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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으로 간 구상나무

청계천 보도확장 공사, 진작 했어야 한다. 본문

구상나무 아래에서/밥과 꿈과 사람

청계천 보도확장 공사, 진작 했어야 한다.

구상나무 구상나무 2009.08.21 09:40


얼마 전에 청계천을 갈 일이 있었습니다. 예전에는 산책 삼아 거닐다 보면, 데이트 하는 연인들 모습 때문에 씁쓸했었답니다. 하지만 직장도 옮겼고, 연인을 옆에 두고 있다 보니, 이제는 그다지 가고 싶은 마음은 없어요. 일전에는 일이 있어서 잠시 지나는데, 한창 공사 중이더군요. 일명 청계천 보도 확장 공사. 





속으로 ‘이제야 청계천 보도가 확장되는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면서 머릿속 타임머신의 시계는 2005년 8월로 거슬러 올라가네요. 2005년 8월 4일, 개장을 불과 한달여를 앞둔 청계천변의 시설에 대해 국가인권위의 현장조사가 실시되었죠.(관련 보도자료) 그때 국가인권위는 청계천에서 장애인과 약자들의 접근과 이동도 청계천 흐름만큼 자유로울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이를 위해 청계천과 차도 사이의 보도폭, 휠체어의 경사로 진입 시 턱 등 장애요소들이 있는지 여부를 조사했습니다. 또, 경사로의 폭과 경사도 등의 안전성이나 점자 블록의 적절한 설치 여부도 확인했습니다. 이런 조사들은 모두 장애인과 약자들의 안전한 이동권이 실질적으로 보장되고 있는지를 알아보기 위한 활동이었죠. 또 이런 조사를 통해 중요 국책사업 등의 설계 과정에서 장애인 당사자의 참여 보장 문제 등을 검토한다는 취지였습니다.

그리고 같은 해 9월 1일, 국가인권위는 청계천에서 장애인이나 약자들의 이동권 보장이 미흡하다는 권고를 전달했습니다. 국가인권위는 이 권고에서 반드시 개선되어야 할 4가지의 문제점을 지적했었죠. 그 중 하나가 바로 보도폭이었습니다.

“청계천 쪽에 설치된 보도를 보면, 이 보도의 폭은 1.5m이나 보도에 가로수가 심어져 있어, 가로수가 있는 곳의 통행가능 유효폭은 60~70cm 밖에 되지 않아 휠체어나 유모차 등이 지나가기가 어려워 장애인 등의 이동권을 제한하고 있습니다.[사진1, 2, 3] 더구나 이와 같이 보도에 가로수를 심은 것과 가로수로 인해 유효폭이 60~70cm로 된 것은 ‘휠체어 사용자가 통행할 수 있는 보도 등의 유효폭은 1.2m 이상으로 해야한다’, ‘보행장애물을 설치하는 경우에는 장애인 등의 통행에 지장을 주지 않도록 설치해야 한다’는 장애인․노인․임산부등편의증진보장에관한법률시행규칙 제2조에 위반되는 것입니다.”  - 관련 보도자료 중에서  




청계천의 안전시설 문제는 첫날부터 불거졌습니다. 개장 첫날 삼일교에서 중앙에 있는 조형물을 구경하던 유모씨가 5.5m 아래로 떨어져 사망한 사고가 발생한 것이죠. 그리고 다시 개장 한달여를 지난 시점에서 또다시 시민의 추락사고가 발생하고 말았습니다. 안전시설에 대한 문제 제기가 전혀 억지가 아님을 증명한 사건들이었죠. 비장애인도 그렇게 사고를 당하는 마당에 장애인이나 약자 등은 어떤 위험과 공포에 떨어야 할지는 뻔한 거 아닐까요?

이순원 작가는 월간 <인권>을 통해 청계천의 차별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지금 뽑아 다른 곳으로 옮기기엔 왠지 너무도 아깝게 보이고 크게 보이는, 몇 년 후 더 자라서는 청계천을 상징할 나무로 보이기도 하는 저 이팝나무가 내 눈엔 바로 ‘그 나무 때문에 청계천 나들이가 불편한 절대 소수에 대해 그 나무로 청계천 나들이가 더 행복한 절대 다수’가 가하는 차별의 상징수처럼 보이는 것이다.” - 2005년 10월호 휴먼필-왼손과 오른손, 그리고 청계천의 이팝나무

작가는 나무라도 뽑아서 길을 확보하라고 충고했지만, 사실 차도를 좁혀서 보도를 넓히는 게 더 인간적이고 자연친화적인 일이겠지요. 4년이나 지났습니다. 만시지탄(晩時之歎)의 감이 있지만, 지금이라도 보도폭을 넓힌다는 게 반가운 소식입니다.

다시 그때의 국가인권위 권고 내용을 담은 보도자료의 마지막 문장을 인용해 봅니다. 국가기관과 지자체 담당자분들 꼭 생각해 보셨으면 합니다.

“향후 공공사업 시행에서는 계획 단계에서부터 사회적 약자의 참여를 보장함으로써 사회 구성원 모두가 차별 없이 함께 누릴 수 있는 공공시설 개발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지난달에 인권위에 보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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