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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상나무 아래에서/일상의 발견

아내의 외출

구상나무 구상나무 2010.02.07 13:09


어제, 오랜만에 아내의 화장한 얼굴을 보았다. 아내는 토요일을 맞아 자유 시간을 갖기 위해 외출 준비를 하는 것이다. 물론 화려한 색조화장과는 거리가 멀다. 소위 말하는 방황이나 가출은 더더욱 아니다. 기껏해야 친구들 만나서 같이 식사하고 이야기나 나누는 게 전부다. 하지만 아내는 "예전 같으면 거나하게 한술 했을텐데…"하며 아쉬워했다. 화장한 아내의 얼굴을 보니 나까지 괜히 가슴이 설렌다.

토요일은 언제나 아내에게 자유시간을 주고자 했다. 오전에도 내가 아기를 돌봄으로써 아내가 충분한 숙면을 취할 수 있게 한다. 이를 위해 짜서 비축해 놓은 냉동 젖을 녹여서 적당히 덥힌 후 민서에게 먹이고 달래고 놀아주면, 아내의 곤한 잠은 방해받지 않을 수 있다. 대신 나는 한 달에 한 번 정도 멀리 산행을 다녀올 수 있는 허락을 받았다. 그리고 나머지 토요일은 아내가 자유롭게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역할을 분담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아내의 자유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 젖이 불어서 도저히 6시간 이상 놔둘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내 혼자 가는 여행도 쉽지 않다. 유축기를 쓰면 되지 않냐고 하지만, 유축기로 젖을 짤 수 있는 공간이 한국 사회에 그리 흔한 게 아니다. 그렇다고 아기를
데리고 다닌다면 그게 편한 자유 시간일 수 있을까.

아내가 외출하고 나면 민서와 나의 온전한 하루살이가 시작된다. 민서는 아빠와의 시간이 즐거웠는지 잠을 자지 않고 하루 종일 칭얼대며 놀았다. 기저귀를 두 번 갈았는데, 한번은 기저귀 갈다가 오줌을 싸는 바람에 내 손등을 따뜻하게 적셔주는 인사도 잊지 않았다. 그래도 좋다고 웃음만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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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에 나갔던 아내는 7시가 채 못 되어 돌아왔다. 이미 5시 30분에 젖을 먹였지만, 아내는 아직 잠들지 않은 민서에게 젖을 물렸다. 민서는 기다렸다는 듯이 넙죽넙죽 잘 받아먹는다. 아무래도 냉동 젖을 덥혀서 먹는 젖과는 맛이 다를 것이다. 아기가 젖을 먹는 폼을 보면 생명이 가진 신비함과 오묘함이 머릿속을 가득 채운다.

아내가 들어온 후 나는 텅텅 빈 냉장고를 다시 채워 넣기 위해 장을 보러 나섰다.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니는 나를 위해 항상 반찬거리를 고민하는 아내를 위해서라면 '장바구니 들고 다니는 남자 ' 쯤이야 대수이겠는가. 밤새 아기 때문에 잠도 제대로 못 자면서도 도시락을 챙겨주는 아내를 위해 장보기 정도는 기꺼이 감수해야 할 내 몫이다. 하지만 장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먹거리 음식들의 종류도 참 많은데, 예전에는 대충 가격보고 샀다면 지금은 포장물에 적힌 구성 성분 등도 꼼꼼히 따져본다. 아내가 적어준 내용과 함께 이것저것 구매하다 보니 금세 5만원이 넘어간다. 덕분에 5만원 이상 구매한 이들에게 주는 카밀라유를 공짜로 받아오는 행운도 챙겼다. 당분간은 장볼 일은 없을 듯싶은 흐뭇함으로 냉장고를 채웠다.

아내의 빈자리를 느끼기 보다는 아내의 흔적들을 찾아가는 하루였다. 덕분에 딸 민서를 원 없이 안아보고 더 가까이서 민서의 표정들을 지켜 볼 수 있었다. 나에게 언제나 토요일은 언제나 이렇게 충만할 것이니, 누가 부럽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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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Comments
  • 프로필사진 혜정 2010.02.07 21:04 신고 정말 부러워지는 하루인데요. ^^
    가끔 오빠 홈피 보면서, 마음이 충만해져요. 배려가 정말 중요한 건데, 그걸 실천하기 쉽지 않은데 말이죠.
  • 프로필사진 Favicon of http://eowls.tistory.com BlogIcon 구상나무 구상나무 2010.02.08 09:54 신고 나는 이렇게 블로그로 떠벌려서 그렇지.
    사실 나는 저 글 이상으로 아내에게 많은 걸 받고 있거든.
    너도 그런 사람 만날 수 있을 거다.
    무엇보다 항상 그가 나에게 하는 것보다
    조금 더 노력하겠다는 마음이 필요하겠지.
  • 프로필사진 경옥 2010.02.08 09:13 신고 선배를 보면, 결혼도 괜찮은것 같아여. 전 아직 마음의 준비가 덜 된것 같지만요. ㅎ
  • 프로필사진 Favicon of http://eowls.tistory.com BlogIcon 구상나무 구상나무 2010.02.08 09:55 신고 그러게, 지금까지 살아온 경험으로 봤을 때
    결혼 해볼만 하다. 참 좋은 것 같구나. ㅎㅎ
  • 프로필사진 Favicon of http://www.lolnlil.com BlogIcon 애정어린시선 2010.02.09 10:17 신고 결혼에 대해서 칸트가 결론 내린게 있다죠..
    하는게 남는거다! 라는거..하지만 칸트는 여인을 놓쳐버렸죠..
    너무 결론을 늦게 내려서요..^^

    부러운데요..토요일의 자유시간..
    그..시간마져 나중에는 아주 고맙고 소중한 시간일 거에요..

    애들은 금방 자라더라구요..^^;;
    그리고 자기에게 맞는!(중요포인트입니다..)자기에 맞는 때가 되면..
    할거 다 알아서 하게 되더라구요..^^

    행복한 시간..소중히 간직하시길..
    전 못 갖어본 시간들이에요..
    그래서 대박 부러워요..
  • 프로필사진 Favicon of http://eowls.tistory.com BlogIcon 구상나무 구상나무 2010.02.09 13:51 신고 아이가 크는 걸 보면, 하루하루가 역사죠.
    고작 한달에 한번 있는 게 대박 부러울 것까지야.. ㅎㅎ
  • 프로필사진 애정어린시선 2010.02.09 16:57 신고 매주가 아니였나요?
    하지만 그래도 부러운건 부러운거죠..
    전 못하고 지나가 버렸으니까요..

    음..저도 한달에 하루정도 아내에게 자유시간을 만들어 줘봐야 겠네요..
  • 프로필사진 Favicon of http://eowls.tistory.com BlogIcon 구상나무 구상나무 2010.02.09 20:10 신고 음. 뭔가 오해가..
    매주 토요일은 아내의 자유시간인데,
    한달에 한번 내가 토-일 놀러간다는 협정이죠.

    영대씨는 아이들이 많이 컸으니까 통크게 아내에게 1박2일 여행권을 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ㅎㅎ 후다닥~~~
  • 프로필사진 고미엄마 2010.02.09 22:16 신고 정말 훌륭하십니다. 자주 들어와서 글을 보고 갔었는데~ 오늘은 정말 굿~~~!!의 감동을 느끼면서 한마디 안남길 수가 없네요.
    현명한 부부의 선택이 부러울 따름입니다. 울 신랑도 꼭 이 글을 봐야하는데.....
    주말의 휴식은 산후우울증을 예방할 뿐더러, 행복한 가정을 보장해주는 지름길이라는 것을 몇몇의 선배들을 보면서 알았답니다.
    에구, 참~ 늘 부러운 부부에요.... 2월에 있을 산행에는 울 신랑도 좀 데려가줘요~ 저로 인해서 산에 못간지 3년은 된 듯 합니다.
    다녀오라고 엉댕이를 떠밀어도 왜 그런지 나서려고를 하지 않네요....
    민서, 진짜 많이 컸네요~ 5개월후에 울 아들태어나면 6개월 동생이라고 친구 안 삼으실려나??? ^^
  • 프로필사진 Favicon of http://eowls.tistory.com BlogIcon 구상나무 구상나무 2010.02.09 22:54 신고 엄마 아빠가 건강해야 아이도 행복하죠.
    특히 하루종일 같이 있는 엄마가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건강해야 한다고 봅니다.
    물론 육아가 엄마만의 문제는 아니지만,
    현실적으로 지금은 엄마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으니까,
    다른건 해줄 수 없고, 내가 집에 있는 시간에 충실해야겠죠.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아내가 저에게 해주는 걸 생각하면,
    주말의 노력봉사는 별거 아닌 듯합니다만...
    이거 쑥쓰럽네요.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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