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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으로 간 구상나무

나는 지금의 정부에 동의하지 않는다_리뷰 - 눈뜬 자들의 도시 본문

사막에 뜨는 별/서가에 피는 꽃

나는 지금의 정부에 동의하지 않는다_리뷰 - 눈뜬 자들의 도시

구상나무 구상나무 2009.07.14 21:00

 




 
“12월 19일 실시된 제17대 대통령 선거 투표율은 62.9%인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총 선거인수 3765만 3518명 중 모두 2368만 3684명이 투표를 마쳐 투표율은 62.9%인 것으로 나타났다. 역대 대선 가운데 최저 투표율(70.8%)을 기록했던 16대 대통령선거보다 낮아 역대 최저 투표율 기록을 세웠다.”

어느 모 뉴스사이트에서 퍼 온 지난 대선 결과이다. 뉴스에서는 나오지 않았지만, 투표를 하지 않은 사람의 수는 정확히 1396만 9834명에 이른다. 이 중에서 정말 시간이나 여건이 안 되어 투표를 못하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할 것이다. 투표를 하지 않는 대부분의 사람들의 이유는 다음으로 요약할 수 있다. 제일 많은 부분은, 어차피 내 한 표가 당락에 큰 영향을 끼치지 않음으로 차라리 놀러 가는 게 더 유익하다는 주장, 다음으로 더러운 정치판에는 관심 갖기 싫고 투표라는 행위가 귀찮기만 하다는 생각, 그리고 내 투표권을 기꺼이 양도할 만한 사람이 없어서 투표를 안 한다는 주장, 여기에 정말 아무 생각 없어서 투표를 안 하는 사람 등등으로 나누어 볼 수 있지 않을까.

우리는 태어나는 그 순간 평생 지킬 협정에 서명을 한 것과 마찬가지다. 그러나 이렇게 자문할 날이 온다, 누가 여기에 나 대신 서명을 했는가. -377쪽

이명박 정부 탄생 이후 나라 전체가 들썩거리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명박을 선택한 것을 후회하거나 투표를 하지 않음을 후회하고 있다. 누군가의 말처럼 우리는 우리가 선택한 것으로 이루어진다고 하지 않던가. 어쩌면 당신 주장대로 당신이 투표를 하건 안 하건, 세상은 돌아가기 마련이다. 하지만, 최근의 방송 드라마 시티홀의 남자 주인공 ‘조국’(차승원 분)은 좀 다른 생각을 가진 것 같다.

“여러분은 반성하셔야 합니다. 당신의 삶에서 당신이 원하는 걸 발견하지 못했다면 그건…당신의 선택이 잘못됐던 겁니다. 여러분은 지금 직장을 잃어도, 집을 잃어도, 그 흔한 문화시설 하나 없어도 다 내 팔자인 것입니다. 과연 여러분은 그런 팔자를 원하셨던 겁니까? 천만의 말씀입니다. 여러분의 선택이 인주를 바꾸고. 인주가 바뀌어야 당신의 삶이 바뀌고. 당신 삶이 바뀌어야 당신 아이들의 삶이 바뀝니다…….”

소설 <눈뜬 자들의 도시>는 전작 <눈먼 자들의 도시>의 속편 격이다. 앞선 전작에서 작가 주제 사라마구는 눈을 뜨고 있으면서도 보지 않으려는 자들을 눈먼 자로, 그리고 눈뜬 자가 가져야 할 소명의식과 사명감을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를 세심하고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전작에서는 온 도시의 시민들이 눈먼 자가 되고 오직 한 명만 ‘눈뜬 자’였다면, <눈뜬 자들의 도시>는 시민들이 모두 ‘눈뜬 자’가 되어 부당하고 정의롭지 못한 사회 제도와 그런 제도를 유지하려는 기득권 세력에 맞서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온 나라가 백색 실명증에 걸리고 4년이 지난 후 치러진 총선. 그러나 유권자 중(투표자 중에서가 아니라 유권자 중에서다) 83%가 백지투표를 내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한다. 정부는 이 현상을 체제를 위협하는 불순분자의 선동으로 보고 비밀경찰을 이용한 불법 도감청 등의 방법으로 조사에 나섰지만, 뚜렷한 실체를 발견하지 못한다. 몇 번의 재선거에서도 똑같은 결과가 나오자 급기야 도시 전체를 반역자로 몰아 도시를 고립시킨다. 정부당국자들은 야밤에 수도를 빠져나가고, 계엄령을 내린 후 도시를 군대로 포위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정상적(?)으로 투표를 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마저 탈출을 거부당하고 사태가 일어나고 만다.

그러던 어느날 총리와 대통령 앞으로 편지가 한통 날아오는데, 4년전 온 나라가 백색실명증에 걸렸을 때 유일하게 눈이 멀지 않은 여인이 있었다는 내용으로, 정부 당국자들은 이것을 이번 백지투표와 연관시켜 수사하도록 경찰들을 도시로 보낸다.

경찰들은 도시를 오가면서 유일하게 눈이 멀지 않았던 의사의 아내를 비롯해 그와 함께 힘든 시기를 견뎌냈던 사람들을 만나며 탐문 수사에 들어가지만, 마땅한 혐의를 발견할 수 없었다.

그런 와중에 수사팀장인 경감은 수사에 회의를 느끼고, 정상적인 명령이나 지시가 아닌 의도적 함정 수사에 대해 의사의 아내에게 솔직히 털어놓게 된다. 정부는 이 사실을 모른 채 의사의 아내를 시민들의 반역(백지투표)의 주모한 반역자로 몰아가는 여론 몰이를 한다. 그러나 그들의 시도가 번번이 실패로 돌아가자 끝내는 극단적인 방법을 동원하기에 이른다.

우리는 반역자들이 이성에 귀를 기울이게 하려는 우리의 모든 시도가 하나하나 대실패로 끝나고 말았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한 실패의 원인은, 적어도 내 의견으로는, 우리가 선택한 탄압 조치가 가혹했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지금까지 추구하던 전략을 계속 따른다면, 강압적인 방법들의 수위를 계속 높인다면, 또 반역자들의 반응이 계속 지금까지와 같다면, 즉 아무런 반응이 없다면, 우리는 독재적 성격을 가진 극적인 조치에 의지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 221쪽

지금으로부터 160여년 전에 핸리 데이빗 소로우는 이미 작은 정부의 필요성을 주창했다.

“우리는 먼저 인간이어야 하고, 그 다음에 국민이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법에 대한 존경심보다는 먼저 정의에 대한 존경심을 기르는 것이 바람직하다. 내가 떠맡을 권리가 있는 나의 유일한 책무는, 어떤 때이고 간에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행하는 일이다.”

우리는 우리가 속한 지금의 정부, 그리고 사회 제도는 지금의 우리가 원해서 된 것이 아니며, 과거의 잘못된 관행에서 이어져 온 온전치 못한 부당함과 비리를 품고 있음을 잘 알고 있다. 따라서 얼마든지 우리가 정의롭고 올바르다고 믿는 방향으로 바꾸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선택의 기로에 선다. 그리고 우리 자신의 정체성은 그 선택들로 이루어진다. 이 사회 역시 당신의 선택들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눈 감을 것인가, 눈 뜰 것인가.

검은 색과 빨간색으로 된 표제만 보더라도 각각의 신문에 어떤 내용이 담겨 있는지 우리도 대충은 짐작할 수 있다, 조국의 적들의 또 한 번의 전복 행위, 누가 복사기를 돌렸는가, 허위 정보의 위험, 누가 그 복사 값을 냈는가. - 419쪽

이 부분을 보면서 실소를 흘릴 수밖에 없었다. 언젠가 ‘그 많은 초들은 누가 돈을 댔느냐’며 화를 벌컥 냈다는 사람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눈뜬 자들의 도시 - 8점
주제 사라마구 지음, 정영목 옮김/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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