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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으로 간 구상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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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상나무 아래에서/일상의 발견

블로그 글로 보는 나의 2009년

구상나무 구상나무 2009.12.31 16:55





2009년의 시작 포스팅은 1월 5일 쓴 소한_다시 자전거 출퇴근을 시작하며 였군요. 절기별로 글을 써보자고 마음먹고 쓰기 시작한 건데, 이는 “정혜신의 그림 에세이”의 절기별 포스팅을 보면서 비슷하게 따라해 보고자 했던 건데, 거의 하지 못했죠. 절기는 태양의 움직임을 중심으로 농촌 중심 사회의 필요에 맞게 만들어진 시간 구분이죠. 그에 맞춰서 저 역시 태양의 움직임을 알고 그에 맞는 자연적 삶을 생각해 보고자 하는 마음이었습니다만, 뜻대로 되지는 않았네요. 그러고 보니 올해 1월달은 그렇게 춥지 않았나 봅니다. 그에 비해 내년 1월은 연초부터 강추위가 예상된다고 하니 자전거 타기는 다 틀렸네요.


삶에서 여행은 그때그때 아주 큰 의미로 다가오죠. 12월 크리스마스 전후로 해서 다녀온 춘천 여행기가 1월달까지 이어졌네요. 김유정과 실레마을 _ 춘천 김유정역과 김유정 문학관이 올라가 있습니다.


그리고 용산 참사가 있었습니다. 이런 일이 일어날 때마다 무력감만 깊게 상처를 냅니다. 자연스럽게 스스로의 연민에 빠져들기도 하죠. 이 글 나의 연민에 대해 연민을 보낸다’ 는 그런 맥락에서 나온 글입니다. 이런 세상을 이겨내기 위해 더 강해져야 합니다. 그런데 이놈의 세상은 수퍼 바이러스만큼의 내성을 요구하는군요.


그리고 포스팅이 뜸했네요. 네, 연애와 결혼준비 때문에 정신없었죠. 이런저런 일들을 처리하면서 ‘아 이건 포스팅해야겠다’라고 생각했던 것들도 결국은 하지 못하고 말았죠. 결혼 이야기를 잘 정리했다면 괜찮은 추억거리가 되어을 텐데 하는 후회가 드네요. 블로그만 보면 결혼소식은 뜬금없이 전했죠.


그리고 나서 올린 글은 신혼여행기이군요. 제주올레 6코스와 7코스 여행기까지 올리고 8코스는 올리지 않았네요. 제 블로그에 너무 게을렀던 사실을 고백할 수밖에 없네요.


5월 18일에는 황석영 작가 관련 글 현실 인식이 결여된 참여을 썼습니다. 그가 본 현실과 내가 본 현실이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이명박 정부를 중도노선이라고 하는 등에 대해서는 큰 실망을 했습니다. 그가 본 현실을 인정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며칠 뒤 결혼 한 달’ 이라는 포스팅을 달았네요. 여기에 결혼 사진을 처음 걸었지요. 결혼이란 것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는데, 이때 쯤에는 좀 자신감이 붙었던 걸까요? 이런 말을 남겼네요.


여자는 쓴 맛에 민감하고, 남자는 단 맛에 민감하단다. 유전자특성에 새겨져 있는 것이라는데, 오래전부터 태아와 아이를 지키려는 여성의 모성 보호 본능에 기인한 진화라는 이야기가 있다. 나와 살면서 이래저래 여러 쓴 맛을 느끼게 될 지도 모르겠다. 다만, 난 어떻게든 내가 느끼는 이 달콤한 행복의 단맛을 그녀에게 설명하려고 애쓸 뿐이다. 그것이 그녀를 행복하게 해 줄 수 있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얼마만큼 그때의 그 다짐을 잘 지키고 있을까. 곰곰이 되새겨 봅니다.


그리고 노무현 전 대통령 자살 소식을 접합니다. 제 진심에서 우러나온 선거운동을 해서 당선시켰던 추억이 있던 터라 그의 자살은 충격 그 자체였지요. 여전히 그의 죽음은 저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그와 관련된 몇개의 포스팅에는 그에 대한 당시의 내 눈물과 감성이 뚝뚝 묻어나 있습니다. 그중 내 기억 속의 노무현’ 은 내가 노무현에게 가진 모둔 추억과 기억의 결정판이라고 할 수 있다. 돌아보면 나는 노무현을 꽤 좋아했습니다.


6월 2일에 올린 글 검정교과서 실패 후폭풍’에는 회사 내에 이는 무거운 분위기를 담았습니다. 교과서 사업이 채택 여부에 따라 명암이 크게 엇갈립니다. 마치 수능을 치르는 느낌이죠. 한 번에 모든 승패가 결정되다 보니 회사나 직원들이나 심사발표가 있기까지 발뻗고 잠들기 힘듭니다. 오랫동안 굳어져 있는 이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고 보면서도 딱히 어찌하지 못하고 있는 무기력감은 어찌해야 할지 지금도 고민입니다. 지금도 내년 초에 있을 구조조정 소문과 발표 뒤에 한번 더 휘몰아칠 칼바람이 예상되어 답답할 뿐이죠.


6월 9일에 올린 글 촌뜨기는 계속 블로그를 봐왔던 이들에게는 굉장히 뜬금없는 글이었을 겁니다. 아기가 생겼음을 우회적으로 드러내는 글이었는데, 대부분 금방 이해하고 축하 문자나 전화를 주시더군요.


그런 와중에도 월출산을 다녀왔네요(월출산 산행기’). 아내가 임신 중에 여행을 하다니 제 간이 탱탱 부은 걸까요? 아닙니다. 산이라면 제 아내도 몹시 좋아하죠. 그러다 보니 자신이 못 가는 대신 나라도 잘 다녀오라고 합니다. 내년에는 다시 백두대간에 도전해 보려고 합니다. 한달에 한번 담배를 끊었고 술도 줄였으니 산행 정도는 건강과 정서에 좋겠죠. 아내에게는 우리 아기가 크면 아기와 함께 백두대간을 산행을 가자,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선행 답사를 해 보아야 한다는 논리로 설득했습니다.


그리고 6월 12~13일 회사 워크숍으로 영종도를 다녀왔네요(2009 영종도 워크숍을 다녀온 후). 나름 워크숍 준비위원으로 활약했던 터라 기억에 많이 남고, 또 갯벌이 좋아서 이후 가족과 함께 한 번 더 다녀온 일도 있었더랬죠. 어수선했던 사무실 분위기를 쇄신하고자 했던 워크숍이라서 진탕 마시고 놀았던 기억만 있네요.


6월 19일 작성한 (블랙캣 콤팩트 3.0 시승기)는 검색을 통해 많은 분들을 불러들인 키워드 중의 하나였습니다. 편리한 미니 자전거가 인기를 끌면서 블랙캣 콤팩트에 대한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도 여전히 이 자전거를 타고 다니지만, 여러 문제점이 발견되고 있어서 적극적으로 추천하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만, 가격대비 괜찮은 자전거 중의 하나라는 점은 인정하고 싶습니다.



같은 날 작성한 이메일을 바꾸다는 비상싱적이다 못해 몰상식한 우리 사회를 향한 저항의 일환이었습니다. 검찰의 무분별한 이메일 정보 수집에 대해 많은 분들이 공분하였고 저 역시 반인권적인 작태에 맞서는 한 형식으로 이메일 계정 교체를 진행하게 되었죠. 지금의 이메일(eowls@eowls.net)은 이렇게 해서 탄생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올해 구글 이메일과 블로그, 아이폰 등은 국내의 부조리에 저항해 선택된 외국 대체제이네요. 돈 없어서 이민은 갈 수 없지만 이렇게라도 이 땅에서 살아남으려는 사람들의 처절한 몸짓이 아닐까요.


올해 초에는 사내 동호회에도 가입해 활동했습니다(목요일 6시, 농구 코트를 누비다). 농구 동호회였는데, 나름 신선한 활동이 되어 주었죠. 하반기에 들어오면서 교과서 업무로 인해 참석하지 못했지만, 간간히 동호회 분들을 만나면 눈인사 정도는 나누고 있죠. 회사 동호회 한두 개쯤은 다들 하고 계시죠?


김연아 선수에게서 시작된 트위터 열풍을 따라 가기도 했습니다(트위터?). 지금은 사나흘에 한번씩 짹짹대고 있지만 거의 독백에 가깝죠. 하지만 여러 주요 인사들의 트위터를 실시간으로 보는 재미는 버리지 못하겠더군요. 그래서 제 모니터 한쪽에는 여전히 트위터가 켜진 채 계속해서 글을 토해내고 있습니다.


7월달에는 모처럼 캠핑을 다녀왔네요(캠핑을 가다_포천메가캠핑장). 포천의 메가 캠핑장은 오토 캠핑에 최적화 되었으며 캠핑이 힘든 사람들을 위한 숙박시설까지 잘 갖춘 매력적인 캠핑장이었습니다. 밤새 내리던 비도 잊지 못할 것 같네요.


하지만 캠핑을 다녀오고 얼마 후 아내가 충수염 수술을 받았습니다(‘아내의 병상 일기 1, 아내의 병상 일기 2’). 흔히들 얘기하는 맹장수술인데, 보통 사람이었으면 그냥 간단히 끝났을 수술 과정이 산모라는 이유로 꽤 고생했죠. 지금도 병상에서 울던 아내를 생각하면 마음이 짠해 옵니다. 그래서 잘해줘야지 하는 마음은 굴뚝같은데 마음만큼 어떻게 잘해줘야할지 모르는 저는 바보인가 봅니다.


8월달에는 쌍용차 문제와 관련된 포스팅이 먼저 나오는군요.해고는 죽음’이라는 그들에게 ‘생명의 물’을…, 정은임 추모 5주기, 평택 공장의 어둠 속에서 그녀의 목소리가 들리기를..., 사람의 목숨에 무게를 달려고 하느냐 등이 해당 포스팅이었습니다. 우리 사회만큼 노동을 천대시하는 사회가 어디에 있을까 싶습니다. 그러면서 선진화를 외치는 사람들이 가증스럽기만 합니다. 인간의 기본적 권리를 무시하고 자연과 생명을 보살피지 못하는 사회는 오래가기 힘듭니다. 우리의 다음 세대를 생각하며 어떻게 살지 매번 고민하다가 머리카락이 다 빠질 것 같네요.


8월 달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에 이어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서거하셨습니다(‘겨울을 견디는 풀꽃, 지다...’). 행동하는 양심, 이 단어로 그를 기억해야겠어요. 우리 사회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큰 힘이 되어줄 두 분이 그렇게 허망하게 가셨네요. 이 두 분의 서거를 비롯해 사회적으로 참 암울한 한해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청계천 보도확장 공사, 진작 했어야 한다.라는 글을 시작으로 국가인권위에 블로그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정기적으로 쓰기로 한 건 아니지만 가끔씩 인권 관련해서 글을 쓰기로 했는데, 반응은 나쁜 편이 아니더군요. 어떤 목적을 두고 꾸준히 글을 쓰는 것은 매우 힘들고 고통스러운 작업이지만 분명 해볼만한 도전입니다. 지금은 출산과 회사 업무가 바빠서 잠시 쉬고 있는데, 다시 본격적으로 시작해볼까 합니다.


운동도 더 열심히 해보려고 했던 한해였나 봅니다. 자전거 출퇴근을 비롯해서 하반기에는 줄넘기 계획도 세웠더군요(줄넘기로 백만돌이를 꿈꾸다). 지금은 못하고 있습니다. 몸무게 목표를 70kg으로 잡고 있는 지금도 여전히 운동은 가장 효과적인 감량 방법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죠. 줄넘기는 짧은 시간 운동으로 큰 운동량을 보이는만큼 조금만 짬을 내면 되는게 그게 쉽지 않네요. 내년부터 다시 운동을 고민해 봐야겠습니다.


9월달에는 주로 근현대사 교과서 문제와 관련된 포스팅이 눈에 띕니다. 아무래도 교과서 업무를 하다 보니 많이 관심이 가는 부분입니다. 자신의 생각과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교과서를 바꿔야 한다는 대통령의 말, 그리고 거기에 부화뇌동하면서 움직이는 사회, 아이들에게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그리고 10월달에는 포스팅을 전혀 못했습니다. 워낙에 바쁜 시절이었죠. 아침 9시 출근해서 밤 11시나 새벽 1시 즈음해서 퇴근했으니 말입니다. 블로그에 글 쓴다는 건 상상도 못하는 시절이었죠. 11월달에 쓴 ‘교과서 인쇄와 제본, 그리고 심사본 제출까지의 단상’은 글은 그나마 여유가 보여서 좋네요.


또 11월달에는 아내와 함께 강릉여행을 다녀왔습니다(강릉 여행을 다녀오고). 회사 일 때문에 집에서 잠만 자고 나가다 보니 임신한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이 커서 다녀온 여행이었는데, 어쩌면 그 여행의 무리로 인해 조산을 한 것은 아닐까 조심스럽게 의심해 봅니다.


그리고 12월 제 딸이 태어났습니다(촌뜨기, 세상에 나오다). 예정보다 한달 반이나 일찍 나와서 부모 속을 좀 태웠지만, 그래도 곱고 예쁜 우리 딸입니다. 2009년 결혼하고 아기까지 봤으니 제 개인적으로 2009년은 최고의 해였습니다. 2009년의 모든 것은 제 아기로 마무리되는 듯해 정말 한없이 기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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