.







오랜 세월을 가끔, 또는 자주 보았던 사람들이다. 비슷한 공간에서 종종 얼굴 마주하면 닮은 구석이 생긴다고 한다. 그러나 닮은 것은 시간 뿐. 우리에게 과거는 멋들어진 추억이 되었고, 현재는 물샐틈없는 빡빡한 일상이며, 미래는 가늠하기 힘든 불안이 지배하고 있다. 업계 사람이 아니면 알아 들을 수 없는 농담들로 서로를 위안하기도 하지만, 공공의 비밀을 이용하여 급소를 가격할 수도 있다. 전쟁 같은 일상을 뒤로 하고 산에 왔다. 산에서는 그런 일상들이 하나의 풍경에 지나지 않는다. 발 아래 구름이 있고, 그 구름 밑에 우리가 사는 세상이 있듯이, 우리는 저 험한 세상사를 벗어나 구름 위에서 노니는 재미에 취해 하루를 흠뻑 적실 수 있는 여유를 즐긴다.

우리 셋 외에 부지런히 우리를 뒤쫓던 동행이 있다.





"너는 이만한 운해 풍경을 본 적이 있니? 산에 많이 다녀봤으니 본적 있겠구나."
"아니, 나도 이런 운해는 처음이다."

향적봉에서 중봉에 이르는 동안 폭포수처럼 계곡으로 쏟아져 내리던 구름의 풍경을 잊을 수가 없다. 멀리 도도한 백두대간의 산맥들을 구름바다가 넘실거리며 조금씩 집어 삼켰고 멀리 있는 산들은 그속에 갇힌 외로운 섬이 되었다. 그때 누군가가 저 위에 뛰어내리면 푹신푹신해서 하나도 안다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리고 얼마 안 가서 우리는 구름 속에 갇혔다.

송계삼거리에서 신풍령 방향으로 빠졌을 때부터 이미 발목까지 쫓아왔더랬다. 처음에는 그저 멋진 풍광이었던 구름이 슬슬 빗방울을 뺨에 긋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더니 점차 적지 않은 빗방울을 쏟아냈다. 빼재에 도착한 우리들은 대부분 흠뻑 젖어 있었고 엄습해 오는 정월대보름날의 밤공기에 온몸을 떨 수밖에 없었다.


- 雲 좋은 날 -
함께 간 이의 표현이다. 비구름에도 갇혀 보았으면서 여전히 향적봉과 중봉에서 만난 구름의 바다를 잊을 수 없었나 보다.








|| 8개의 봉우리와 3개의 고갯길을 지나다                                          

이번 백두대간 길은 전체 24구간 중 제 4구간의 뒷부분으로 도상 거리는 13.1km에 불과하다. 비록 무주리조트의 곤돌라를 타고 손쉽게 향적봉에 올랐지만, 이후 구간은 결코 녹녹치 않았다. 우리가 넘었던 봉우리만 8개이며 거쳐간 고갯길만 3개나 된다. 그만큼 오르내림의 부침이 심했던 구간이다.

봉우리 이름들은 다른 지방에서 보는 흔한 봉우리 이름과는 달랐다. 향적봉은 그렇다 쳐도 중봉, 귀봉, 못봉, 대봉, 빼봉 등의 외글자 이름 봉우리들은 매우 생소한 이름이다. 그나마 백암봉이나 갈매봉은 두글자 봉우리 이름이라 그런지 생소한 느낌이 덜하다.





지나온 고갯길 이름은 월음재와 횡경재, 그리고 마지막 기착지인 빼재(신풍령)이다. 이렇게 여러 봉우리와 고갯길을 지나오다 보니 쉽게 다리에 무리가 가기 마련. 사람들은 하나둘씩 말을 잃어갔다. 일행은 향적봉에서 송계삼거리까지 풍광에 심취해 신나게 걸었다. 그러나 막판 빼봉을 전후로 해서 추적추적 내리는 비 속에서 해가 진 산속을 무언가에 쫓기듯 휘적휘적 걸어야 했다. 

백두대간을 탄다고 하니 사람들은 왜 그렇게 힘들여 산을 오르려 하느냐고 묻곤 한다. 산을 타는 일은 자신의 육체적 한계와 대면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한계를 이겨내기 위해 정신력을 극한을 체험할 수밖에 없다. 평소 쓰지 않던 근육에서 젖먹던 힘을 끌어 내고, 숨이 턱 밑까지 차오르는 경험을 한다는 것은 매우 독특한 체험이다. 나아가 나약하고 겁많은 자신과 만나는 일이다. 짭쪼름한 땀방울이 볼을 타고 입안으로 들어오는 경험, 물론 권할 만한 경험은 아니다. 그러나 거기에 산행의 묘미가 있다. 스스로 찾아가는 땀의 의미는 그 무엇보다 소중하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다. 정화, 나를 깨끗이 하는 힘이 산에 있다. 정화 능력. 숲은 단순히 공기만 맑게 하는 것이 아니다. 그 속으로 들어간 사람의 몸과 마음까지 정화한다.

산의 봉우리들은 멀게 있다고 느껴져도 가다 보면 가깝다. 저기까지 언제 갈까 싶다가도 가다 보면 의외로 가깝다. 현대인들의 거리 감각은 사뭇 다르다. 개봉동에서 자전거 출퇴근을 한다고 하면 놀라는 사람들이 있다. 어떻게 그렇게 먼데서 오냐, 시간은 얼마나 걸리냐며 묻지만, 실제 거리 12.1km를 말하면 그렇게 가깝냐며 반문하고, 한시간 이내에 온다고 하면 내가 무척 속도를 내며 달리는 줄 안다. 도시민들의 거리는 이미 시간 거리로 판단되며 실제 거리 감각을 잃어버린지 오래다.

산은 그런 잃어버린 감각을 일깨운다. 자연의 소리, 바람의 방향, 동서남북의 방위, 가야할 길과 표지, 앞으로 걸어야 할 거리와 그에 소요되는 시간 등등을 온몸으로 체험한다. 내 몸의 오감을 이용해 직접 체험하는 것이다. 내가 느끼는 만큼 산도 나를 느낀다. 그냥 지나치던 바위 옆에서, 언제부턴가 앞발을 쫑끗 세우고 우리를 쳐다보고 있는 다람쥐도 그제서야 눈에 띄며, 발치에 치이는 오종종한 들꽃들도 나를 반기고, 산새들도 경계심을 풀고 내 주위에서 휘파람을 불러댄다. 멀리 까마득한 계곡에서부터 쓸고 올라오는 바람에는 온갖 산의 흔적들을 안고 달려 온다. 그 순간은 나도 자연이 되는 것이다.
 








||| 길에서 만난 봄 그리고 떠나는 겨울의 흔적                           




겨울이라고 하기에는 많이 따뜻했고, 봄이라고 하기에는 아직은 이른 날이었다. 길은 길고 길었던 지난 겨울의 흔적을 짙게 드리우고 있었다. 따뜻한 양지녘의 길들은 지난 겨울의 눈들이 녹아 진창을 만들었고, 응달진 곳은 눈이 얼어붙어 빙판길을 이루었다. 준비해 간 아이젠을 차는 것도 번거롭고 벗고 다닐려니 아슬아슬했다.

산행 초반에는 날이 참 좋았다. 혹시나 해서 두껍게 껴입었던 옷들을 벗어서 배낭에 넣었다. 구름은 저 밑에 깔려 있었고, 햇살은 완연한 봄기운을 전달해 주었다. 그러나 후반으로 갈수록 뒤에서 쫓아오던 구름들이 기어이 우리를 뒤덮더니 결국은 비를 쏟아내고 말았다. 그 와중에 우리는 잠깐 길을 잃어버리기도 하고 누구는 무릎이 아파 쩔쩔 매기도 했다.





길이 눈길에 묻힐 수 있는 겨울이 특히 길을 잃기 쉽다. 앞서 가던 친구도 그만 눈이 뒤덮은 능선길에서 길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제대로 가고 있다고 생각해 가던 길의 끝에 있어야 할 길이 사라지고, 아득한 잡목숲만 앞을 가리고 있었다. 다시 왔던 길을 되돌아 나오는 도중 마침 우리와 같은 길로 산행을 하던  이의 도움으로 길을 찾을 수 있었다. 덕유산에서도 대간 길은 대간꾼이 아니면 잘 찾지 않는 길이라서 잘 드러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이처럼 계절적인 요인으로 인해 길을 잃을 수도 있다. 혹여 우리가 눈밭에 내놓은 발자국 때문에 다른 이가 길을 잃을까 걱정이다.

길은 이처럼 쉽게 열리지 않는다. 길을 잃어버렸다면 좋은 지도와 나침반, 그리고 공간 감각 기능에 의지해 길을 찾아야 한다. 만일 그 중 하나라도 없다면 왔던 길을 되짚어 돌아가는 수밖에 없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를 때 도움이 될 수 있는 본 받을 만한 스승, 지혜로운 친구, 자신감이 없다면 다시 길을 되짚어 나와 처음부터 시작하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다시 시작하는 걸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많은 사람들이 길을 다시 시작한다.

이미 만들어진 길이라 할지라도 내가 가지 않은 길은 아직 열리지 않은 길이다. 내 뒤로 길이 점점 길어질수록 앞에 남은 길은 짧아진다. 한걸음 한걸음이 산행을, 인생을 완성한다.






간간히 나타나는 길표지들이 반가운 것은 초행 산길의 유일한 안내자이기 때문이다. 앞서간 사람들의 친절한 배려이며 쉽게 지워져 버리는 산길의 충실한 나침반이다. 한동안 길표지가 나오지 않으면 갑작스런 두려움이 엄습한다. 혹여 길을 잘못 든 것은 아닌가. 그러다가 작은 길표지라도 나타나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1991년 지리산에 처음 갔을 때도 길표지들은 매우 유용했다. 그러나 지금 지리산에서는 길표지가 대부분 사라졌다. 길표지가 필요 없을 정도로 길이 뚜렷하고 표지판이 잘 마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럴 때는 오히려 길표지들이 자연을 헤친다. 하지만 백두대간 길은 다르다. 곳곳에 빠지는 샛길이 있고, 때로는 잡목과 풀들로 길이 가려지기도 하며, 엉뚱한 표지로 인해 길을 잘못들 수 있도  있다.

길은 그래서 기대와 두려움 모두를 동반한다. 길이 인생에 빗대어지는 것도 이때문이다. 가지 않은 길은 후회로 점철되며, 가야 할 길은 그래서 두려움으로 도사리고 있다. 그럴 때 나를 안내하며 지켜줄 동행과 표지가 있다면 그것은 행복한 길임에 틀림없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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