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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으로 간 구상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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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여행자/백두대간 이야기

[백두대간종주]여원재-수정봉-노치마을-정령치

구상나무 구상나무 2007.03.14 15:27



지리산을 떠나는 걸음이 다시 지리산으로 간 이유                              

백두대간 제3구간 종주 코스는 남원과 함양사이의 고원지대인 운봉고원을 통과한다. 여원재에서 출발, 고남산-유치재-사치재-복성이재-치재-봉화산-중치까지 갈 예정이었다. 즉 여원재에서 북쪽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그런데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우리는 여원재에서 거꾸로 남쪽으로 달렸다.

우리가 남쪽으로 가고 있다는 것도 출발하고 2시간 뒤에서야 알았다. 해는 이미 중천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고 우리는 돌아갈 길을 고심했다. 결국 가던 방향을 따라 지리산으로 가기로 했고, 여원재에서 출발한 백두대간 산행이 수정봉과 노치마을, 정령치로 이어져 다시 지리산의 품속으로 기어들어간 꼴이 됐다.

언젠가 가야할 길이었다. 5월달에 가려고 했던 구간이다. 하지만 1박2일로 달리기에는 벽소령-여원재가 너무 긴 코스다. 이 기회에 정령치까지 미리 끊어 줌으로써 5월 산행의 부담을 줄였다. 또 이번에 가지 못하고 다음 달에 찾을 봉화산 코스는 진달래 철쭉으로 유명한 곳이다. 다음달이면 만개해 있을 테니 아쉽지 않다. 마지막으로, 산은 정상에 오르는 것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을 즐기는데 있다는 말을 되새겨 보았다.

우리 나이 30대, 넘어야 할 산이라면 넘어갈 것이다                        

사실 준비는 아주 잘 됐다. 대장을 맡은 친구도 꼼꼼히 잘 챙겼다. 일행 모두 열정도 있고, 체력도 괜찮았다. 식량과 부식은 회사에서 집으로 오던 내가 간단히 장을 보아 마련했다. 지난번보다 알차고 풍부했다. 지도도 <백두대간24>라는 가장 최근에 나온 지도책을 구했다. 빈약하지만 나침반은 친구가 마련했다. 하룻밤 묵을 숙소도 확보했다. 고도계도 있으면 좋겠지만 나중에 구하기로 했다. 이 정도면 훌륭하다 싶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경험이 없었다. 지도와 나침반, 그리고 먼저 간 이들이 남겨둔 표식만으로 찾아가기에는 우리 경험이 부족했다.






3월 9일 영등포발 진주행 9시 52분차에 몸을 실었다. 낮에 사무실에서 일하다 오느라 친구 둘은 제대로 저녁식사도 못 챙겼단다. 준비해간 빵으로 대충 끼니를 채우고 맥주 한잔씩 마시고 잠을 청했다. 밤기차의 흔들거림에 몸을 실으니 잠도 쉽게 찾아들었다.

하지만 피곤을 싣고 달리는 거다. 일주일 내내 회사에서 시달리다가 주말에 이렇게 산행을 하는 일이 쉽지 않은 일이다. 이런 어려움들은 어쩔 수 없다. 한창 사회에서 일할 30대의 나이다. 여유롭게 산행 준비하고 느긋하게 집을 나오기가 쉽지 않은 세대다. 하지만 더 나이 들기 전에 추억거리 하나 만들어 보자는 일념, 그리고 삶을 더 의미있게 만들어보겠다는 욕심이 등을 떠민다. 어려움은 타고 넘어야 한다. 어차피 넘어야 할 산이라면 넘어가야 하는 것이다.


남원역 대합실


기차 안에서 설핏 잠드는가 싶더니 어느새 남원 도착 안내 방송이 나왔다. 친구들을 부랴부랴 깨워야 했을 만큼 나도 친구들도 깊이 잠들어 있었다. 남원역에 내린 시간은 새벽 2시경. 그 시간에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남원역은 시내에서도 한참 동떨어져 있어 할 수 있는 것도 없다. 잠에서 덜 깨 몽롱한 기운이 채 가시지도 않았는데, 여기서 가만히 기다리자니 그 시간도 속절없다.

결국 택시를 타고 남원 시내까지 나왔다. 아저씨에게 버스터미널 근처 PC방에서 내려달라고 부탁하면서 한마디 물어보았다.

“아저씨 백두대간 가는 사람들 요즘도 많아요?”
“요새는 좀 뜸하제요. 그라도 꾸준히 오갑니다.”


24시간 해장국집의 풍경                                                    





 

터미널에 도착했지만 PC방은 쉽게 나타나지 않았다. PC방을 찾기 위해 거리를 헤맸다. 조용한 지방 도시를 새벽에 거니는 기분도 남다르다. 아무도 없는 빈도시를 걷는 듯한 착각에 빠져들만큼 고즈넉했다. 고만고만한 2~3층 높이의 건물들이 꼬깃꼬깃 접힌 것처럼 늘어서 있는 모습이 아담하다.

PC방을 찾아 정보를 더 구하고 거기서 잠시 눈을 붙여볼 생각이었다. 그러나 이번에 대장을 맡은 기석이는 밤새 이번 구간에 대한 웹 정보를 검색하고 꼼꼼히 읽어갔다. 옆에서 보면서 간간히 쳐다 보았지만 이내 무거운 눈꺼풀을 닫아버렸다. 대장의 책임은 막중하다.

PC방을 나와 식당으로 향한 건 새벽 5시경. 근처 24시간 하는 밥집이 딱 2군데 있었다. 흔한 김밥집과 해장국집, 우리는 해장국집을 선택했다. 든든히 잘 먹고 가자는 데 의견이 모아진 것이다.

새벽의 해장국집에는 반드시 얼큰하게 취한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다. 취한 사람들의 구불텅한 말투는 힘든 고갯마루를 오르는 것처럼 알아듣기 힘들다. 술취한 이는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계속 이어갔고, 상대편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이야기를 삼켜준다. 식어가는 해장국에는 멀건 기름때만 둥둥 떠다녔을 것이다. 소주잔은 바닥이 보일 틈이 없었고, 김치는 그 자리에서 내내 젓가락을 기다리며 쉰내를 풍겼을 텐데 말이다.

삶의 고단함을 등산에 비유한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하지만 그 고단함을 잊게 해주는 것이 산행이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수긍해 줄까. 나는 이 고약한 마약에 취해 오늘도 짐보따리를 이고 산행을 나섰다. 무엇을 잊기 위함이고 어떤 것을 버리기 위해 떠나는 것일까. 문득 <낮은 산이 낫다>라며 지리산 산줄기 밑의 한 야산에서 살고 있다는 남난희 선생의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새벽길을 알려준 운성대장군                                                 

새벽 6시 남원에서 운봉으로 가는 첫차를 탔다. 새벽 첫차를 타면 마음이 경건해진다. 첫차를 몰고 나오는 버스 기사 아저씨에게 감사하고, 새벽 첫차를 타고 일을 나가는 사람들의 부지런함을 보며 배운다.

남원에서 여원재까지는 대략 20분~30분이면 간다. 백두대간의 아름다운 고개 7선(選)에도 뽑힌 여원재(女怨峙). 북쪽에서는 지리산으로 향하는 첫 관문이다. 남원시를 뒤로 하고 고갯길을 올라서면 운봉 고원지대가 나온다. 여기서는 지리산 서부 산줄기를 감상할 수 있는데 동남쪽으로 세걸산과 바래봉이 펼쳐져 있고 북쪽으로 황산이 자리잡고 있다. 유명한 흥부마을도 여기에 있다. 여원재라는 말을 풀어보면 여인의 원한이 있는 고개라는 뜻이라 좀 무섭게 느껴진다. 익히 알려진 유래는 다음과 같다.

왜구침입으로 나라 곳곳이 몸살을 앓던 고려 말, 왜구들은 이 깊은 내륙까지 쳐들어와 노략질을 일삼았다. 왜구들이 쳐들어와 이곳의 주모를 희롱하자 이 여인은 칼로 자신의 왼쪽 가슴을 자르고 자결했다고 한다. 중앙에서 왜구를 물리치기 위해 내려온 이성계는 어느날 꿈속에서 노파가 나타나 전투날짜와 전략을 알려주었고, 그대로 실행하여 대승을 거뒀다고 한다. 훗날 이성계가 알아보니 그 노파는 바로 자결한 주모였다. 이성계는 이 주모를 기려 사당을 짓고 ‘여원’이라고 이름 붙였으며 이후로 이곳은 여원재라는 이름을 얻게 됐다.

나라가 위태롭고 정의가 사라진 곳에 약자들이 설 곳이 어디였을까. 중한 목숨마저 끊어내면서 지키고자 했던 것은 여인의 정절이었을까, 자존심이었을까. 어쩌면 남자들에게 유린당하고 노리개감이 되어야 했던 그릇된 시대의 아픔을 원망했던 것은 아닐까.

여원재에 도착해 본격적으로 등반 준비를 했다. 랜턴을 준비하고 스틱을 꺼내고 신발끈을 다시 묶는 일이다. 언제나 이 순간이 가장 긴장된다. 밤새 내려온 피곤함도 싹 가실 정도다. 하지만 우리는 바로 이 출발점에서 길을 정반대로 잡았다. 북쪽으로 가야하는데 남쪽을 잡게 된 것은 바로 ‘운성대장군’ 석상 때문이다.







산행 안내를 맡은 기석은 운성대장군 쪽으로 시작해야 한다고 했고 우리는 아무 의심 없이 그쪽으로 산행을 시작했다. 그러나 나중에 확인해 보니 고남산 방면으로 가고자 한다면 운성대장군의 건너편 쪽으로 가야 했다.

그야말로 깜깜한 밤이었다. 자신있게 운성대장군쪽으로 길을 갔던 기석이도 우리도 초반에 길을 찾는 데 애를 먹었다. 지도를 보며 어림짐작으로 길을 가늠해 보지만 어스름한 새벽 여명 빛으로는 제대로 찾아낼 수 없었다.


해는 서쪽에서 뜨지 않는다                                            




거기가 거기 같은가 하면 또 여기가 아닌가 싶기도 했다. 하지만 곳곳에서 고개를 내미는 색색의 리본이 백두대간 길을 안내하고 있었다. 사실 리본이 그리 반가운 것만은 아니다. 물론 리본이 반드시 있어야 할 만한 곳이 있다. 길을 찾기 어려운 곳이나 길이 여러 갈래인 곳에서 발견하는 리본은 참으로 반갑다. 하지만 필요 이상으로 리본을 묶어 놓는 것은 보기 좋지 않다. 특히 자신의 산악회를 자랑하거나 알리려는 목적으로 달아놓은 리본들은 더더욱 그렇다. 지리산을 처음 찾아 갔던 1991년에도 지리산에서 리본을 자주 볼 수 있었는데, 지금은 거의 자취를 감추었다. 워낙 많은 사람들이 다니는 길이다 보니 따로 표시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길은 많은 사람들이 오가면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 길에서 먼저 길을 찾아간 이들이 후세에 오는 이들을 위해 안내표시를 하는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제는 인위적인 표시는 그만 했으면 한다. 한해 2만여명이 백두대간을 다닌다고 하니 조만간 백두대간 길이 환히 열리지 않겠는가.







7시가 넘어가자 멀리서 해가 뜨기 시작했다. 해가 반갑다. 그런데 이상하다. 해가 뜨는 곳이 내 왼쪽이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내가 북쪽으로 가고 있다면 해는 내 오른쪽에서 떠올라야 맞다. 그런데 왼쪽이라니 이상한 일이다.

조금더 가다보니 해가 뜨던 왼편으로 큰 저수지가 보였다. 지도상에서는 큰 저수지가 나타나지 않았다. 결국 지도를 펼쳐들고 나침반을 꺼냈다. 나침반이 가르치는 북쪽으로 지도를 놓고 보니 우리는 남쪽으로 가는 것이 거의 확실했다.

“우리 길 잘못 든 거 아냐?”
“그럴 리가 없어. 이 나침반이 잘못된 거 아닐까?”
“하기는 일전에 내 나침반도 완전히 잘못된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으니 말이야.”
“다음에는 내가 꼭 제대로 된 나침반을 사올게.”
“하지만 그래도 이상한 걸. 해가 지금 우리 왼쪽에서 뜨고 있잖아. 해가 북쪽으로 간다면 지금 해가 서쪽에서 뜨는 거야. 우리 길에서는 해가 오른쪽에 있어야 해.”
“…”

하지만 이때까지 우리는 단 하나의 이정표도 보지 못했다. 도상으로 문제가 있다고 확신하면서도 이정표를 하나도 보지 못해 결정하기 어려웠다. 이정표가 있었다면 이렇게까지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지는 않았을 것이다. 여원재를 출발한 지 1시간 반이 지났는데도 위치를 확인할 수 없었다. 결국 우리는 우리가 올라가는 봉우리 끝이 둘 중 하나라는 결론을 내렸다. 하나는 북쪽의 ‘고남산’, 하나는 남쪽의 ‘수정봉’.





사실 대장만의 잘못도 아니다. 서로의 처지를 누구보다 잘 이해하는 우리가 친구만을 탓할 수는 없다. 깊은 산중이 아니라 조금만 가면 마을이 있으니 이럴 때 좋은 경험을 한 것이 어쩌면 다행이다. 백두대간 종주에서 이번 산행은 두고두고 재미있게 얘기될 화제거리가 될 것이다.

결국 우리는 남행을 택했다. 그리고 수정봉에서 노치마을로 하산을 시작했다. 한시간 가량 내려가니 노치마을의 유명한 노송들이 보인다.


감미로운 봄햇살과 할머니의 꼬임에 넘어가 마신 막걸리                            








노치마을 노송은 이 마을의 자랑이다. 비석이 세워져 있는데 일조한 사람들의 이름이 빼곡하다. 여원재를 중심으로 하는 이 구간은 백두대간의 고원지대로 운봉고원으로 불리운다. 제법 높은 곳에 평야지대를 이루고 있으며 예부터 질좋고 영험하다는 소나무를 이용해 제기와 목기를 깎는 나무쟁이들이 많이 살았다고 한다.

우리가 노치마을의 노치샘에 들어섰을 때 지팡일 짚고 지나가던 마을 할머니가 우리를 발견하고는 관심을 보였다.

“산에서 오는개벼?”
“아, 네.”
“구람, 여그서 막걸리 한잔 마시구 가. 나두 한잔 주구.”
“아 여기 막걸리 파나요?”

그리고 고개를 들려보니 구판장이라는 간판이 보였다. 안으로 들어가 주인장을 찾아서 막걸리를 주문했다.



 


햇살 때문이다. 한 병만 마시고 가기로 한 것이 어느새 두병이 되고 세병이 됐다. 막걸리 한 병이 밥사발로 세잔이 나왔으니 셋이서 한 병씩 마신 셈이다. 우리보고 막걸리 마시고 가라던 할머니는 어느새 자취를 감추었다. 한잔 드리고 이야기나 들어보려 했는데, 사라지셨다. 우리가 세 병째 비워갈 즈음에 나타나셨는데, 한잔을 권하니 “나 원래 술 안 마셔.”라며 극구 사양하신다.

그런데 왜 아까는 술 한 잔 사달라고 하셨을까 궁금하다. 생각해 보니 햇살만이 아니라 꼬부랑 할머니의 꼬임에도 넘어갔던 것이다. 하지만 어떠랴. 1500원으로 한껏 기분이 좋아지니, 감사할 일이다.

오늘의 마지막 코스인 정령치로 향했다. 노치마을에서 정령치까지는 포장도로를 타고 가는 길이다. 정령치 꼭대기까지 가는 게 아니라 지리산 입구 바로 앞까지만 가는거라 더 이상의 오르막길도 산길도 없다.





그래도 이 길은 지리산으로 가는 길이다. 지리산을 떠나는 발걸음이 우여곡절 끝에 지리산 자락으로 스며들고 있었다. 4월달에 이번에 타지 못한 길을 가게 될 예정이다. 5월에는 다시 지리산 구간으로 돌아온다. 대장을 다시 내가 맡을 것이다. 참으로 질기고 질긴 지리산과의 인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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