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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으로 간 구상나무

홍영녀 할머니의 '가슴이 하고 싶었던 이야기' 본문

사막에 뜨는 별/서가에 피는 꽃

홍영녀 할머니의 '가슴이 하고 싶었던 이야기'

구상나무 구상나무 2007.02.05 14:52


“창박게 부는 바람, 죽음의 시늠소리도 드러쓸 것이고 갓 태어난 아기의 숨소리도 거쳐 왓슬 것이다. 잠 못 이르는 이 밤, 바람에게 마는 사연을 듣는다.”

-홍영녀님의 ‘가슴이 하고 싶었던 이야기’에서-


홍영녀님은 포천에서 혼자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습니다. 칠순에 한글을 배워 주욱 일기를 쓰고 계십니다. 자손들이 팔순 생신 기념으로 일기를 책으로 엮어드렸습니다. 슬하에 6남매를 두었지만, 혼자 사는 것이 편하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한 마디 하시는데, 씩씩하기 그지없습니다.

“자유롭기 위해서는 외로워야 한다.”


 



 


지난 1월25일 정기적으로 받는 메일의 일부였다. 70이 넘어 글을 깨우쳐 매일 쓴 일기가 벌써 8권에 이르는데 그 할머니와 가족의 이야기였다. 80이 넘으신 할머니가 “자유롭기 위해서는 외로워야 한다”고 썼다. 그러기 위해 같이 살자는 자녀들 다 뿌리치고 혼자 포천에서 농사를 짓고 있다. 무엇이 할머니로 하여금 자유를 갈망하게 했을까. 여기저기 검색을 통해서 사람들의 글을 보았다. 책이 보고 싶어졌다.


하지만 책은 구하기 어려웠다. 교보와 영풍, YES24, 인터파크 어디를 뒤져봐도 보이지 않았다. 책은 1995년 11월에 나온 책인데, 모두 절판으로 나왔다. 책이 많이 팔리지도 않고 사람들의 관심도 끌지 않았나보다. 그래서 더더욱 욕심이 갔다.


이제 인터넷 헌책방을 찾아다녔다. 역시 찾기 쉽지 않았다. 결국 실낱같은 기대를 가지고 ‘헌책사랑’의 게시판에 책을 구한다는 글을 띄어보고 기다렸다. 2월1일 메일로 답이 왔다.


안녕하세요

'헌책사랑' 사이트에서 책을 구한다는 내용을 읽고 이메일을 드립니다.

홍영녀 할머니의 <가슴이 하고 싶었던 이야기> 책을 제가 갖고 있습니다.

(생략)


정말 연락이 올 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다. 너무 기뻤다. 다시 이메일이 오가고 택배비 3000원에 책값 3000원 해서 6000원. 책값이 4500원인데 6000원을 쓰면서도 아깝지 않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오늘 책이 도착했다. 군데군데 형광펜으로 칠한 자욱이 있다. 헌책이 정이 가는 건 사람의 손때가 묻었다는 정감 때문이다. 그렇다고 너무 낡으면 그 정이 떨어지는데, 그리 낡지도 않고 표지도 깨끗하다.


앞쪽의 몇 쪽을 읽어보았는데, 좋다. 일부분을 여기에 옮겨 본다.



 




 

무남이 이야기


무남이는 생으로 죽였다. 에미가 미련해서 죽였다. 우리 시아버지 상 당했을 때는 무남이 난 지 일곱 달 되어서였다. (글줄임) 동생이 장사 치르는데 젖먹일 시간 있겠냐며 우유를 가방에 넣어 주었다. 시댁에 도착하자마자 상제 노릇하랴 일하랴 정신이 없었다.

무남이는 동네 애들이 하루 종일 업고 다녔다. (글줄임) 젖이 퉁퉁 부었어도 먹일 시간이 업었다. 그런데 애들이 무남이가 우니까 우유를 찬물에 타 먹였다. 그게 탈이 났다. 똥질을 계속했다.

시아버님이 돌아가시자 시어머님이 앓아 누우시게 되었다. 그 경황에 자식 병원에 데리고 갈 수도 없었다. 그땐 애를 병원에 데리고 가는 것도 흉이었다. 이번엔 시어머님이 또 한 달만에 돌아가셨다. 초상을 두 번 치르는 동안에 무남이의 설사는 이질로 변했다. 애가 바짝 마르고 눈만 퀭했다. 두 달을 앓았으니 왜 안 그렇겠나. 그제서야 병원에 데리고 가니까 의사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늦었다고 했어. 그땐 남의 집에 세들어 살았는데 주인집 여자가 자기 집에서 애 죽이는 것이 싫다고 해서 날만 밝으면 애를 업고 밖으로 나가곤 했지. 옥수수밭 그늘에 애를 뉘여 놓고 죽기를 기다렸다. 그러다 날이 저물면 다시 업고 들어가곤 했지.

지금도 그때 생각을 하면 눈물이 나서……. 애를 업고 밭두렁을 걸어가면 등에서 가르릉가르릉 가느다란 소리가 났어. 그러다 소리가 멈추면 죽은 줄 알고 깜짝 놀라 애를 돌려 안고 ‘무남아!;하고 부르면 힘겹게 눈을 뜨곤 했어. 사흘째 되는 날인가, 풀밭에 애를 뉘여 놓고 들여다 보며 가여워서 ’무남아!‘하고 부르니까 글쎄 그 어린 것 눈가에 눈물이 흐르더라구.

그날 저녁을 못 넘길 것 같아서 시집 올 때 해 온 개끼 치마를 뜯어서 무남이 입힐 수의를 짓는데, 어찌나 눈물이 쏟아지는지 바늘 귀를 꿸 수 없어서 서투른 솜씨로 눈이 붓도록 울면서 옷을 다 지었지.

겨우 숨만 걸린 무남이에게 수의를 갈아 입히니 옷이 너무 커서 어깨가 드러났어. 얇은 천이라서 하얗고 조그만 몸이 다 비쳐 보였어.

그렇게 안고 들여다 보고 있으려니 첫닭 울 때 숨이 넘어갔어. 죽은 무남이를 들여다 보니 속눈썹은 기다랗고, 보드라운 머리칼은 나슬나슬하고, 고사리 같은 자근 손이 에미 가슴을 저며 내는 거 같았어. 나는 이 얘기를 할 때마다 울지 않고 못 배겨.

게다가 그땐 이 에미가 얼마나 독하고 야박스러웠나 몰라. 무남이 싸 안았던 융포대기나 그냥 둘 걸, 물자가 너무 귀한 때라 융포대기를 빼 놨어. 그리고는 헌 치마에 새처럼 말라 깃털 같은 무남이를 쌌지.

즈이 아버지가 주인 여자 깨기 전에 갖다 묻는다고 깜깜한데 안고 나가 묻었어. 어디다 묻었냐고 나중에 물으니까 뒷산 상여집 뒤에 묻었대. 그땐 왜정 때라 부역하듯이 집집마다 일을 나갔는데 나도 나오래서 밥도 굶고 울기만 하다 나갔떠니 하필이면 일하러 가는 곳이 상여집 뒷산이었다.

그곳을 보니까 새로 생긴 듯한 작은 돌무덤이 봉긋하게 있어서 그걸 보고 그냥 그 자리에 까무러쳐서 정신을 잃었었지.

(글줄임)


아가야 가여운 내 아가야

에미 때문에 에미 때문에

아가야 불쌍한 내 아가야


열 손가락에 불 붙여 하늘 향해 빌어 볼까

심장에서 흐른 피로 만리장성 써 볼까

빌어 본들 무엇하리 울어 본들 무엇하리


아가야 아가야

불쌍한 내 아가야


내 사랑하는 아가야

피어나는 국화 꽃이 바람에 줄기째 쓰러졌다고 울지 말아라

겨우내 밟혀 죽어 있던 풀줄기에서

봄비에 돋아나는 파란 새움을 보지 않았니.

돌쩌귀에 눌려 숨도 못 쉬던 씨 한 알이

그 돌을 뚫고 자라 나온 것도 보았지.

뿌리가 있을 동안은 울 까닭이 없다.

생명이 있는 동안은 울 까닭이 없다.


밝은 아침 해가 솟아 오를 때 눈물을 씻고

뜰 앞에 서 있는 꽃줄기를 보아라.

햇빛에 빛나는 꽃잎을 보아라.


아가야, 눈물을 씻어라.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웃어 보아라.

쥐암쥐암 손짓 재롱을 부려 보아라.

옹알옹알 옹알이로 조잘대 보아라.

예쁜 나의 아가야.


우리 아기 피리를 불어주마.

우리 아기 우지 마라

네가 울면 저녁별이 숨는다.


-어려서 죽은 무남이를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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